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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 G Oct 18. 2023

얼음 벽돌과 액자

남자의 이야기      

남자가 액자 속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 손을 뻗어보지만 남자의 손은 여자에게 닿지 못한다. 여자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한 벌로 여자에게 가는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액자 속 여자와 남자의 곁에 누운 여자. 남자는 두 여자 사이에 있다. 그리고 여자의 영혼은 액자 저 너머에 있고 여자의 몸은 남자의 곁에 있는 것이다. 

남자는 깨어나지 않는 그녀를 꽃으로 장식해 두었다. 견딜 수 없이 여자가 보고 싶어 지던 어느 날 남자는 거대한 액자를 만들어 그를 둘러싸고 있는 그녀의 영혼을 그 안에 넣고 만 것이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그가 그 자신에게서 등을 돌려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장 무서워한 것은 그녀를 잃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사라지면 존재할 수 없었기에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영혼을 액자에 가두어 버렸다. 몸과 영혼이 하나가 된 그녀를 만나게 될 때까지는 그녀를 가슴에 간직하는 것, 그것이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참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법이었다.

남자의 현실 속에 남겨진 여자의 몸은 남자의 곁에서 잠이 들어 있다. 여자를 언제 그 액자에서 꺼낼 줄 수 있을지, 그리하여 언제쯤 액자에 붙들어둔 여자의 영혼을 여자의 몸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 남자는 알지 못한다. 그때까지 여자가 온전할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라도 여자를 붙들어두고 있는 것은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여자가 존재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여자를 만날 가능성조차 남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는 현실 속 여자를 잠재우고 여자의 영혼을 액자에 넣어 매 순간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으로 이어진 여자와 남자의 영혼에 양식을 주듯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를 끝없이 되뇐다.

그가 확신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여자가 깨어날 것이라는 것과 그가 그녀를 그리고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남자가 그 순간을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뿐이다.          

G O'Keefe_Radical Abstraction

여자의 이야기      

그녀는 자신을 휩쓸어버린 그 거대한 힘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를 향한 몸과 마음의 소리를 따랐을 뿐, 그녀를 압도해 버린 거부할 수 없는 그 힘의 실체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를 좋아하는 만큼 쓸쓸하고 괴로워지는 불가사의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사랑에 마주해 왔다. 사랑은 매일 새로운 씨앗을 뿌려주었고 씨는 다음 날이면 열매를 맺어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매일 사랑의 열매를 따서 그에게 보내 주었다. 열매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나날이 늘어갔다. 그것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불을 지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 불길이 그녀에게서 그에게 닿고 싶은 간절함을 깊게 하고 있을 줄 그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으나 그는 그녀의 곁에 없었다. 사랑하는 그와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 그를 만질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사랑은 나날이 깊어갔고 그의 모습은 그만큼 흐려져 갔다. 그리하여 언제부터인가부터는 그를 좋아하는 그녀의 감정을 그녀 자신도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박제해 두기로 해 버렸다. 

그가 없이도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불가사의한 충만 속에서 그녀는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사랑한 시간이 더해진 만큼 가슴은 말라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토록 강해서는 그 마음 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 사랑으로부터 살아남지 못하면 그를 만날 수도 없다. 꼭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원래의 나를 되찾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았으나 사랑은 그녀의 이성을 앞질러 가서는 늘 그리움을 그녀의 가슴에 내려 두고 있었다. 

그가 너무 보고 싶어 주저앉아 울어버리는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그녀는 어제의 사랑에 오늘의 사랑이 더해지지 않도록, 잠들기 전에 하루분의 사랑을 끌어모아 얼음의 성에 가두어 두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물로 만든 얼음 안에 꺼지지 않는 사랑의 불꽃이 들어 있었다. 울고 나면 얼음의 성에서 환한 불길이 번져 나오고는 했다. 그리고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는 노랗고 투명한 달빛 같은 빛이 담겼다. 

까만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사랑의 결정이 되어 얼음 벽돌을 만들어 갔다. 그녀는 밤이 되면 하루치의 사랑의 불씨를 그 속에 넣는 것으로 사랑의 벽돌을 쌓아 올렸다. 그를 향한 사랑의 불길이 그녀를 잠식하지 않게 하려는 생존 전략이었다. 기다림과 인내. 그것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감정의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그녀만의 코드였다. 사랑의 코드가 찍힌 벽돌은 눈물과 더불어 나날이 높이 쌓여갔다.           

G O'Keefe_In the Spotlight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눈물로 채워질 밤이 다시 그녀를 찾아온다. 울고 나면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깨지는 듯한 통증도 일시적으로나마 사라질 것이기에 그녀는 울음을 통해 그에 대한 마음을 가두어 둔다. 그런 다음 눈을 감은 채 그를 향해 손을 뻗는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녀를 관통하더니 어디선가 그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녀는 그림인지 거울인지 모를 그것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액자 위에서 그와 그녀의 손이 닿는다. 그의 온기가 그녀를 감싸 안는다. 그녀의 눈물이 그에게 닿는다. 

보이지 않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숨결을 감지하기만 할 뿐 그녀의 눈앞에 그가 있다는 것을, 그의 눈앞에 그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들의 시간이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에 얼음 속 불꽃이 비친다. 그녀가 불꽃을 응시한다. 불꽃에 그녀가 있다, 불씨 안에 그가 있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던 얼음으로 만든 벽돌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얼음을 벗어난 빛이 번져오기 시작한다. 그녀를 가두고 있던 액자가 사라져 간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그녀의 손이 그의 뺨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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