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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l 05. 2024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1800년대 보물

여행자의 흥분

전날 저녁, 늦게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후 다리를 질질 끌며 언덕 위 숙소로 오르는데 벽에 대문짝만 한 글씨로 Second Hand Bookstore(중고서점)라고 쓰여있다. 어, 왜 이걸 못 봤지? 기웃거려 보니 영업시간은 끝났고 찾아보니 리뷰가 많진 않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내일 아침에 와봐야지. 






미친!

서점 문을 연 순간 제대로 왔구나, 싶은 흥분감에 휩싸인다. 드디어 아퀴레이리에서 와야 할 곳을 왔어! 마음속은 난리법석이지만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 




아침햇살로 눈부신 문밖과 완전 다른 분위기의 공간. 적당히 어둡고 밝으며, 그 흔한 커피 향도, 배경 음악도, 혹은 그 어떤 체면치레적 진열도 없는 단정한 공간. 그리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책들은 어찌나 편안해 보이던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허락받았습니다.)


ㅁ자형 내부의 한 코너를 돌 때마다 이전 코너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이 코너에서 저 코너로 서성이고, 감탄하고, 책 제목을 훑고, 조심스레 책을 꺼내고, 소파 깊이 멍하니 앉아 본다.  


이곳에서만큼은 나란 존재에 먼지만큼의 경직도 없다. 그렇게 나는 풀어헤쳐진다. 

책들 또한 이런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게 뭐야... 트레져(보물)? 박물관에 있어야 할 책들이 꽂혀 있다. 1880년 책이라. 손으로 만져도 되는 건가.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상소리가 뱉어진다. 





진열된 책은 대부분 아이슬란드어로 되어있지만, 오래된 영미 소설부터 독일어 책 등 언어와 장르가 다양하다. 나는 그림책 섹션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모든 책을 다 꺼내 살펴보았다. 이미 다음 스케줄은 하찮아졌다.  






공짜 프린트물같이 생긴 책도 새책은 5만 원을 훌쩍 넘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중고책 값도 만만치 않다. 이곳을 보면 나처럼 입틀막을 하며 좋아할 우리 그림책 모임 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네들 덕분에 아이슬란드 도서관에서의 행사를 꼼꼼히 준비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에 온 지 9일 차, 처음으로 기념품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녀들을 위한 책을 골라본다. 



자그마치 1960년대 책 일곱 권을 샀다. 1960년에 영국에서 만들어진 신데렐라 삽화가 재미있다. 올드한 삽화 인쇄 방식이 돋보이는 책도, 어린이의 예절에 대해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출판사에서 만든 옛 책도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대.  
 




호기심으로 잠깐 들어왔다가 와! 하고 사진을 다다닥 찍고 나간 몇몇 여행객들을 제외하고는 3시간 동안 나와 서점지기뿐이었다. 내가 머무는 내내 그는 책을 정리하고 데스크에 앉아 본인 책을 보았다. 나는 서점에 대한 그 어떤 감탄사나 품평 멘트 없이 계산을 하고 나왔다. 



떠들썩하지 않다. 각자에게 충실하며 서로에게 정직하다. 






내 안이 뭔가로 차란차란 채워진 듯한 좋은 느낌. 그러나 곧 서점 앞에 뚝 서버리고 만다. 첫째, 이 서점이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둘째, 원래 갔어야 할 박물관에 가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 폐점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현실 지각에. 뛰어야 하나? 걸어서 30분 거리, 만만치 않다. 부지런히 출발해도 폐점 시간까지 겨우 30분을 남길 터였다. 



“………………”    



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이 글을 쓰면서 중고서점 '프로디'(Fornbókabúðin Fróði)에 대해서 찾아봤다가 깜짝 놀랐다. 두 달 후에 폐점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건물이 팔렸다고 한다. 건물주가 나가라고 했나 보다. 안돼... 

다음에 또 가려고 했다. '다음'이라니. 얼마나 섣부른 단정였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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