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올덴뉴 04화

[올덴뉴] 4편/파이 이야기 (스포주의)

얀 마텔 장편소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원작

by 이야기술사

새책과 헌책을 맘대로 골라 읽는 주말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 리뷰 No.4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이안이 <파이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달갑지 않았다. <파이이야기>는 영화라는 매체보다는 소설에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파이 이야기>는 한번 읽은책을 다시 읽는 것을 꺼려하는 내가

여러번 정독했던 소설이다. 처음에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표지였다.

강렬한 푸른색의 바다와 흰 색 보트. 그 위에 있는 호랑이.

그리고 모든 것을 초월한 듯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있는 소년.

호랑이와 단 둘이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데, 소년의 자세는 한없이 무심해 보인다. 도대체 저 책은 무슨 이야기일까?

그리고 <파이 이야기>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 소설과 어떤 차별성이 있나?

우선, 이것부터 이야기하려 한다.

바다 한가운데서, 혼자 떠다니거나 인간 동료와 함께가 아닌 맹수인 호랑이와 함께 있다는 것, 이것이 기타 바다를 배경으로 한 모험 소설들과의 차이점이다. 파이에게 가장 큰 공포는 벵골 호랑이이다. 인간과 맹수는 바다 한가운데서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이 책장을 빠르게 넘기도록 한다.

그는 벵골 호랑이를 죽일 계획을 세웠으나 다시 그것을 수정한다. 벵골 호랑이의 존재는 그에게 긴장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의 의지를 주는 것이다. 그리곤 호랑이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린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했던 것처럼 야성의 맹수마저 서커스 조련사가 훈련시키듯 그렇게 길들여버린다. 물론 인도 소년의 말을 빌리자면, 살기 위해서다. 인도 소년은 호랑이를 길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벵골 호랑이는 자신에게 먹이를 공급해주는 소년에게 복종을 한다. 일단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소년의 지혜와 용기에는 경외심을 표한다.

두 번 째 차이점이라면 소년이 믿는 신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 소년은 하나님도 믿고, 힌두교의 여러 신들(비슈누 신 등등)과 알라신까지 믿는다.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에 심취한 그 아이는 결국은 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 왜 각기 다른 언어로 말해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아이는 다만 모든 종교의 말씀이 옳다고 느낄 뿐이다.

'파이'는조난당해서도 이슬람식의 예배, 기독교식의 기도 등 여러 가지 의식으로 스스로를 지켜간다. 파이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는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책장을 덮으면서 이 말이 떠올랐던 것은 어디까지가 파이의 이야기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게 만들어버린 소설의 결말 때문이다. 파이가 구조된 이후, 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조사원들에게 들려준다.

인도에서 살던 소년 파이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배가 난파된다. 간신히 소년은 구명보트에 오르게 되지만 그 곳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 오랑우탕 한 마리,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한마리, 그리고 벵골 호랑이 한 마리만이 있었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그의 부모는 인도의 상황이 악화되자 동물들을 처분하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배가 도중에 난파되어 소년의 가족들이 죽고 동물 몇 마리만 남게 된 것이다.

얼룩말과 오랑우탕은 하이에나가 죽이고, 그리고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가 하이에나를 잡아먹고, 결국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만 남는다. 그리고 소년은 우여곡절 끝에 호랑이를 길들이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하지만 일본인 조사원들은 그 이야기를 믿지 못한다. 그러자 파이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에는 구명보트 위에서 하이에나에게 산 채로 먹힌 얼룩말이 아니라 악랄한 요리사에게 다리를 잘리고 죽어가는 젊은 선원이 나온다. 소년의 어머니는 칼에 찔려 죽는다.

파이는 그들에게 묻는다. 인육을 먹어치우고 살아남은 자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이야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그 살인극은 동물에게 맡기고 홀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원하느냐.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에게 파이는 계속 이야기한다.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영어든 일본어든 언어를 사용해서-이미 창작의 요소가 들어가 있지 않나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이미 창작의 요소가 있지 않나요?"



정직하게 말해야겠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불가지론자다. 한때는 의심도 쓸모 있는 법. 우리 모두 겟세마네 동산(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마지막으로 기도했던 곳)을 거쳐야한다. 예수가 의심했다면 우리도 그래야한다. 예수가 기도하며 분노에 찬 밤을 보냈으니 십자가에 매달려 '주여,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었으니 우리도 의심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나아가야 한다. 의심을 인생철학으로 선택하는 것은, 운송수단으로 '정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 파이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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