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디자이너의 마음들]
옆자리의 팀원은 지난주부터 다이어트에 들어갔다고 팀 전체에게 공식적인 선언을 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기름진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은 피할 예정이니 점심을 함께 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주에 연달아 야근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본인도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직 잠들기 5시간 전이니, 소화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이유로 떡볶이에 그만 젓가락을 대고 말았던 것이다.
본인이 정한 기준에 조금씩 덧붙여지는 디테일한 이야기들, 그래서 결국 자신과의 약속에서 조금씩 타협하는 과정이 누구나 생기는 모양이다. 그에게도 그와 같은 타협점이 생겼던 시간이 있다고 한다면, 아마 본인의 마음이 망가지는 것을 모르는 척, 애써 괜찮다는 말을 하면서 미루었던 시간이었다.
감정에 무뎌져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몸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유독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의 친구는 20대부터 탈모가 시작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남기고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의 상태를 가장 정확하게 판단한 사람은 2년간 그를 지켜봤던 그의 여자 친구였다. 가면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날카로워지는 그의 말투에 힘겨워하던 그녀는, 눈물로 그의 마음에 마지막 호소를 던지고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말이 되었다. 자신의 상태를 외면하다 보면, 점점 '괜찮다'라는 말의 정의를 타협하게 되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군가의 상태를 외면하고, 웬만큼 힘들지 않으면 괜찮은 척 넘기게 되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감정의 타협을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괜찮지 않은 사람은 그 앞에서 괜찮다고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 아픔이 작아 보인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분명 아픈 것이고, 괜찮지 않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발견할 때까지 누군가의 눈물이 가리어진 상태로 2년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나다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과 끊임없이 타협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나를 위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