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JOB 생각 .06
우여곡절 끝에 회사를 옮겼다.
국내대기업, 외국계기업 등을 포기하고 시간적 여유가 많아보이는 공기관으로 옮겼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간은 더 부족했다.) 첫 이직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일하는 책상부터 사무실의 사람들까지. 나름 전 회사에서는 차장급이였는데 옮긴 회사에서는 제일 막내였다. 쓰레기통 비우는 일부터 바닥청소까지 잡일을 도맡아야 했다. (일반회사처럼 따로 청소해주시는 분이 없었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입사원의 각오로 새롭게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입이 아닌 경력사원 이직이였기에 회사에서 바라는 기대치가 있었다. 그 기대치는 전에 내 일을 담당한 사람의 퍼포먼스 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압박이 지속적으로 전해져 왔다. 저장되어 있는 문서와 작업파일들을 보니 전에 담당하시던 분이 했던 일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더 디테일하고 깊은 분석자료를 요구하였고 더불어 없던 일까지 만들어서 하기를 바랬다. 경력이직이란 그런 것이였다.
일단은 시키는대로 다했다. 7시에 회사에 도착해서 팀장님이 출근하시는 8시까지 보고자료를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9시에 부장님 보고 이후 최고임원 보고 등 계속해서 보고자료를 만드는 데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본격적인 내 본업무는 모든 보고가 끝나고 오후 늦게 시작하는데 이럴때면 밤 11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물론 전 회사에서는 새벽 3시 넘어서 퇴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6개월이 지난 요즘에는 그나마 일의 순서와 중요도가 파악되고 환경이 익숙해졌기에 아무리 업무가 밀려도 밤 9시는 넘기지 않으려고 한다. 다음 날 출근시간이 7시까지이기도 했고 집까지의 거리가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 왕복으로는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에 막차를 놓칠 수 없었다. 그래서 야근이 있는 날이면 업무를 빨리 끝내기 위해 저녁을 먹지 않았다. (심지어 야근 택시비 지원도 없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아이들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기 위해 이직을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이다. 물론 아직 맡은 바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느껴지는 후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월급도 아쉬운 점이였다. 돈보다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자 이직을 했으나 예상했던 시간적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이전 회사에서 받던 월급의 절반 수준의 월급이 통장에 꽂히는데... 예상은 했지만 막상 통장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일하는 강도도 전 회사에 비해 적지 않은데 연봉까지 절반으로 깍이니 일에 대한 의욕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직 후 예상했던 모든 것이 내 생각을 빗나가는 순간,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음을 안 그 때. 난 가족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첫월급을 와이프 통장으로 송금하면서 발신자명을 다음과 같이 적어보냈다. 함께 하지 못해, 가장으로써 역할을 충족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