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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Apr 06. 2016

Yamato(大和)

역사에 남은 배들

지금도 많은 이들은 절대 열세의 상황에서도 ‘정신력’으로 승리를 거두는 일을 가끔 기대하곤 한다.

‘어떤 역경이라도 극복해내고, 누구의 눈에도 뻔한 상황을 되돌리는 기적’이라 부르는 이 일은 자주는 당연히 아니지만 가끔 이루어지기도 해서 그렇게 거둔 승리는 자자손손 ‘전설’로 남곤한다.


어린 시절 ‘우주전함 V호’라는 애니가 전국 어린이(사내아이들)들의 눈을 사로잡은 일이 있었다. 

오염된 지구를 벗어나 오염제거기기를 구하기 위해 혼자 우주를 떠돌면서 수많은 적들과 싸우고 결국 자기 한 몸 희생해서 지구를 구하는 전함과 그 승무원들이 주인공이었던 드라마....이것의 원래 제목이 ‘우주전함 야마토’였다는 것을 알고 아무리 어린이들의 눈을 사로 잡고 싶어도 그 안에 들어있는 뜻까지 무시한 채 방영했던 우리나라 방송국의 무신경을 탓한 적도 있었다. - 물론 철들고 난 다음에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그 배, 전함 야마토다.

거함거포주의가 절정기였을 시절 가장 빛나는 주인공이었다가 한 번에 ‘전함 무용론’의 증거로 돌변해서 수천명의 목숨을 하릴없이 집어삼킨 야마토는 2차대전과 현대를 통틀어서 여전히 가장 큰 덩치의 전함으로 남아있다.


1938년, 건조중이던 야마토의 자매함 무사시

전장 263미터, 만재배수량 72,809톤의 어마어마한 덩치였던 야마토는 자매선인 무사시와 더불어 일본의 자존심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괴물이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와 같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크게 하나로 뭉치자는 뜻을 지닌 중세 일본의 사무라이의 모토인 ’大和魂’에서 연유한 야마토는 그 자체로도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부심과는 상관없이 다른 전함의 선원들은 야마토를 '야마토 호텔'과 같은 모욕적인(?)말로 비웃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유인즉, 애지중지하는 일본의 상징인만큼 함부로 움직이다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경우에 당할 사기저하를 우려한 지휘부의 판단 탓에 전투다운 전투에는 참가하지도 못하고 거의 대부분을 정박하고 있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게다가 전쟁이 일본의 열세로 바뀌면서 한 번 움직이는데 엄청난 연료와 군수품을 먹어대는 현실적인 이유도 야마토를 '빛좋은 개살구' 신세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욱일기를 드날리며 항진 중인 야마토. 그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비참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전황이 완전히 기울어가게 되자 결국 떠밀리듯 전장으로 나서게 된다. ‘열세의 전황을 ‘大和魂’으로 극복해낸다’는 특공작전. 하지만, 이 작전 자체가 생각이 있는 해군 수뇌부에게는 자살행위로 비치는 억지였으나 이미 오끼나와까지 미국의 손에 넘어간 상태에서 구석에 몰린 쥐 신세였던 일본군부는 기어이 작전을 수행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편도분의 연료 4,000톤과 1170발의 주포탄 및 각종 물자를 적재한 야마토....왕복이 아닌 편도분의 연료를 채워서 내보낸다는 것 자체가 결국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나라는 얘기였다. 


이 작전이 텐고작전(天一号作戦)이라 불리는 일본의 마지막 해상작전이다.


야마토가 마지막 임무를 위해 출항했던 1945년 4월, 당시의 일본 해군력은 이미 괴멸 상태로 전함을 지원할 항공모함도 없이 지원 항공기도 바닥을 드러낸 상태였다. 4월 6일, 기함 야마토와 호위함 10척이 작전에 나섰는데 출격 직후 미군에게 이미 그 항로가 파악되었고 오끼나와에 접근하던 다음 날, 이미 미군은 항공모함과 오끼나와에 준비되어 있던 400여기의 항공기를 동원하여 이 무모한 작전에 동원된 먹음직스러운 일본의 상징을 향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미군의 항공기와 맞설 항공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전함들은 항공공격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작전이 시작되고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모든 함대가 괴멸(5척 침몰, 5척 대파)되는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작전에서 미국이 입은 피해는 폭격기 10대를 잃은 것 뿐이었으니 일본은 군함 한 척과 적의 비행기 한 대를 바꾸는 것으로 무모함의 댓가를 치르게 된 셈이다.

침몰한 야마토의 상태를 재현한 모형. 그야말로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야마토의 최후는 이후 제공권 장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해 새삼 논의되었고 거함거포주의에 종언을 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공식적으로 일본 해군이 벌인 작전은 없었으며(작전을 벌일 전력 자체가 괴멸)패전은 시간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아직도 가끔 일본드라마의 소재로도 멋지게 그려지곤하지만 아무리 물고 빨고 드높여봐도 텐고작전은 '작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전사에 길이 남을 뻘짓이었고 당시 바닷 속으로 허무하게 사라져간 수 천명 승조원들의 목숨도 어처구니 없는 개죽음이었을 뿐이다. 배는 잃어도 수병들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히틀러의 전원옥쇄 명령을 자신의 목숨을 버리며 거부했던 독일 전함 애드미럴 쉬퍼의 랑스돌프 함장의 결단이 새삼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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