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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Apr 09. 2024

후원 모금을 통해 배운 것

네가 왜 너한테 후원해야 돼?  

시작은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사춘기 아들의 방황에 더 크게 방황한 엄마. 우연히 독서와 글쓰기 커뮤니티에 흘러들었고,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찬양' 된다는 아이슬란드에 대한 책을 읽고 무작정 가봐야겠다고 결심한 것. 거기까지는.



온라인 글방과 독서 커뮤니티의 멤버들. 그들은 옆에서, 뒤에서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땐가. 아들이 저러고 있는데. 세상이 욕하지 않을까. 한심한 엄마로 보지 않을까. 주변 눈치를 보고 매번 주저앉으려 할 때마다 그네들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포기하지 마요. 내 마음도 이렇게 설레는데 왜 포기해요. 내 꿈도 가져 가요.



이후 우연히 그림책 모임에 합류했다. 그녀들은 더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김에 한국의 그림책을 소개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마음만으로 나는 현지 도서관에 컨택을 했고, 마침 도서관 담당자가 한국어 전공자에, 올해 한국에 공부하러 오는 사람이며, 어떤 도움이든 필요한 것을 다 얘기하라고 했을 때 그녀들은 흥분했다. 이 참에 한국의 아름다운 그림책을 알려 보자고. 부스를 만들고, 사전 전시를 기획하고, 현지 도서관에 책을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들은 이제 나의 러닝 메이트가, 때로는 앞에서 나를 이끄는 자들이 되었다.



열 두 개의 출판사로부터 그림책을 지원받고, 한국적인 아이템을 전시하고, 그림책에 담긴 한국 문화를 전달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집단 지성의 힘이었다.






휘뚜루마뚜루 책 두 세권 가방에 넣고 가려던 나의 처음 생각과 달리 우리 집에는 출판사들로부터 배송된 책들이 속속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50 여 권의 하드커버 책이 방 한 면을 차지했다. 우체국에 확인한 결과 아이슬란드까지 국제 배송료는 20킬로그램에 35만 원. 책 무게만 40 킬로그램이었다. 한복 등 전시 기획까지. 자금적 지원이 필요했다.



한국 관광 공사, 문화 체육 관광부, 한국 예술 국제 교류 지원... 난생처음 문을 두드려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펀딩을 진행하기에는 절차상 시간이 촉박했다. 그렇게 나는 인스타그램에 홍보 글을 올렸다. 그러나 sns 활동을 시작한 지 겨우 6개월. 내 인스타그램의 방문자들은 나의 지인들이고, 결국은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꼴이 되었다.



"일반인의 후원을 받기에도 좋은 이슈인데 왜 지인들에게 부담을 줘? 그런 식으로 하면 너도 지인들에게 마음의 빚이 생기고, 친구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어. 지역 맘카페나 당근마켓, 지역 그림책 동호회 연합에 올려 보는 건 어때?"



지인의 조언에 아차 싶었다. 후원을 받는다는 게 조심스러웠고, 그래서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인스타그램에서만 소극적으로 홍보한 것이다. 왠지 불편했던 마음.


     

유튜브 영상 첫 화면


영상과 홍보물을 만들어 유튜브와 당근 카페에 업로드했다. 이제 정말 이 일에 대해 커밍아웃하는 듯한 느낌. 이제는 정말 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되뇌었지만  누가 욕할까 싶어 또 한 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네가 여행을 가는데 왜 사람들이 후원해야 돼?"

모르는 사람에게 듣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올린 영상을 본 막역한 지인으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차 싶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겠구나, 싶었다.  



평소 소통에 꽤 신경을 써 왔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을 꼼꼼히 챙기는 자라고 생각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일 뿐이었다. 나의 여정을 지켜본 사람들. 그들은, 그들만 알고 있었다. 왜 아이슬란드였는지. 개인적인 여정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림책 알리기라는 미션을 가지고, 여러 명의 꿈을 안고 전달하러 간다는 것을, 그렇게 모든 것의 의미가 바뀌고 커졌다는 것을. 그 외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채 2분이 안 되는 영상에 녹여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돈에 관련된 거였다.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맥락을 잘 풀어냈어야 했다. 확실히 미흡했다. 이미 내 마음에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뜬금없이 아이슬란드, 뭔데?



다행히 모금을 통해 가장 중요한 도서 배송비는 해결되었다. 한복 등을 구매해 책과 함께 전시하려고 했던 계획은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이다. 후원금이 모이면 괜찮은 한복을 사기로 했지만 여의치 않으면 당근마켓 등을 통해 중고 한복을 구하고 made in china 택은 자르자고 그림책 모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그러나 후원자의 90 프로가 지인. 결국 나는 일반인의 호응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해되겠지. 알겠지.' 안일했다. 어쩌면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겸손해야 했다. 눈동자를 더 말갛게 하고, 안경알을 다시 한번 깨끗하게 닦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일로 큰 용기를 얻었다. 생각해 보면 이 여정의 어느 순간도 나는 혼자인 적이 없었다. 인간관계가 참으로 좁은 내가 친구, 지인, 그리고 커뮤니티로부터 받은 지지는 참으로 강력했다. 후원을 받은 지금, 나는 이제는 정말로 혼자 떠나는 자가 아니게 되었다. '책임감'이 단어가 제대로 추가되었다. 무겁지 않다. 다만 나는 고요히 진지해졌다. 나는 이제 고철 덩어리에서 점점 업그레이드된 아이언맨처럼 슈퍼파워가 탑재된 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어벤저스의 메인이 된 것은 결코 아니다. 영화 포스터의 센터에 있는 아이언맨 역할은 생각만으로도 부담스럽다. 늘 부반장이나 총무 정도가 딱 좋았던 나.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영웅인 이야기 중의 하나로, '이번에는' 내가 간다.



"그런데 너 이런 애였어? 너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거 부담스러워하잖아?"

막역한 지인이 물었다.



내 말이. 나 긴장하면 손 떨잖아. 그런데 있지, 나는 일반적인 주제로 대화가 잘 안 되더라고. 남편, 아이들, 교육, 경제, 먹고사는 거... 나란 인간에게 어찌나 빈곤한 소재인지.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끝없이 초라해져. 어색해지고. 그런데 말이야. 내가 꿈꾸는 것,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 그런 것을 이야기할 때,  나는 막 신이 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설사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라도 말이야.



확신의 말이 마음속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내가 원하는 곳에 나를 데려가라." (네발 고다드)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나에게 옳은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곧 머물고 싶은 다른 곳으로 떠난다. 꿈꾸는 어벤저스의 기운을 가슴에, 어깨에, 다리에, 눈빛에 장착하고.




영상을 구성했던 페이지를 첨부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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