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모순, 양귀자」

by 라벤더
옛날, 창과 방패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이 창은 모든 방패를 뚫는다. 그리고 그는 또 말했다. 이 방패는 모든 창을 막아낸다. 그러자 사람들이 물었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은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살아가다 보면 창과 방패가 맞서는 일들,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순 가득한 일들 앞에서 존재의 나약함을 느끼기도 하고, 고통의 시간을 견딤이 살아갈 힘을 주는 또 다른 모순을 만나기도 한다. 삶은 결국 모순의 반복. 작가노트를 남겨두었다. 마지막 여운에 가슴이 뜨거워져서 도저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잘 읽히는 글맛, 사랑과 인생을 말하는 깊은 통찰이 짙게 배어있다.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15쪽)'에서 시작되는 진지한 고민들. 매혹의 시간으로 인생의 양감을 늘일 새도 없이 현실적인 삶에 매몰된 모습은 젊은 시절의 나와 만나는 듯하다. 부정의 운명을 타고난 25세 안. 진. 진은 어머니가 둘이다. 쌍둥이로 만우절날 같은 모습으로 태어났고 만우절날 함께 결혼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와 이모. 가난의 굴레에서 억척스러운 어머니는 부정의 대상이고 그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모는 동경의 대상이다. 해 질 녘의 어둠에 가슴 저려하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아버지가 술로 패악을 떨고 가족을 책임지지 않아도 그녀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다. 시장노점에서 양말과 속옷을 팔며 아버지가 방기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도, 조폭의 허세를 동경하며 사고를 치고 다니는 동생도 모순 가득한 삶의 일부분이다.


현실도피적인 아버지를 닮은 장우, 현실적인 이모부를 닮은 영규 사이에서 고민 중인 여자. 두 남자의 구애사이에 어떤 삶을 선택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부모가 보여준 삶 때문에 냉소적이지만, 이제 인생의 부피를 늘리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살기로 한다. '우리는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21쪽)' 인생계획서대로 살아가길 바라는 나영규는 사랑조차도 계획대로 해나간다. 희미한 존재를 사랑하는 야생화 사진작가인 김장우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아무런 관심과 흥미가 없다. 현실과 몽상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안진진.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173쪽)'이모부가 만든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사촌 주리는 자기가 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으며 인생의 비밀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 '옳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면서도 옳은 것이 더 많은 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176쪽)'


세상이 그 애를 단련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모와 이모부의 성실한 방어로 그런 기회들은 철저히 원천봉쇄되었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229쪽)



이모의 낭만성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에 편승하기도 하지만 억척스러운 어머니보다 낭만적인 이모를 더 사랑하는 모순. 불행을 극대화하며 극복의 힘을 얻는 어머니보다 감성적인 이모가 좋다. 지리멸렬과 거리가 먼 어머니의 세계는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이다.(293쪽)'

한치의 결핍도 허락지 않는 이모의 세계는 무균실 같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296쪽)' 행복과 불행은 서로 맞댄 채 그 이면을 드러내지 않을 뿐 결국 쌍둥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모의 선택도, 안진진의 선택도 모순 안에 있다.



작가노트를 읽어보니 작가는 모든 선입견을 배제하기를 원한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도 감동을 남겨놓고 싶은 이 모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302쪽, 작가노트 중에서)'라는 조언은 아주 잘 따랐다. 씨실과 날실의 정교한 짜임, 부피감 가득한 이야기는 속도를 늦추며 읽게 했다. 안진진의 이모가 좋아하던 노래 "헤어진 다음날", 그리고 좋아할 것 같았던 "바람의 노래"를 오래도록 들었다.



헤어진 다음날

이현우(1998년)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어제 아침에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 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올 수는 없나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날 사랑했나요

오오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바람의 노래

조용필(1997년)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에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 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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