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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26. 2016

POTEMKIN

역사에 남은 배들

역사를 바꾼 사건은 늘 사소한 계기로 벌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쌓여온 것들이 한 번에 폭발하면서 벌어진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1차 세계대전의 계기가 되었던 페르디낭트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암살사건 역시 그 이전부터 쌓여온 합스부르크 왕가와 세르비아와의 마찰이 암살사건을 촉발하였고, 결국 그것이 전 유럽을 전화 속으로 몰아넣는 전쟁으로 돌변하게 된 것이었으니. 총에 맞아 쓰러지던 황태자 부부도 자신들의 죽음이 그런 참화를 불러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으로 그려지는 전함 포템킨의 수병 반란 사건도 사실 같은 해 1월, 벌어졌던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 촉발된 혁명의 연장선상에 놓인 사건이었지만 일반 민초들의 시위 형태에서 벗어나 군대가 직접 황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는다.


1905년 6월 27일, 제정 러시아 흑해함대의 전함 포템킨호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진다. 변질된 쇠고기와 썩어가는 빵에 분노한 수병들이 장교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해달라고 항의한 것. 이 정당한 항의에 대해 함장은 적당한 선에서 수병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더 나은 보급을 약속하는 선에서 소동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함장이 자리를 뜨고 난 후 부함장은 제대로 된 재료로 음식을 다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이유로 맨 앞에서 항의했던 12명의 수병을 처형할 것을 명령했다. 처음 분노했다가 잠잠해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의외의 상황. 결국, 부함장의 손에 수병 한 명이 사살되는 사태로 발전하자 수병들의 분노는 폭발했고 무기를 들고 18명의 장교 중 8명을 사살하는 선상반란으로 발전하게 된다.

1905년 당시에는 최신형 전함이었던 포템킨. 허나 반란 초기에 사격통제 장교가 죽음을 당함으로써 무장한 모든 무기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전함을 장악한 수병들은 사살당한 동료의 장례식과 재보급을 위해 흑해의 항구도시인 오데사 - 현재는 우크라이나 - 로 향했고 마침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러시아 전역에 폭동이 확산되던 시기와 맞물려 오데사의 시민들이 환호하며 전함으로 몰려오게 된다. 당시까지 흑해함대 최고의 전함이었던 포템킨호는 자신들의 화력이면 항만 내의 육상 병력들에 대한 제어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다른 흑해함대의 전함들도 자신들의 반란에 동조하고 합류를 시작할 것이라 낙관하고 있었으나 다른 전함들의 합류가 늦어지고 - 실제 포템킨에 동조했던 전함은 단 한 척뿐이었다 - 육상의 러시아군들이 항구로 모여든 시민들을 무력 진압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주포의 사격을 통제할 장교가 자신들의 손에 사살당한 탓에 진압군을 향해 발사한 포탄은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버렸고 포템킨과 합류하려던 동급의 전함이 조종 미숙으로 항만에 좌초해버리면서 외부 지원 역시 끊기게 되자 포템킨호는 오데사를 벗어나 루마니아 콘스탄챠로 도주하고 만다. 주동자들은 결국 러시아로 송환되어 사형이 집행되고 단순 가담자들도 시베리아 유형과 같은 가혹한 처사를 받게 되지만 12년 뒤, 제정 러시아에 대한 볼셰비키의 혁명이 성공하게 되면서 포템킨호의 반란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받게 되었다. 지금도 러시아 혁명의 발발은 피의 일요일 사건과 포템킨의 반란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1925년,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 ‘전함 포템킨’을 발표하며 그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허나 '혁명의 주인공'이었던 전함 포템킨의 운명은 나중에라도 명예를 회복했던 수병들의 운명과 사뭇 달랐는데 1917년, 볼셰비키 혁명 당시 백군의 편에 서서 볼셰비키 혁명군과 맞서게 되고 1919년 세바스토폴에서 볼셰비키 군의 손에 넘어갈 것을 우려한 백군들의 손에 침몰되는 비운을 맞이하며 그 생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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