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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Mar 28. 2016

USS YORKTOWN(CV-5)

역사에 남은 배들

동서고금을 통틀어 조그만 전술의 승리가 전략적인 승리도 불러올 수 있고 그 전략적 승리가 전쟁 자체를 끝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음은 다들 알만한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이 건곤일척을 겨루었던 태평양 전쟁. 그 전쟁의 상황을 일거에 뒤바꿔버린 미드웨이 해전에서 이전까지 진행되어 온 전쟁의 양상을 일거에 뒤집어 버리는 역할을 했던 USS YORKTOWN은 지금까지도 적을 기만하는 것과 제대로 훈련된 병사들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 설사 그것이 본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 새삼 일깨워주는 교훈이 되고 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 태평양함대의 기항인 진주만을 기습했다. 애초 미국과의 전쟁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던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불리한 상황에서나마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포함한 주전력을 서전에 제압해야한다는 전제하에 치밀하게 기습을 계획했고 결국 소정의 목표는 달성했으나 애초 목표였던 항공모함은 단 한 척도 파괴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는 일본해군 수뇌부에게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였는데 이후 공격의 가장 큰 목표를 서전에 분쇄하지 못한 항공모함 전력에 두게 된다. 결국 해가 바뀐 1942년 5월의 산호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그토록 바라던 전과를 얻게 된다. 미국의 항공모함 두 척을 침몰시켰다는 낭보를 받은 것. 이 소식을 들은 일본해군 수뇌부의 기쁨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격침된 항공모함은 렉싱턴 하나 뿐이었으나 일본이 경계대상에서 지워버렸던 또 하나의 항공모함 요크타운은 살아남아 있었고 바로 한 달후 펼쳐지는 미드웨이 해전에 미군의 주력 중 하나로 멀쩡히 살아돌아 온다.


세 발의 치명탄과 66명의 인명피해를 입으면서 일본 정찰기의 눈에 복구불능으로 비춰질 정도의 타격을 입었으나 자력으로 진주만으로 복귀 한 것. 일본 해군이 이제 태평양전선에서 미군이 가용할 수 있는 항모는 호넷과 엔터프라이즈 두 척이라고 단언한 상황에서 침몰시킨 줄 알았던 또 하나의 항모가 살아있었다는 것은 기어이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된다.

진주만에 기항하여 수리 중인 요크타운

1942년 5월 30일, 일본 해군이 미드웨이를 향해 진군을 시작하던 그때, 일본이 침몰, 혹은 사용불능으로 판단했던 요크타운은 단 3일간의 수리를 마치고 이탈했던 전열에서 복귀했고 6월 3일, 일본의 공격대가 미드웨이를 급습하고 미국의 항모들까지 씨를 말리려는 작전을 시작했을 무렵, 호넷, 엔터프라이즈와 더불어 일본 함대를 향해 공격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미군의 세 번에 걸친 공격을 막아낸 일본은 ‘이제 미해군의 항공전력은 바닥이 났다.’라고 오판했고 그 오판에 이어 엔터프라이즈에서 이륙한 공격기들이 내습, 카가, 아까끼, 소오류 세 척의 대형 항모를 잃고 말았다. 네 척의 항모중 세 척을 한 날, 한 시에 잃어버리고 조급해진 일본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항공기를 동원하여 미국의 항공모함을 찾아나섰고 결국 요크타운은 일본 해군의 공격대에 다시 한 번 치명상을 얻어맞게 된다. 3발의 폭탄을 정확하게 얻어맞고 불타오르기 시작한 요크타운.


하지만, 일본은 여기서 또 한 번의 오판을 하게 된다. 불타오른 항모가 호넷과 엔터프라이즈 두 척중 하나인 것으로 착각했던 것. 일본은 이제 미국에게 남은 항모도 하나 뿐이라고 판단했고 이제 그 남은 하나만 격침시킨다면 태평양에 미국이 운용할 수 있는 항공모함은 없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요크타운은 여기서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어낸다 - 일본의 꿈이 악몽을 변하는 - 단 한 시간만에 비행갑판의 수리를 완료하고 뒤이어 두 시간만에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수리를 마친 것. 요크타운 승조원들의 빛나는 감투정신이 또 다시 빛을 발한 것이다.


하지만, 요크타운은 미국의 마지막 남은(?) 항모를 뒤지던 일본 해군의 눈에 발각되었고 또 다시 공격을 당하게 된다. 두 발의 어뢰를 좌현 중앙에 얻어맞은 요크타운은 결국 수리불능에 빠져 선체가 기울기 시작했고 함장은 퇴선을 지시하게 된다. 일본은 미국의 마지막 항모를 드디어 격침시켰다고 환호했지만 멀쩡하게 보존되었던 호넷, 엔터프라이즈 두 척의 항모에서 이륙한 공격대가 일본 본진을 기습했고 결국 일본은 마지막 남았던 항모 히류마저 잃게된다.

1942년 6월 7일, 요크타운의 최후

일본의 항공전력이 일소된 직후까지도 요크타운은 침몰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으나 6월 7일 일본 잠수함의 공격을 받고 오뚜기 같은 생을 마쳤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해군 전력의 80%이상을 잃어버리고 결국 이후 그 어느 해전에서도 다시는 이전과 같은 전과를 누릴 수 없게되었는데 이렇게 전쟁의 양상을 아예 바꿔버린 그 가운데에 요크타운이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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