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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Apr 05. 2016

DKM ADMIRAL GRAF SPEE

역사에 남은 배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이들에게 독일해군은 육군이나 공군에 비해 과소평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함 비스마르크를 비롯, 1차대전때부터 그 악명을 높이고 있던 U-Boat에 이르기까지 연합군이나 일본군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소수정예에 높은기술력으로 제작된 함선들로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는 수준의 전력을 가지고 있던 것이 바로 독일 해군이었다. 하지만, 맞서는 영국은 외견상으로도 이미 독일을 능가하는 막강한 해군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쟁 초반 독일은 함대함의 전투에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로부터 영국을 향하는 보급을 끊어버림으로써 영국의 예봉을 꺾으려는 전략으로 맞섰다.  


1차대전후, 1만톤 이상의 전함을 건조하는 것에 제한을 받게된 독일은 일반 전함과 대등한 화력을 갖되 선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장갑을 얇게 제작했고, 그로 인해 부족해진 방어능력은 고속엔진을 장착하여 기동성으로 극복하도록 이전에는 없던 방식의 전함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비스마르크급 이전 독일의 주력 전함들이었던 어드미럴 그라프 쉬페, 도이칠란드, 어드미럴 쉐어와 같은 포켓전함(Panzershiffe: 장갑함)들이었다.

DKM Admiral Graf Spee. 독일은 다른 열강에 비해 작지만 정예의 해군을 가지고 있었고 그라프쉬페는 그 상징이었다.

이 작은 몸집에 엄청난 화력을 지닌 괴물 Admiral Graf Spee의 데뷔는 스페인 내전에서 이루어지게 되지만 당시 역할은 전투 목적이 아닌 스페인으로 향하는 병력에 대한 호위임무였으며, 1939년 제2차대전의 발발과 더불어 영국을 향하는 보급을 끊어버리기 위한 수송선 파괴 임무가 첫 번째이자 마지막 전투임무로 기록된다.

그라프 쉬페는 전쟁을 통틀어 가장 ‘신사적인 전함’으로도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그라프 쉬페의 함장이었던 한스 랑스돌프 대령의  인도적인 처사에 따른 것이었다. 비무장 수송선에 대한 공격임무를 수행하면서 우선 수송선의 선원들에게 배를 버릴 것을 통보하고 승조원들이 배를 떠나는 것을 확인한 후에 포격을 개시함으로써 비무장 인원의 희생을 최소화시킨 것.

함장 Hans Langsdorff 대령

하지만, 계속적인 보급함의 손실은 연합군에게 크나큰 골칫거리였고 결국 영국은 3척의 전함, 2척의 중순양함, 4척의 항공모함을 포함 16척의 전투함을 투입하여 그라프 쉬페를 쫓기 시작했다. 결국 1939년 12월, 중순양함 엑세터(HMS Exete, 20cm포 장비), 경순양함 에이젝스(HMS Ajex, 15.2cm포 장비), 경순양함 아킬레스(HMS Achillies, 15.2cm포)로 이루어진 함대가 기동 중 그라프 쉬페를 발견, 교전에 들어가게 되는데 상황은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1:1 대전도 아닌 1:3의 대결에서 오히려 영국 해군이 세 척 중 두 척이 작전불능 상태가 될 정도로 얻어맞고 한 척은 수리를 해야 간신히 작전에 투입될 정도의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 것. 물론 세 척의 적 전함을 상대해야 했던 그라프 쉬페 역시 상당한 손상을 입었지만 중립국인 우루과이로 피항할 정도의 상태는 유지할 수 있었다.


자침을 택하고 최후를 맞이하는 그라프쉬페.

중립국이기는 했지만 우루과이는 영국으로부터 상당한 영향력을 받고 있던 나라였고 ‘배를 쫓아내지 않으면 추축국으로 간주하겠다.’는 협박을 받고서 그라프 쉬페에게 72시간의 말미를 주고 그 이후에는 국제법상으로 전함을 나포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내게 된다. 도저히 72시간안에 수리를 마무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설상가상으로 히틀러는 태평양 전쟁 말기의 일본처럼 ‘결사항전’할 것을 함장에게 요구해 오게 되는데 무의미한 전투로 부하들을 잃을 것을 염려한 한스 랑스돌프 함장은 배를 자침시키고 선원들을 구하는 것으로 명령에 항명한다.

1939년 12월 17일, 모든 장교들과 수병들을 독일 화물선 타코마호로 옮겨 태운 다음 폭발물을 터트려 몬테비데오 앞 바다에 자침시킴으로써 영국과 프랑스의 연합함대와 벌이던 숨바꼭질에 종지부를 찍는다 - 그라프 쉬페는 2차대전 중 독일이 상실한 첫 전함이었다.

랑스돌프 함장과 그라프쉬페의 승원들. 자신의 목숨과 바꾼 이 승조원들이 이후, 영국과의 해전에서 독일해군의 중추가 된다

마지막 순간, 랑스돌프 함장은 배와 함께 침몰할 것을 택했다. 하지만, 선원들의 간곡한 만류로 단념하게 되나 나흘 후, 선원들을 독일로 보낸 직후 독일 대사관에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항명에 대한 책임을 진다.


몬테비데오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독일인들뿐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해군의 함장과 제독들도 참석하여 그가 보여준 인도주의적 행동을 추모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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