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시대, 나눠 먹는 즐거움을 잊지 말자
부모님이 계시고 오빠가 한 명 있는 가정에서 막내로 자랐다. 전형적인 핵가족 형태의 가정에서 자랐고 기숙학교나 기숙학원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다. 단체 생활이라고 하면, 어릴 적 명절에 친척들과 모여 같이 하룻밤 보냈던 것, 학창 시절 갔던 수련회, 수학여행, 대학시절에 짧게 짧게 떠났던 여행이 전부였다.
2014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고 생전 처음 본 사람들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것이 나이 스물다섯에 경험한 첫 장기 단체생활이었고 첫 자취생활이었다.
(엄마가 들으면 되게 섭섭할 소리지만) 다행히 엄마의 음식이 그리 그립진 않았다. 우리 엄마의 음식 솜씨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은 편이어서 그런지, 의도치 않게 난 음식에 있어선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랐다. 그렇지만 가끔 밥 차려 먹기가 너무 귀찮을 때 엄마가 매일 외쳤던 "나와서 밥 먹어!"라는 말이 그리울 땐 있었다. 어쨌든 어린 나이가 아니어서 인지 알아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할만한 일이었다. 처음 본 사이긴 했지만, 룸메이트들과 서로를 식구로 맞아들였기에 가족과 생활하듯이 지냈다. 다 같이 시간 맞춰 집에 왔거나 아무 데도 안 가고 다 같이 집에서 뒹굴뒹굴 지내는 날엔 같이 밥을 해 먹었다. 집에서 엄마가 밥을 짓고 요리를 하고 식구들이 밥상을 같이 차려서 먹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이었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끼니를 함께 차려서 먹는 느낌은 참 낯설고 새로웠다.
집을 얻어 다른 아파트 단지에 사는 같은 프로그램으로 온 친구들과도 밥을 같이 해서 나눠먹었다. 극대화된 이웃과의 정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의 타지 생활은 너무나 적막하고 외로웠을 것 같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외로움을 한상 차려 놓고 폭풍 수다를 떠는 것으로 풀어 버리곤 했다.
같은 단지에 살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다른 도시로 인턴십을 위해 떠나거나 귀국했다. 아파트 단지엔 나만 홀로 남겨졌고 새로운 룸메이트 한 명을 구해서 살게 되었다. 아는 사람들이 갑자기 다른 곳으로 흩어져 버리자 휑한 마음이 컸다. 세 식구에서 두 식구로 단출하게 지내며 때때로 친구들이 워싱턴 디씨에 여행을 오면 숙식을 제공했다. 친구들에게 내 방식대로 만든 워싱턴 집밥을 대접하는 좋은 기회였다. 자취하며 밤에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맥주 한잔을 곁 뜨리던 여유가 너무 그립다. 지금은 그때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서 친구들을 집에 초대할 기회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워싱턴 디씨에서 다니던 교회는 워싱턴 시내에 위치한 GWU 근처의 한 교회 건물을 빌려 예배를 드렸다. 한국에서는 워낙 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예배 끝나고 같이 교회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 교회는 교인수가 많지 않아서 예배당 옆 건물에서 예배 후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가서 나눔을 했다.
교회 점심 식사는 목사님 사모님께서 직접 준비하실 때가 많았고 때로는 유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직접 식당 건물에 있는 작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할 때도 있었다.
교회에서 많은 좋은 인연들을 만났고 그 기억들이 너무 감사해서 나도 식사 준비에 동참하고 싶었다. 마침 마음 맞는 친구들, 언니들과 삼삼오오 모여 재료를 구입하고 비교적 주방이 넓은 친구네 집에서 30인분 정도의 닭갈비를 준비했다. 그날은 할로윈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옆방에서는 크게 노래를 틀어 놓고 열광적인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거실에 모여 앉아 칼질을 하고 있어서 되게 대조적이라고 얘기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위한 요리가 아니라, 그리고 내가 얼굴을 꼭 아는 사람을 위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내일 이 음식을 먹을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것도 참 즐거웠다.
그다음 날 닭갈비를 운반하고 메뉴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부엌에서 야끼우동을 만들었다. 3, 4명이서 야끼우동 만들어 먹을 땐 몰랐는데 20인분 이상의 우동을 볶으려니 면이 어마어마했다. 다행히 면, 야채, 소스가 모두 적절히 잘 어우러져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날 교인분들이 다 맛있게 드셔주셨고 준비하는데 애 많이 썼다고 격려해주시는 말들 덕분에 피곤도 싹 달아났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뿌듯함에 또 요리를 하게 된다.
내가 언젠가 요리를 업으로 삼게 된다면 값을 받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테지만, 소중한 이들에게 기꺼이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잃지 않을 것이다. 음식을 만들 때 내가 느끼는 개인적인 만족감과 기쁨,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기쁨을 모두 생각하며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화려한 테이블 세팅, 비싼 유기농 재료 등등 이러한 것보다는 어떠한 마음으로 이 음식을 만들었느냐가 음식의 본질이고 이 시대에 필요한 음식의 기능인 것 같다.
요즘 하도 사람에 치이는 일이 많아 사람들이 혼밥하며 그 시간에라도 힐링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아무리 사람에 질려도 결국 또 사람의 정을 찾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인간이랑 밥까지 같이 먹어야돼?' 라는 슬픈 현실도 있을지라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과 같은 밥상에 앉아 한 끼를 같이 나눌 수 있는 감사함을 잊지 않는 따뜻한 현실도 자주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