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by 라벤더

남편 회사의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과 응급실로 가고 있다고. 떨리는 손에서 전화기가 떨어졌고 다시 조립할 틈도 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호흡기를 차고 있는 남편이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든다. 다행히 응급상황은 넘긴 듯했다. 호흡곤란이라 심혈관 쪽으로 검사를 했는데 다음날 폐렴과 폐수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폐에 물이 차서 숨을 쉴 수 없었던 것. 가슴이 조여들고 말을 할 수 없어서 급하게 메모를 썼다고 한다. 열흘 이상의 입원치료를 받았고 주말에 퇴원했다.

만약 석 달이 남았다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1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다. 10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할 것이다. 우리는 한 번에 하루씩 살 수 있을 뿐이라는 진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하루를 가지고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삶의 의미를 온전히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인간관계나 도덕적 가치와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죽음을 다루는 소설들과 논픽션들을 읽으면서도 사실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죽음도 이별도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다루는 문학의 한계성을 작가도 느꼈나 보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다시 신경과학을 전공한다. 전공의를 일 년여 남겨두고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는다. "숨결이 바람 될 때". 문학적인 제목의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화두로 서른여섯 해의 짧은 삶을 살다 간 작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아툴 가완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에서)' 1년 정도의 삶이 남아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일을 정리하고 가족과 함께 보내며 책을 읽고 글을 쓸 것 같다. 작가는 치료를 받고 몸이 호전되어 다시 신경외과의로 돌아간다. 폐암 말기 환자로 수술을 하고 환자들을 돌본다. 그러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저서를 쓴다. 그의 글에는 문학에 대한 사랑, 의사로서의 삶, 환자로서의 삶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폐암 4기. 말기암 선고를 받고 부부는 고민한다. 결국 아이를 갖기로 하고 인공수정을 통해 딸을 얻는다. 아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 떠나는 마음이 오죽할까. 죽음에 임박한 채 아이를 갖기로 한 결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폴 칼라니티가 딸에게 쓰는 편지부터 아내의 에필로그까지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계속 흘렀고 마지막 가족사진에서는 가슴이 먹먹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가족사진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삶과 이별하는 순간, 그의 곁에는 가족들이 있었다. 모두의 사랑 속에 이별을 맞는다.



남편의 담당 선생님은 만찢남이었다. 명랑만화의 주인공처럼 유머가 넘친다. 매일 회진을 돌면서 농담을 던지며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작가의 아버지도 그랬다. 어릴 적 회진을 돌던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는다. 시체를 해부하며 위 속에 미쳐 녹지 않은 모르핀 두 알을 보며 쓸쓸했을 환자의 마지막을 애도하고, 아내 루시가 죽음을 예견하는 심전도 파형을 보고 눈물짓는 모습에 공감하고, 말기암 환자로 마지막 수술을 집도하고 울던 그는 인간적이면서도 책임감 있는 의사였다. 삶과 죽음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은 의연하고 숭고하다.


왜 내가 이 일을 하는지,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의문을 품은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생명(생명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정체성, 어쩌면 다른 이의 영혼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을 지켜줘야 한다는 소명의식은 이 일의 신성함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인간의 관계를 만드는 언어에 대한 호기심으로 문학을 사랑했고, 삶과 죽음의 공간에서 의미를 만드는 뇌에 대한 호기심으로 신경의학을 공부했던 그는 충만한 삶을 살았다. 비록 짧은 삶이었지만 그가 원했던 "의미를 충족한 삶"이었다. 신경외과 수술을 하며 환자가 어떤 삶을 소중히 여기는지 그의 정체성을 고려하는 현명한 의사였다.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는 의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외과의로서의 오만을 돌아보고 환자를 이해하려 했던 작가의 글은 그래서 깊은 울림을 준다.



죽음을 말하고 있는 이 책은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아툴 가완디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얘기했던 죽음의 존엄이라는 문제에 대해 작가도 같은 생각을 한다.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한다. 언젠가 죽게 되겠지만 사는 동안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죽어가는 순간에 어떤 죽음을 맞아야 할지 생각한다. 병실의 창으로 비치는 따뜻한 저녁 햇살처럼 폴의 죽음은 따뜻하고 행복하다. 숨이 잦아드는 순간 느꼈을 딸의 빰이 따뜻했을 것이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책이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놓으라.
(브루크 폴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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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zy_reading_with_c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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