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재성 Mar 31. 2016

RMS LUSITANIA

역사에 남은 배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미국은 엄청난 자본과 제반시설을 바탕으로 전쟁특수를 누리기 시작했다. 전쟁 중 중립을 선언한 터라 전쟁에 발을 담글 일 없이 다른 나라들에게 이런저런 전쟁 물자를 공급하며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독일이 전설적인 잠수함인 U-Boat를 이용한 ‘무제한 잠수함 공격’에 나서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최대 무역국이던 유럽으로 향해야 할 물자를 실은 화물선들이 잠수함의 위협으로 출항이 어려워지면서 항구마다 물자들이 쌓이기 시작한 것. 게다가 독일 잠수함에 의해 침몰되는 배들이 늘어나면서 미국인들의 인명피해도 점점 늘어가기 시작했다.


뿐만아니라 당시까지 전쟁 특수로 재미를 보고 있던 기업들도 사업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강온 양면책으로 미의회와 대통령 윌슨을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민중 다수는 전쟁에 참전하는 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였고 의회와 대통령 역시 중립국 선언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1915년 5월 7일 아일랜드 해안에서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해안가와 상당히 가까운 곳을 항해하고 있었음에도 공격받은지 18분만에 침몰했고 승선중이던 1,957명의 승조원과 여객 중 1,198명이 사망하는 대참사였는데, 그 중 128명의 미국인 희생자였다. 초대형 여객선이 단 한 발의 어뢰로 18분만에 침몰했다는 사실은 이후에도 배안에 여객외에 전쟁에 사용될 무기와 폭발물을 싣고 있던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지만 - 이 추측은 훗날 사실로 드러났다. 탄약 4,200여 상자와 유산탄 1,250상자가 실려있었던 것 - 당시 여론은 비무장 여객선에 어뢰공격을 가한 독일을 비판하는 것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여론은 악화되었지만 윌슨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고 오히려 독일과의 협상을 통해 여객선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침몰로 사망한 희생자에 대한 배상에 나설만큼 전쟁에 나설 생각이 없었고 이듬해 재선을 위한 선거전에서 전쟁 참전은 없다는 슬로건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었지만 루시타니아호로 촉발된 참전여론은 계속적으로 대통령을 압박해오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벌어진 1917년 1월 17일의 짐머만의 전보사건 - 미국이 끝까지 참전을 미루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 독일은 외무상 짐머만이 "미국이 멕시코와 이전에 벌였던 전쟁에서 얻어냈던 뉴멕시코, 애리조나, 텍사스주를 멕시코로 넘기는 댓가로 독일이 멕시코와 동맹을 맺고 미국이 중립을 지키도록 견제할 것. 여의치 않은 경우 독일은 일본과 멕시코를 묶어서 동맹을 맺어서 미군이 대륙에 집중하여 참전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라."는 내용을 멕시코주재 독일대사에게 보냈고 그 전문을 가로챈 영국정보부가 미국으로 그 문건을 넘긴 사건 -  은 윌슨의 인내심에 한계를 가져오고 말았다. 결국 1917년 4월, 미국은 참전을 선언했고 이듬해 11월 11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전쟁은 마무리된다.  

이전 16화 RMS EMPRESS OF IRELAND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