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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 너머 Jun 28. 2024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토박이가 알려주는 진짜 제주 #나는여행客인가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제목이 도발적이다. '우리에게는 낙원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그곳'이라는 말도 와닿는다. 진짜(?) 제주 사람의 제주 곳곳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맛일까? 


이 책의 목차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저자와 함께 테마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섬의 동서남북을, 행정구역 명칭을 기준 삼아, 한라산 자락의 높낮이에 따라 제주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작가 스타일의 제주 바라보기다.

 

돌, 제주의 미:
산담, 밭담, 올레, 포구, 동자석, 환해장성, 돌하르방/방사탑

냅둬요, 지금 이대로:
신흥리 오탑, 대평리, 질지슴, 신지방코지, 썩은섬, 강정동

거기, 가봅디가?:
용눈이오름, 조개못, 솜반내, 논짓물, 조간대, 금산공원, 한라산, 곶자왈

사람과 제주:
온평리, 물맞이, 이중섭 문화의 거리, 추사 유배지, 제주해녀, 갈옷, 자리, 제주초가, 신당, 석굴암, 테시폰, 옹기, 제주어, 추자도

하고 싶은 얘기들:
제주 4.3, 이주민, 월정리, 원도심


큰 주제들이 동일한 무게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주제에 같은 수의 소제목 가지들을 뻗어내지도 않았다. 나는 약간 강박적인 부분이 있어서 어느 큰 개요를 잡으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가며 글을 쓰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은 내 기준에선 매우 언밸런스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직하게 느껴진다. 제주에 대한 책들을 이것저것 주워 삼키고 있지만, 이 책만큼 무심한 듯 제주를 한 꺼풀씩 벗겨내는 글도 드문 것 같다. 제주의 돌도, 제주의 설화도, 독특한 자연환경도, 제주 4.3도... 여러 서적들에서 변주되는 주제들이지만 저자 특유의 관점이 있다.


진짜 여행은 이런 것


여행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제주를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저자는 여기에 대한 답을 주기도 한다. 낯선 곳에 갈 때 그곳의 이야기들을 아는 것이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아는 것이 그곳의 정체성을 알 수 있게 하고, 그것이 여행을 하는 목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 같다. 동의한다. 제주는 "진짜" 여행을 해야 하는 곳이 분명히 맞다!

p73-4 제주는 이런 전설이 많다. 전설은 어쩌면 꿈이고, 제주도는 그런 꿈이 어린 섬이다. 신흥리 전설도 그 꿈의 일부다. 여행을 즐기는 이들은 길 위에 너부러진 정체성을 찾으려 무척이나 애를 쓴다. 제주여행을 다니는 이들도 그러지 않을까. 사실 여행은 그래야 한다.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그 지역의 정체성을 알려는 노력이 먼저여야 한다. 


제주 올레에 이어 제주 오름의 매력은 이미 많은 육지사람들에게 알려진 것 같다. 얼마 전 용눈이오름을 오를 때엔 외국인도 만났다. 여길 어떻게 알고 왔지? 음식점으로 치면 아는 사람만 아는 찐맛집 같은 곳인데... 나는 외국 여행을 다닐 때 어떻게 다녔던가 반성한다.

p117 오름은 한라산이 주지 못하는 감칠맛이 있다. 뭍사람들은 한라산을 아주 쉽게 오른다. 단숨에 한라산에 올라 남한의 최고봉을 밟았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그렇지만 제주를 진정 느끼려면 오름에 올라야 한다. 한라산이 주지 못한, 아니 한라산이 줄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가야지, 장마가 끝나면 가야지 하며 아직 아껴두고 있는 솜반내, 조개못, 곶자왈은 이 책을 보니 얼른 더 가보고 싶어졌다. 

p131 사람도 얼굴이 제각각이듯 복원된 하천들도 나름대로의 모습을 갖고 있다. 산지천은 이렇게 얘기해 볼 만하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성형미인. 그렇다면 솜반내는 어떤 얼굴이라고 말하는 게 적절할까. 솜반내는 산지천에 비한다면 잘 정돈됐다는 느낌이 안 든다. 솜반내는 자연이라는 그 뜻이 내포하듯 그냥 '그러할' 뿐이다. 자연냄새가 풀풀 풍기는 수더분하고 너그러운 촌할아버지를 닮았다.
p168 만일 곶자왈에 간다면 지켜야 할 게 있다. 무릇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옛 어른들의 숨소리를 우선 들어보려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제주를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 나는 여행'객(客)'이 될 것인가


나는 내가 기억이 나는 수준의 어린 시절, 막 개발되던 신도시에서도 살아보기도 했고 몇 시간이면 걸어서 그 동네의 가장 번화한 읍내를 다 둘러볼 수 있는 곳에서도 살아보았다. 강원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6년을 보냈고, 제주에 내려오기 직전까지는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에서 살았다. 내 부모님의 고향은 농사를 짓는 시골이고 그 때문에 나는 아주 오랫동안 설, 추석이면 열몇 시간 귀향길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많은 고장들을 돌아다녔으면서도 그저 기억이 머무는 곳일 뿐 그중 고향 같은 곳, 돌아가고 싶은 곳을 떠올리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제주는 정말 신기한 곳이다. 제주를 조금만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제주의 매력에 허우적거리게 된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다시 돌아오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 든다.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려 한 순간 나타난 변화다. 아직 객(손님)에서 주인으로 바뀌려면 아직 멀었지만, 이 변화가 기껍다. 다른 땅과 달리 제주는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너처럼, 그런 너에게 객이 되고 싶지 않다.


[덧붙이기] 파피용 살롱드떼: 표선의 홍차 전문점


이 책은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조금씩 조금씩 아껴 읽다 비 오는 일요일 아침, 표선의 (아마도) 유일한 홍차 전문점에서 다 읽었다. 

나는 카페라떼주의자를 표방하며 살지만 가끔 밀크티도 마신다. 런던에서 사 온 홍차로 냉침도 해보고 끓여도 보고, 나름 밀크티 제조 경험도 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우유를 넣은 차를 좋아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진짜 커피의 풍미를 즐기는 사람들은 핸드드립 커피의 매력이 상당하다고들 한다. 홍차도 마찬가지다. 산지에 따라 품종에 따라 다른 찻잎을 사용하고 그 향과 맛의 차이를 음미한다. 하지만 거기에 우유를 넣는 순간 변수 하나가 늘어난다. 미각이 아주 예민하지 않은 내 '막혀'로도 홍차 종류에 따라 밀크티의 맛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카페라떼의 경우에도 원두의 종류에 따라 맛이 좀 다르다. 그런데 여기에 추가되는 변수, 우유는 밀크티에서보다 더 강력한 변수가 되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좀 더 보편화된 카페라떼에 비해 밀크티는 좀 더 신경 써서 이 '변수'를 관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밀크티는 우유의 변수보다 기초값(찻잎)의 차이를 좀 더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파피용 살롱드떼를 우연히 발견하고 표선에서도 밀크티를 마실 수 있음에 행복했다. (신이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나만 몰랐던 곳이었다! 그동안 라떼 맛있는 곳만 묻고 다녔더니......) 표선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이런 나의 편견에,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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