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24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는데 왜가리가 자주 보인다. 봄여름 사진들에 특히 많다. 왜가리는 겨울 철새라 아마 만추까지는 서울 사람 눈에 자주 띌 것 같고, 월동기에는 남향 주민들과 그곳 동식물들의 새 이웃으로 머물 것이다. 겨울에 왜가리 못 볼 생각을 하니 벌써 아쉽다.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처럼 새들과 의사소통을 한 적도 없으면서, 마치 곧 일 그만두신다는 오래된 우리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나 미화원 할머니 대하듯 왜가리를 여기고 있다. 나도 모르게 정들었나 보다.
‘눈독들이다’ 할 때의 ‘눈독’과 반대 개념으로서 ‘눈정’이란 것도 분명 있다고 믿는다. 이따금 출근길이나 귀갓길에 슬쩍 목례만 나누는 한동네 격장지린(隔牆之鄰), 도심의 길짐승⋅날짐승과 산보객⋅조깅족의 뜨문뜨문한 관계라 할지라도, 눈맞춤이 반복되다 보면 아무래도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알아보게 되고 익숙해진다. 서로의 낯이 익어 간다. 가까이 곁에 두고 지낼 만큼은 아니어도 더이상 ‘처음 보는’ 대상은 아니다. 두 번째 보는, 세 번째 만나는, 네 번째 마주치는, 오랜만에 인사하는, ⋯⋯ 그런 존재로 각자가 서로의 일상 안에 조금씩 쌓여 간다. 속정만큼 깊지는 않겠지만 눈정도 어쨌든 정이다. 보이던 상대가 안 보이면 조금은 마음에 일렁임이 있다.
눈짐작하기로 90 사이즈인 듯한 하계 경비복 상의가 어느새 100 사이즈는 되는 것마냥 헐거워졌다. 몇 달 새 허리가 부쩍 굽어 복도 바닥을 거의 수직으로 내려다보며 대걸레질을 하셨다. 경비원 아저씨와 미화원 할머니는 처음 뵈었을 때보다 마르고 구부러진 모습으로 일을 그만두셨다. 헌춘(獻春)에 돌아온 왜가리가 푸드덕 날갯짓하듯, 두 분이 어디서든 복복하게 살찌고 활짝 펼쳐지셨으면 좋겠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