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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e Dec 26. 2023

<노량>, 전쟁을 끝내는 방식

이순신 이야기 (4)

적군과 아군이 뒤엉킨 미명의 노량 바다는 한 편의 지옥도였다.


불타고 으깨진 배들의 잔해 위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왜군을 죽인 아군을 다른 왜군이 죽였고, 그 왜군을 또 다른 아군이 죽였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죽이다가 어딘가에서 포탄이 날아와 또 모두가 죽었다. 바다에는 주검들이 떠다녔고 포연으로 매캐해진 공기가 노량의 바다를 뒤덮었다.


핵심 참모들조차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었다. 왜군의 뇌물을 받은 진린도 웃는 낯빛으로 물었다. 어차피 끝난 전쟁 아닌가. 굳이 병사들의 피를 볼 필요가 무엇인가. 아산에서 왜군에게 죽은 아들 때문인가. 하지만 장군의 대답은 간단했다. 장수된 자가 어찌 적을 그냥 보내겠는가.


마지막이 될 전투에서 적을 벨 때 장군의 눈에는 먼저 죽은 부하들의 영령(英靈)이 보였다. 그 영령들은 죽어서도 장군의 곁에서 싸웠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죽어서도 살아서도 왜적의 목을 벴다. 관음포의 적들 앞에서 장군의 싸움은 이승과 저승에 걸쳐 있는 듯했다. 삶과 죽음이 너무도 간단히 포개지고 비벼지다가 끝내는 구분이 없어졌다. 어둠이 걷히고 장군은 쓰러졌다.


모두가 전쟁의 뒤를 생각했다. 선조는 선조대로, 왜적은 왜적대로. 전쟁이 끝나고 새롭게 펼져질 정치 지형에서 나의 스탠스는 무엇인가. 모두가 그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이순신만이 그런 생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단 하나였다. 전쟁을 끝내는 방식. 이렇게 흐지부지 돌려보낸다면 저 놈들은 다시 올 것이다. 그러므로 철저히 박멸해야 한다. 이순신의 마음 속에는 군인이 가질 수 있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판단만이 존재했다. 그 판단은 아들의 복수에 대한 생각마져도 뛰어넘는, 군인이 입각할 수 있는 군사적 판단이었다. 그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전쟁후 재편될 정치지형 앞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장군은 멈추었고 전쟁은 끝났다. 장군의 운구가 지날때 백성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울었고 길게 늘어선 만장은 구슬프게 펄럭였다. 그때 조선의 하늘에는 커다란 별 하나가 빛났다.



ps :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나서야 영화의 결말이 나온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중에 극장을 나오면 안된다. 반드시 끝까지.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진린은 매우 포악한 인물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인품에는 감동했다고 한다. 명으로 돌아간 진린은 장군의 위업을 황제에게 아뢰었고 황제는 이에 장군에게 선물을 하사했다. 그 선물은 아산의 현충사에 진열되어 있다. 거기엔 친필 난중일기도 전시되어 있다. 아산 현충사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 중의 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 귀한 곳이 황송하게도 입장료도 안 받는다. 어쩌면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국민들이 우리 역사상 가장 귀한 곳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진린이 죽고 얼마뒤 명나라는 새롭게 일어난 후금에 의해 멸망하는데 그때 진린의 손자는 배를 타고 조선으로 귀화했다. 그는 우리나라 광동 진씨의 시조가 된다. 진린은 광동 사람이다.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의 또 다른 장수 이여송의 손자도 조선에 귀화했다. 모두 명나라가 망한 탓이다. 새로 들어선 청나라가 그들을 그냥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여송의 조상은 고려 사람이다. 


오래전에 쓴 관련 된 글이 있다.


https://brunch.co.kr/@browne/93


https://brunch.co.kr/@browne/94


https://brunch.co.kr/@browne/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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