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지는 못해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습니다.
카잔 성당은 이르쿠츠크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사실 러시아 길목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성당 혹은 교회 혹은 수도원이라 카잔 성당 방문에 별 뜻이 없었다. 그런데 호스텔에서 만난 욱과 현의 추천으로 카잔 성당에 가보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그곳을 떠올리며 반짝이던 그들의 눈빛 덕분인 듯하다.
그날은 내가 한국을 떠난 날처럼 강렬한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러시아는 만년 추울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편견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한국 더위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의 한낮 태양도 제법 뜨거웠다.
카잔성당은 도시 중심부와 꽤 떨어져 있는 Ulitsa Barrikad 거리에 있는데 그 거리 주변은 흙모래가 휘날리고 왠지 스산한 기운이 맴돌았다. 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이 왜 이르쿠츠크 성당이 아니라 카잔 성당일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그 길을 걷다 보면 뜬금없는 곳에 뜬금없는 모습의 성당이 우뚝 서있다.
카잔 성당은 여태껏 러시아에서 보았던 화려하고 높은 성당들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어울릴 거라 한 번도 생각 못 했던 짙은 갈색과 새파란 벽돌로 만들어진 카잔 성당은 잘 쌓아올린 레고 같았다. 웅장함과 귀여움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있는 카잔 성당만의 오묘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성당 안에 들어서자 시원하고 촉촉한 공기가 온몸을 훅 감싸 안았다. 뒤따라 오는 옅은 모링가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한 발자국 들어왔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계에 발을 디딘 느낌.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경건한 찬송가에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지고 복잡했던 마음도 느려졌다.
그날 나의 첫 번째 물음은 '나 여기서 뭐하고 있지?'였다. 이 물음의 답은 '여행하고 있지' 다. 그렇게 간단히 끝나버리면 좋으련만 질문은 무엇에 만족하지 못하고 왜를 던졌다. '나 왜 여행하고 있지?'
한국에 돌아가고 싶거나 향수병이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왜 여행을 시작했는지 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왜 그토록 변하고 싶었는지 왜 변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선택한 여행이지만 오히려 달라져야 한다는 명제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다.
왜? 라는 물음은 깊은 구덩이에 빠지기 딱 좋은 질문이다. 왜? 딱 부러진 답이 없는 것에 왜가 붙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고 싶지만 정답은 없고 나만의 답을 만들어 가야 하는 그런 것들. 나에게는 줄곧 왜?라는 물음 뒤에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이유 그딴 거 모르겠고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어느새 또 다른 틀이 되어 버린 달라져야 한다는 명제에서 벗어나, 그저 이 여행에서 재밌고 다양한 경험을 잔뜩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참 무기력하던 그때 카잔 성당의 엄숙함은 이유 모를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 미뤄왔던 영수증 정리를 했다. 성당에서 영수증 정리라니. 지금 생각하면 뭔가 웃기지만 영수증 정리를 하고 나니 마음 한 켠이 조금 개운해졌다.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에 들어선 사람들은 30분전에 나처럼 커다래진 눈동자 밑으로 숙연한 입꼬리를 지으며 발걸음이 느려졌다. 마치 모두가 짠 것처럼.
여기서 엄마는 나보다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려나. 불량 신자인 나와 다르게 엄마는 매주 주말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기댈 곳이 없던 엄마에게 성당과 신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내가 엄마의 사랑에 대해 궁금해하면 엄마는 항상 신에게 받은 사랑 덕분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 엄마의 어린 시절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신에게 감사하면서도 기댈 곳이 종교 밖에 없게 만든 신이 미웠다.
엄마와 다르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그 이유가 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은 아니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까. 공기나 사람 마음처럼. 자세히 말하자면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신에게 기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는 편이다. 절대적인 존재를 믿기 전에 나라는 사람부터 믿고 싶었다. 나를 믿기 전에 신을 덜컥 의지해버리면 그 뒤에 숨어버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신을 변명거리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신에게 기대는 것을 경계한다고 했지만 아주 간사하고 모순적이게도 물러설 곳이 없을 때는 신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삶이 고통스러웠을 때 신을 찾곤 했다. 살려달라고 혹은 그냥 죽여달라고. 하지만 요즘은 그럴 때도 신을 찾지 않게 되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기도는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게요.'라는 진부한 문구다. 성산대교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급똥 신호가 찾아왔을 때. 최소 5년짜리 이불킥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붙잡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다행히 신은 불량 신자의 뜬금없는 기도를 들어주셨다. 이럴 때만 신을 찾게 된 것을 보면 그만큼 살만해졌나 싶다.
불량 신자인 나에게도 신을 온전히 믿고 싶을 때가 있었다. 대학시절 같은 방을 썼던 이지와 침대에 누워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다. 그녀에게 신은 인생을 같이 걷는 동반자이자 또 다른 차원의 든든한 서포터 같았다. 이지는 신을 믿음으로써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처럼 나도 신을 믿으면 나 자신도 믿을 수 있을까 싶어 종교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최근 좋아하게 된 영화 <Before sunrise>에서 셀린은 제시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I believe if there's any kind of God,
it wouldn't be in any of us, not you, or me,
but just little space in between.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너나 나,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어.
제시는 셀린을 보며 또 한 번 반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그 장면에서 제시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신을 믿지도 그렇다고 나를 믿지도 못하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믿는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상 카잔 성당에서 잡생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