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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16. 2024

[번외] 행복한 여행기만 쓰고 싶었지만

좌절 금지이고 싶지만 좌절

브런치스토리에 연재를 하겠다고 공개적인 약속을 하다니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것도 일주일에 세 개의 서로 다른 주제로 세 번의 연재를.



성실하기만 하다면 연재 날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리석은 것!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삶 자체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컨디션이 안 좋아도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켜야 하듯, 난데없이 뒤통수를 후려 갈기는 일상의 찌질한 일들, 괴로움과 슬픔이 있어도 나는 약속한 매주 화요일에 어김없이 여행 준비 기록을 이어가야 했다. 나쁜 일은 연재를 하기로 한 화요일만은  비껴가면 참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재기 발랄한 발걸음으로 여행기를 이어 나갈 텐데.



아이슬란드로의 여행 준비기. 그 찬란한 길에는 어둠의 그림자가 침범하지 않길 바랐다. 베를린 장벽보다 더 높은 장벽을 쌓아 부정적인 기운이 이쪽 글로 넘어오는 것을 철저히 막고 싶었다. 그래서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들 정말 싫다'라는 금요일 연재기로 분류했다. 아들 이야기는 제발 그쪽으로 가줄래?



안타깝지만 아들은 요일을 가리지 않았다. 미용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해서 미용학원을 등록해 주었다. 선 지불 방침 때문에 4개월치의 거한 학원비를 결재했고 오늘이 학원 이틀 째. 그러나 오전에 학교에 이어 저녁 시간 학원까지 쿨하게 짼 아이를 보며 내 마음은 다시금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과 같고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아들의 어떤 상황도 품어야 하는데 그렇게 마음이라는 연약한 존재는 또다시 휘청거리다 이내 팍 쓰러졌다. 스트~라이크!



어수선한 마음을 숨기고 지난주에 이어 활기차게 여행기를 이어보면 어떨까. 가짜 미소를 머금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쓰는 거지. 그 생각을 하면서 기다렸다. 글이 내밀어지기를. 그러다 이 시간이 되었다. 밤 11시. 가짜 미소는 실패했다.



그래서 오늘의 여행 준비기 혹은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에 대한 글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대략 아래와 같을 것 같다.



작년 여름에 아이슬란드 항공권을 덜컥 질렀을 때는 여행까지의 남은 1년의 모습을 그렇게 그렸어요. 그러니까 그 1년 동안 아들에 대한 문제가 제법 마무리되고 편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라는 해피 엔딩이자 여행으로의 해피 스타트. 그러나 출국까지 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지금, 결국은 여행 전날까지도 마음이 다 구겨진 상태로 있다가 도망치듯 떠나게 될 거라는 슬픈 예감에 마음조차 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경질적으로 따닥따닥 키보드의 글씨를 타이핑한다. 그 소리가 시끄럽다 못해 사나울 정도이다. 분노에 분노, 좌절에 좌절, 슬픔에 슬픔이 끝없이 덧칠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여행 준비기(?)는 이렇게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일상이라는 놈에 멱살이 잡히는 날이 있어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갈 것이고, 여행 가는 날은 다가올 것이고, 나는 떠날 것이다.



오늘은 세월호 10주기이다. 나와 내 아이를 중심에 두지 않는 삶을 살게 하소서.
기도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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