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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금주 Nov 21. 2017

“흑보라색 토종 가지의 자부심”

충북 보은에서 유기농 가지를 생산하는 전경진 농부



토종 쇠뿔가지를 유기농으로 생산하는 참빔자연농장 전경진 농부. 그는 모든 생명과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8년 전 충북 보은에 귀농했다. 명지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일명 ‘공대 오빠’였지만 학생 때부터 ‘도’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그가 친환경 단체인 한살림에서 일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생태나 환경 운동 관련 일을 하면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10여 년 정도 지나니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문명이나 지금과 같은 문화는 지속 가능하지 않겠구나, 대안적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자급자족하면서 생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안고 귀농을 알아보던 중 마침 유기 인증을 받은 한살림 공동체의 생산지 3천여 평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귀농운동본부를 통해 귀한 쇠뿔가지 씨를 받아 2년 차부터 심어 4년째에 상품화에 성공했다. 


쇠뿔가지는 모양이 쇠뿔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흑보라색의 껍질이 두껍고 과육이 단단한 쇠뿔가지는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재배되던 가지였다.


“가지 농사를 오랫동안 짓고 계신 농부들을 만나면 한 20년 전에 지었던 가지라고 하시면서 누가 지금 쇠뿔가지를 하느냐고들 하세요. 그러면서 생산성이 좋은 개량 품종들을 추천해주시곤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토종 가지를 고집하는 이유는 농업의 가치와 사명은 토종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씨앗을 받는 농사는 농부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자긍심을 준다고 말한다.


“만약 지금이라도 씨앗이 수입되지 않거나 종묘회사에서 씨앗을 판매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농업 생산은 일 년이 안 되어 사라지고 말 거예요. 그럼 먹을 것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흔히 먹는 교잡종 F1 종자는 종의 안정성을 갖추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에요. 토종이야말로 갈수록 심해지는 이상 기후와 병충해를 극복하는 미래의 씨앗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생명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귀농한 그였기에 토종 씨앗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재배 방식의 농법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비료도 기계도 없던 시절 오로지 땅에 의지해 농사를 짓던 전통 농사법이 토종의 유전자에 간직돼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무엇보다 유기재배에도 외부 자재가 많이 투입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자급형 순환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5년 동안 퇴비도 안 주고, 땅에 비닐도 안 덮고, 밭도 갈아엎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자연 재배 방식의 농사를 고집했다.그런데 경제적 순환이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유기재배의 5분의 1밖에 생산이 안 되니 생계가 막막했다.  


“지금은 유기재배와 자연재배 중간쯤의 형태로 현실 가능하게 농법을 변경했어요. 잡초 방제 등을 위해 비닐 멀칭을 하고 천연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농사 경험도 쌓이니 3년 전보다 4년째가 낫고 완전히 자연재배로 할 때보다 생산량도 많이 늘었어요. 그래도 아직 안정적인 생산은 못하고 있습니다.”



전경진 농부는 쇠뿔가지를 하우스가 아니라 노지에서 재배하고 있다. 노지 재배는 바람이나 비 같은 자연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벌레도 많이 먹고 상처가 생기기 쉬워 상품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맛은 훨씬 뛰어나다. 낮과 밤의 기온차로 인해 조직이 단단해져 아삭아삭 식감이 좋고, 생으로 먹었을 때 가지 특유의 감칠맛과 향이 뛰어나다. 천연 비에 들어 있는 영양분도 가지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지 농사는 친환경으로 짓기 어려운 작물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가지는 양분을 많이 흡수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열매를 맺으려면 거름 안에 있는 질소, 인, 칼륨 등의 기본 영양소 말고도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소를 많이 필요로 한다. 쉽게 말해 땅 자체가 유기질이 많고 건강해야 한다.


“사실 이곳이 20년 이상 유기농을 한 땅인데 유기질이 별로 없었어요. 5년 동안 자연재배를 하면서 유기질이 조금 올라갔는데 자연재배만으로는 속도가 너무 느리더라고요. 가지가 잘 자라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천연퇴비나 나무파쇄, 풀 파쇄 등의 탄소질을 많이 줬어요. 그렇게 지금은 토양을 서서히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앞으로 땅이 좋아지면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늘 것으로 기대합니다.”  


블랙 푸드 열풍으로 가지의 소비도 점점 늘고 있다. 전경진 농부도 올해는 작년보다 주문이 많았다고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진짜 농부가 되고 있는 그는 이제는 소비자를 좀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현재 거래하고 있는 친환경단체뿐만 아니라 토종 가지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며 대안을 찾아나가고 있다. 전경진 농부는 소비자 입장에서 토종을 살리는 마음을 조금 더 갖는다면 농민의 입장에서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토박이 물품을 사용하는 소비자가 소비 이상의 가치를 느끼면서 자긍심을 가질 때 토종은 생명운동의 중심으로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라고.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1만여 년 전.  그 전에는 수렵 채집을 통해 자연에 있는 것을 먹었다.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병이 생겼다는 학설도 있는 걸 보면 자연에 있는 것을 먹었을 때 가장 건강하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전경진 농부는 농사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 이전 있었던 건강한 먹을거리를 사람이 길들여놓은 작물에 다시 회복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사람이 함부로 개량한 농산물보다 적어도 인간과 같이 천천히 작물의 특성이 보장된 토박이 농사를 하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지어야 할까를 늘 고민한다는 전경진 농부. 그는 만 년 전 사람들이 먹었던 식품에 답이 있다고 믿으며 태고의 자연을 토종 가지에 되살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1-1-532호


www.enviagr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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