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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01. 2024

[Dday-45일] 작가님께 전화를 받다   

나는 성덕이다

낯선 번호. 보통은 받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저 XXXX의 김OO인데요…”
“헉, 작가님?”



그녀는 날고 기는 독립출판사계에서도 유명한 분이다.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일반적인 인터넷 서점에서는 살 수가 없다. 지역 도서관에도 없다. 출판사 사이트에서만 구입 가능하다. 그럼에도 입소문이 장난이 아니다. 그녀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한 달 후인 5월 중순에 아이슬란드로 18일간의 나 홀로 여행을 떠난다. 결혼 후 19년. 회사일과, 돌봐야 할 아들 둘(어쩌면 셋). 정신없는 일상을 놔두고, 대한민국을 버리고 도망간다. 한 번도 저지른 적 없는 일탈이다.  



아이슬란드는 전 국민의 10퍼센트가 책을 한 권 이상 출판해 봤을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국민의 다수가 아마추어 작가 혹은 뮤지션. 문득 나는 아이슬란드에 가서 한국 그림책을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느 현지인의 집에서 맛있는 쿠키를 먹으며 아이들에게 그림책의 장면을 짚어주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림책 전문가? 절대 아니다. 나는 충동적으로 ‘아이슬란드 도서관’을 검색하여 인스타그램에 DM을 보냈다. 그리고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행복과 두려움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현재까지 상황은 이렇다.





아이슬란드 시립 도서관에 전시 및 기증할 총 25종, 50권의 도서에 해당하는 18군데 출판사 중 14군데로부터 도서 지원을 약속받았다. 네이버에서 출판사를 검색하여 이메일로, 공식 문의처로, 혹은 SNS로 DM을 보냈다.
 


이런 짓을 한 번도 저지른 적이 없던 그림책 동아리 4개월 차 햇병아리인 나는 내가 속한 동아리에 SOS를 보냈다. 그들은 일사 분란하게 움직였고, 이 일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한국의 아름다운 그림책을 해외에 알릴 기회로 삼자고 다짐했다. 도서관 내 부스를 설치하여 사전 전시를 하자는 것도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소개될 책과 관련된 아이템 전시하기, 한글 자모음 스탬프 찍기 체험, 현지인의 한글 이름 캘리그래피 선물하기 등의 주옥같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앞으로 출국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반. 문제는 자금. 책은 얼추 마련이 되었는데 배송비가 엄청났다. 내가 가기 전에 현지에서 사전 전시가 되려면 해외 배송을 해야 하는데 배송비만 수십 만 원을 육박했다. 3킬로짜리 하나 보내는데 14만 원을 지불했다는 글에 나는 경악했다. 지금까지 출판사에서 받은 책의 무게가 20킬로에 육박했다. 남녀 아동 한복, 한글 자모음 스탬프, 글씨 출력 미니 프린트, 캘리그래피 제작 등, 필요한 자금을 계산해 보니 180만 원을 넘었다. 오늘 오후에 우체국에 가서 정확한 배송 금액을 물어볼 참이다.





한국관광공사.’ 나는 그곳에 메일을 보냈다. 정성스럽게 문서를 작성했다. 메일 제목은 ‘아이슬란드 시립도서관 K-Picture Book 프리젠테이션 긴급 지원 요청 건.’ 참으로 비장한 제목이었다.



까였다.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여행 유치와 무관하다는 것이 답변이었다. 아니 왜? 꼭 BTS만, K-pop으로만 외국인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법이 있나? K 문학이 요즘 얼마나 핫한데. 거 참 융통성 없는 양반들이고만. 아쉽지만 빠른 답변이 감사하기도 했다.



또 검색했다. ‘한국예술문화재단.’ 조금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자그마치 ‘한국예술국제교류지원팀’이 있다. 느낌이 괜찮다!



답변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리고 까였다. 정기 공모 시즌이 모두 끝나서 재정적 지원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도 담당자분께서 문학지원팀 등 내부의 타 부서에도 연락을 취하셔서 도움 주실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주셨다. 친절한 공무원님들이다.



'문체부 가봅시다 ㅎㅎㅎ'



낙담하고 있는 내게 지인이 톡을 보내왔다. 문화체육관광부라…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장관과의 대화방’이 있다. 실제로 장관이 읽는 건가? 설마...? 어쨌든 써보기로 한다. 비장한 마음으로 PPT 문서로 보고서를 만들어 본다. 회사 일은 언제 하나. 내가 장관님께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작은 아들이 와서 말없이 안아주고 간다. 구름 잡는 짓을 진지한 표정으로 하고 있는 엄마가 딱해 보였던 걸까.  

   
  
오늘 아침, 글이 접수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별 경험을 다해 보네, 180만 원 받겠다고…” 커피를 마시며 혼자 중얼거렸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으려나 오늘의 운세를 봤다. 국민은행 운세 보기가 은행권 중 제일 정확하다는 지인의 귀띔.


이 주의 평균 운세 40%. 위치가 공격받고, 지출이 발생하고, 어려움이 있고… 에잇, 잘 안 되려나 보다(나는 기독교인). 사실 결코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국민의 세금을 쓰는 일.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란 충분한 기간 동안 심사를 거쳐 진행되어야만 할 터였다. 나처럼 긴급하다고 누구나 요청하고 지급받는 식이 되면 안 될 것이다.





장관님께 답변을 듣지 못하면 와디즈 등을 통해 펀딩을 받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해본 적은 없지만 길이 있겠지. 그런데 시간이 없다. 5월 둘째 주에 아이슬란드의 도서관에서 사전 전시회를 진행하려면, 4월 28일 전에 관련 짐을 다 부쳐야 하고, 그러려면 4월 셋째 주까지는 자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이 4월 1일이다. 꺅 ㅡ .



머릿속이 뒤숭숭하다. 그림책을 소개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가벼운 생각이 나비효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에 놀랍고 그 놀라움에 계속 입이 쩍 벌어진 상태이다. 이 일을 벌이면서 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 도움이 있었다. 그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내가 중심도 아니다. 나는 메신저일 뿐이다.






오늘 아침, 김OO 작가님은 다정하게도 자신의 해외 책 소개 경험을 나눠주셨다. 내가 요청드린 책 말고도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던 책들도 보내주시겠다고 했다.



사실 나는 그림책을 알지 못한다. 독서와 글쓰기도 겨우 1년 전에 시작한 아주 어쭙잖은 초보 상태이다. 이런 내게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와닿는 것은 극한 감동이다. 남편은 ‘어디서 한 푼 나오는 것도 아닌데 왜 저래’ 하는 듯한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아침, 나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대박XXXX김OO나는야성덕’

작가님의 연락처를 저장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께 연락드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가끔 그 연락처와 ‘대박XXXX김OO나는야성덕'을 흐뭇하게 바라볼 것이다.



성공한 덕후. 나는 성덕이다.



참고로 아이슬란드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 없습니다. 노르웨이 대사관이 해당 업무를 겸임하는데 대사관은 노르웨이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내에도 아이슬란드 대사관이 없습니다. 일본이 관련 업무를 함께 처리하며 대사관은 물론 일본에 있습니다.



윗 글과 관련해 쓴 이전 글입니당(:

아이슬란드 대통령 영부인 만나러 갑니다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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