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진짜' 관심은 무엇인가요?

나에게 '부엌'이 갖는 의미

by 다올

스물일곱.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이가 새롭게 무언가 도전하기엔 늦었다고 말한다.


근데, 스물일곱은 나의 나이다. 그들의 나이가 아니라. 고로 나의 인생이다. 그들의 인생이 아니라.


지난 글들을 읽어보면 감이 오겠지만, 나는 정말 관심사도 다양하고 그만큼 다양하게 건드려 봤다.

최근까지도 방송국 PD, 영화감독을 꿈꾸며 스터디에 나가보기도 했고, 공무원 준비도 해봤고 내 전공을 살려 취업도 했었다. 근데, 이게 내 진짜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단 말이다.


특히 지원동기가 오로지 '돈 벌기 위해서' 임에도 오직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태어난 것인냥 내 인생을 조작하는 것은 내 비위에 맞지 않았다. 난 기업이 좋아할 만한 자소서를 잘 쓰기는 그른 인간이었다. 진정성있는 자소서를 몇 번 쓰긴 했지만 그건 정말 나의 관심사가 맞닿아 있어야 가능한 글이었다.


이렇게 얕고 넓은 관심사를 가지고 지구력도 거의 없는 내가 유일하게 아무 잡념이 들지 않고 집중하는 시간이 있다. 바로 요리하는 시간이다.

요리를 할 땐 오로지 재료 손질과 요리 과정에 집중해서 아무 잡념도 걱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재밌다. 안 어울릴 것 같던 재료들이 하나의 그릇에 담겨 엄청난 조화를 이루는 맛을 낼 때 그 기쁨 그리고 사람들이 맛을 보고 정말 맛있다며 먹는 것을 볼 때의 기쁨.

정말 내 인생에서 몇 번 느껴보지 못한 순수한 기쁜 감정이 드는 순간이다.


시금치페스토크림파스타


이 사실을 나는 미국에서 자취를 하며 깨닫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요리 재밌네' 라고 생각만했다면 자취를 하며 요리를 하는 순간에 시끄럽던 내 마음이 조용해지고 복잡하던 생각들도 순식간에 정리되듯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정말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의 첫 요리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엄마를 도우며 옆에서 부치던 호박전이었다. 동글동글 애호박을 썰어서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옷을 입히고 기름으로 달궈진 프라이팬에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익혀지며 완성되는 멋진 호박전의 모습. 그냥 동그랗고 긴 애호박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호박전이 되다니! 하는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요리에 흥미가 없는 엄마는 내가 요리를 곧 잘 따라서 하는 걸 보고 신기해 하시기도 했고 쬐만한 게 제법이라며 칭찬해주셨다.

어깨가 하늘로 솟아서 요리 솜씨가 무척 좋으시던 외할머니댁에 가서도 애호박을 사서 호박전을 부쳤다. 연세가 많으셨던 외할머니는 무슨 요리를 해왔든지 아마 예쁘다고 기특하다고 하셨을 것이다. 외할머니께 들은 칭찬에 힘입어 계속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 요리 꼬꼬뱅


가끔 엄마가 별 반찬 없이 외출하신 날이면 오빠가 학원 가기 전에 케찹김치볶음을 했다. 김치볶음인데 뭔가 맛이 없다 싶어서 케찹을 뿌려서 같이 볶았는데 맛이 더 나았다. 오빠도 내가 해준 음식을 꽤 맛있다고 하며 잘 먹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부엌의 공간은 나에게 익숙했다.


중학생 때, 요리를 배우고 싶다며 조리과학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그저 남들처럼 공부해서 훗날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정시퇴근하는 인생을 살기 원하셨던 부모님은 반대하셨고 그 나이의 나는 부모님을 이겨서까지 조리과학고에 진학할 의지까지는 없었다.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부질없지만 그때 조리학교를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일찌감치 선택한 인생은 어땠을까 하는 일종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이다.


너무나 하고 싶은 요리를 지금 하지 않고 남들이 가는 길처럼 목표도 뚜렷하지 않은 직무들에 기웃거리고 취업 준비를 계속한다면 앞으로 10년 뒤에 이 시기에 내린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한살 한살 먹을 수록 온전히 '나'의 뜻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용기있고 과감해야만 하는 일인지 깨닫는다. 그동안의 나는 주변 친구들과의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 그리고 부모님의 암묵적 기대를 맞추기 위해 그냥저냥 살아온 것 같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른채로 말이다.


스물일곱이 되어 버린 지금이라도 내가 원하는 걸 알게 된 게 다행인걸까? 아니면 차라리 계속 모르고 사는 게 더 나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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