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가 지배한 대한민국에서 스물여섯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짧은 스물여섯 인생 중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부끄러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해외에서 "I'm from South Korea." 라고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대답할 때 망설임이 없었다. 괜시리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근래 몇 년간 자꾸 부끄러워지는 일들이 생긴다. 지금만큼 대한민국 정부가, 그리고 내가 그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적은 없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이 글을 지우라고 할지도, 인스타그램에 일어나는 현상처럼 삭제 '당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추운 초겨울 날씨의 밤에 수많은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외치고 있지 아니한가. 한낱 개인에게 침해 당하고 농락 당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이의 근간인 우리 국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하여 말이다. 나도 그래서 비록 따뜻한 방구석에 부끄럽게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대통령을 조종하는 그들이 비로소 진정한 부끄러움을 알기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이 작은 공간에서 함께 보태어 본다.
정유라 라는 스무살의 여자 아이는 값없이 참 많은 것을 얻어왔더란다. 그렇지만 나를 포함한 지금의 20대 청년들 그리고 지금도 몇시인지 모르며 밤을 지새며 공부할 수많은 수험생들은 한가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숱한 밤을 불안으로 지새우고 때론 속으로 삭여야만 하는 눈물과 다른 이에게 말하지 못한 '탈락'의 고배로 많은 날들을 지내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기약없는 날들을 지내야 한다.
무릎을 다치고 얼마 안되어 남긴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그때의 심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걸을 수 있다. 실밥도 풀었고 깁스도 풀었고 보조기도 풀었다. 굽혀지지 않는 다리를 보며 울면서 재활하였고 이제 다리가 굽혀 지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근육량이 생겨 걸을 수 있다. 사람은 워낙 이기적인지라 남이 아픈 건 그냥 아픈거고, 내가 아픈 건 하늘이 무너지게 힘들다. '나, 다시 걸을 수 있는거야?' 이 생각이 나를 참 괴롭게 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나의 이 혼잣말을 들었다면 당연하다는듯 무심하게 말할 것이다. '장난하냐? 무릎 수술 받은 거 가지고. 당연히 걷지, 못 걷는 게 말이 되냐?' 라고. 이래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는 거다.
생각보다 몸이 아픈 영향은 마음에게 까지 깊이 영향을 미쳤다. 몸이 약해지자 마음도 약해졌다. 그리고 삐딱해졌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그냥 흘러 듣지 못하고 마음에 꽂히게 들었다. '뭐라고? 니도 다리 한번 부러져 봐라.' 이 생각을 자주 했다. 그야말로 꼬이고 꼬인 상태였다. 나에겐 30년 같았던 꼼짝도 못했던 3, 4, 5월의 3개월 동안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해선 안되는 말들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무릎을 자주 쳐다본다. '저 사람은 다리를 다친 적이 없을까? 무릎이 튼튼해서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의 인생을 통틀어 이번 봄은 가장 잔인했고 나의 내면의 바닥과 가장 나약한 내 자신을 발견한 시기였다.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이 시기를 통해 무너진 내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었고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시기엔 세상이 싫었다. 나 빼고 다 너무 잘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 싫었다. 나는 그동안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굳게 믿어 왔던 것 같다. 물론 그런 태도도 가져야 할 때가 있지만 어쩌면 겸손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라 성경의 몇 구절을 알고 있는데, 그 중에서 전도서 3:1~8 말씀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읽어 보면 괜찮을 것 같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인생의 희노애락이 이러하다는 것을 정리한 구절 같다. 나도 저 구절 중 한 부분을 거쳐 낸 것일 뿐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담대함이 없어서 너무나 심히 흔들렸고 불안했다. 지독히도 자기애와 자아가 강해서 내가 어떻게 되버릴 것만 같아 실체 없는 두려움에 무시무시하게 떨었던 것이다. 이렇게 말은 하지만 나에게 어떤 위기가 또 닥친다면 난 어떻게 흔들릴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끝은 있다는 것을 배워 간다.
나는 지금 취준생이다.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나에게는 왜 기회 조차 주지 않느냐고 하지만 취업한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친구들도 말하지 않았던 참 많은 고생을 해서 지금 신입사원의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점점 얻기 어려워지는 시대에 나와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진다. 인간관계든 공부든 일이든 모든 것은 결국 내 자신과의 싸움으로 귀결한다. 나는 결국 또 나약한 내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실망할 것이고 그러나 다시 어떻게든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일 마저 수많은 날을 애끓음과 불안으로 지새우며 보내야 한다. 직장에서 분투하는 직장인들의 밤은 쉬우랴. 어린 나이에 목표한 대학을 두고 공부 의지를 불태우는 고3의 밤은 쉬우랴.
항상 끝은 있으나, 그 끝은 또다른 일들의 시작일 뿐인 것을 기억하자. 이것은 우울한 게 아니다! 신께서 우리에게 삶은 허락하셨으니 끝도 있고 시작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나의 글은 매우 우울하고 부정적으로 끝맺음 하였지만, 이제는 조금 더 밝고 긍정적인 글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나같이 끝없는 터널을 걷고 있는 듯한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종종 글을 남기려 한다. 지금은 나의 대한민국이 조금 부끄러우나, 우리 다음 세대는 더이상 이런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이 시국에 불구하고 열심히 꿋꿋이 살아가는 모든 이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