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빛의 섬

by Lunar G

물때를 맞추면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렀던 걸까. 육지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자연의 시기를 인간에게 맞출 수는 없을 터. 신비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맞은편을 멍하니 보고 섰다. 눈앞의 섬이 웅크려 흐느끼고 있는 그가 되어 눈에 맺힌다. 눈꺼풀을 내리감으며 그의 모습을 지워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그를 그렇게 속으로 삼킨다.

그 일이 있고 구 개월이 지났다. 일 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의 병에 두드러진 차도는 없다. 그의 목소리가 아홉 달째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소리의 상실은 목을 써서 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그에게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병명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찾을 수 없는 증상이 그에게서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문을 걸어 잠그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를 물들이고 있는 햇살이 눈을 찔러온다. 눈이 부시다. 바닷물과 햇빛이 빚어내는 투명하도록 맑고 밝은 풍경이 눈시울을 적신다. 세상이 티 없이 밝아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손으로 빛을 쳐내며 그가 마주했을 어둠을 눈앞에 그려낸다. 눈부심과 어둠이 원래는 하나였던 것일까. 사방이 환한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얗고 까만 빛에 둘러싸여 그가 홀로 마주했을 막막함을 넘어다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면서 그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달마저 사라진 어둠에 속에서 그는 왜라는 의문을 붙들고 시시각각 무너져 내리는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일렁이는 어둠이 파도가 되어 그의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그가 감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자극은 소리였다. 어둠의 파도가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신의 전언이 되어 그를 엄습했다. 무너지지 않으리라. 무심한 어둠을 움켜쥐고 그가 가슴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수없이 되뇐 말이었다.

물이 빠진다. 눈앞에 길이 나타난다. 배를 타지 않아도 이제 걸어서 저곳에 이를 수 있다. 바닷물에 잠겼던 길을 걸어 섬 속의 섬으로 나아간다. 인적 드문 땅을 천천히 걷는다. 목소리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홀로 끝없이 한계에 부딪혔을 그의 모습이 걸음마다 챈다. 침묵에 잠겨 있던 그의 시간이 까만 물결이 되어 가슴에 닿는다. 철썩철썩. 속에서 파도가 인다. 파도가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눈동자를 채우고 있던 어둠의 바다가 빛의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눈물을 닦으며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라고.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무엇이 시간을 넘어설 수 있냐고. 바람을 따라 파도가 일렁인다. 바위에 닿은 물에서 물거품이 인다. 허연 물거품에서 목소리를 되찾기 위한 그의 외침을 듣는다. 입 밖으로 나와 퍼져나갈 수 없게 된 침묵의 소리가 그의 속에서 공명하고 있었을 터. 절규와 절망이 그의 가슴을 에고 있었을 터. 물결이 그의 멍든 가슴을 무심하게 내려치며 말한다. 기다림이 멎어 버린 것 같은 시간의 열쇠가 되어줄 것이라고. 그것이 인고의 시간을 빛나게 해 줄 것이라고.

섬 끝에 선다. 수평선 너머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햇살을 머금은 눈부신 물결이 바다와 시간이 만들어내는 시가 되어 가슴에 안긴다. 만조와 간조를 반복하는 것은 바닷물의 숙명이다. 쓸려가고 밀려옴이 없는 바다는 죽은 물이다. 생을 잃은 물에는 기다림도 있을 수 없다. 허니 우리의 이 막막한 기다림은 어쩌면 살아있음의 소리 없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어둠과 빛이 매한가지임을 깨우쳐 가기 위한 생이라는 까맣고 하얀 물결의 매만짐 중 하나일 것이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섬에서 나가야 할 때다. 속에서 물결이 일렁인다. 눈앞이 선명해진다. 쏴아 하는 물소리가 명치에 걸려있던 갑갑함을 쓸어낸다. 가빴던 숨소리에 평정이 인다. 침묵의 기다림이 소리 없이 시간의 바다를 매만진다.

Claude Monet_ETRETAT CLIFF OF D`AVAL SUNSET.jpg Claude Monet_Etretat Cliff of d'aval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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