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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덕후, 일론 머스크

by 고찬수

덕후는 한 가지 분야에 깊이 빠진 사람을 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완전하게 몰입해서 관련 지식을 쌓아간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최근에는 많이 생겼다. 덕후라는 말의 어원으로 알려진 일본어 오타쿠는 다른 사름들과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덕후라는 말이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뜻을 가지는 것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성공한 덕후’라고 부르면서 존경의 의미까지도 포함하는 분위기로 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다. IT 업계에서 세계적인 기업을 키운 사업가들은 대부분 덕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데, 특정 분야에 엄청난 몰입을 보여주며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기에 진정한 덕후들이라 할만하다. 이런 점에서 일론 머스크도 성공한 덕후라 하겠다.


그는 이과적 바탕이 강한 사람이지만 문학적인 부분도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그가 열광하고 있던 것은 바로 SF 소설이었다. 머스크는 SF 소설 덕후였다. 그가 SF 소설을 좋아한 이유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사명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자신의 철학적 바탕이 SF 소설에서 받은 영감이라고까지 얘기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청소년기에 그도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에 심취했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철학 서적을 읽으며 그 해답을 찾고자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가 인류의 삶에 대한 답을 찾은 곳은 철학책이 아니라 SF 소설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14세 사춘기 시절, 머스크는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목적의식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니체와 쇼펜하우어 등 많은 철학자들의 책들은 그에겐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머스크는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같은 공상과학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우주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추구해야할 목표를 찾아내게 된다. 지구라는 행성은 언젠가는 인류가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 되거나 파괴되어 사라질 수 밖에 없기에, 인류가 미래에 살아갈 새로운 행성을 만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해줄거라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우주 개척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 생각하는 것은 어릴적 잠깐 빠져보는 상상 속 환상에 불과한 것이 일반적인데, 머스크는 이런 자신의 어릴적 생각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범한 사람이라 하겠다. 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우주 덕후가 되어 관련 공부를 하게 되는 것은 주로 과학자들의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머스크는 사업가의 길을 가면서 인류가 미래에 살아갈 행성에 가는 일을 사업으로 만들었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머스크가 자신의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SF 소설 중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 유명하다. 물론 머스크가 SF 소설만을 읽지는 않았다. 그가 추천한 책은 SF 소설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걸쳐져 있다. 그럼에도 그저 어릴적 호기심에 읽는 정도로 취급받던 SF 소설이 이 시대 최고의 기업가에게 철학적인 영감을 주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하겠다.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의 음악, 문학, 미술,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는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을 좌우하는 깊은 울림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괴짜였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머스크는 SF 소설을 즐겨 읽으면서도 독학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공부해서 12살의 어린 나이에 비디오 게임 코드를 직접 짜서 500달러를 버는 사업 수완을 보여주었었다. 우주에 관한 소설을 읽으며 공상을 즐기는 소년이었지만, 현실 세계의 논리를 잘 이해하고 돈을 버는 합리적인 마인드도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4세가 되던 해에 그는 당시 막 시작되고 있던 인터넷 붐을 타고 첫 회사인 ‘ZIP2’를 세운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이 회사는 좋은 성과를 보이며 컴팩컴퍼니에 인수가 되었고, 머스크는 첫 사업으로 2,200만 달러라는 큰 돈을 버는 행운을 안게 된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다음 사업은 바로 인터넷 금융이었다. X라는 알파벳을 좋아했던 그는 X.COM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인터넷 은행 사업을 시작한다. 공상을 즐기는 소년이었지만 어떤 사업이 미래에 성공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랐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년 후에 그의 회사는 비슷한 사업을 하던 다른 스타트업 ‘컨피니티’와 합병을 하게 된다. 컨피니티의 간편 결재 시스템 이름이 페이팔(Paypal)이었기 때문에 합병 후에 이 회사는 페이팔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2년 뒤에는 큰 성공을 거두며 당시 거대기업이었던 이베이에게 인수되었다. 페이팔의 지분을 꽤 가지고 있었던 머스크는 이로 인해 2억5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두 번의 사업으로 수천억 원의 돈을 마련한 그는 이제 자신이 꿈꾸던 공상을 현실화시키는 일에 나서게 되는데, 바로 세번째 만든 회사인 ‘스페이스X’가 우주에 대한 그의 어릴 적 꿈을 실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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