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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어린이니까

모두가 우리를 기다려줄 거야

by 정재은

2학년 현장 학습에 같이 가줄 부모가 필요하다고 해서 신청을 했다. 아이의 학교 생활에 부모의 참여가 도움이 된다고 들었고 아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학교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팔찌를 찼다. 키즈카페나 놀이동산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종이 팔찌였다. 교복 위에는 눈에 잘 띄는 형광색 조끼를 입었다. 인솔하는 선생님도, 도와주는 부모님들도 형광색 조끼를 입었다.


학교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가 기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이 각각 4-5명의 아이들을 맡아 인솔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선생님이 선두에 서서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건너면, 학부모들이 도로 중간에 서서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왔다.


기차역에 도착해 선생님이 역무원에게 어떤 종이를 보여주니 역무원은 출입구를 열어줬다. 젊은 역무원이 아이들에게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건넸다. 플랫폼에 올라서서 선생님은 아이들이 기찻길 쪽으로 걷지 않도록 노란 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곧 기차가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왔다. 선생님은 플랫폼에서 아이들 모두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서두를 것 없어,
너희를 두고 기차가 출발하는 일은 없을 거야.
너희는 어린이들이니까
모두가 우리를 기다려 줄 거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재빨리 태울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른들 시간에 맞추지 않고 차례를 지켜 기차에 오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맞았다. 기관사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역무원이 아이들이 다 탔는지 플랫폼을 살피고 나서 신호를 보냈다. 허둥대거나 조급해 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이 기차에 타서 빈자리에 하나 둘 앉을 때 기차 문이 닫혔다.


길을 건너는 도로에서도 선생님의 그 말은 유효했다. 한 학년 아이들과 선생님, 어른들까지 합치면 오십 명이 넘는 인원이 한 번에 길을 건너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중간지대에 많은 인원이 기다릴 공간이 없는 횡단보도의 경우 오십여 명이 한꺼번에 길을 건너기도 했다. 선생님은 부모들에게 횡단보도 양 옆, 그러니까 차들이 오는 방향을 막아서주기를 요청했다. 나는 차가 오는 방향 도로 한복판에 섰다.


이미 횡단보도 신호등은 빨간 불로 바뀌었다. 하지만 형광색 조끼를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길을 건너고 있었다. 멈춰 선 차들은 횡단보도로부터 여러 대. 맨 앞 차에게 미안하다고, 양해해 달라고 눈짓을 보냈다. 나이가 좀 있는 여성 운전자가 당연하다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아이들이 집중해서 길만 건너는 것은 아니었다. 재잘재잘 떠들기도 하고 다른 데를 보기도 하며 천천히 자기들 페이스대로 길을 건넜다. 성격이 급한 나는 차를 막고 서 있는 상황이 가시방석 같았다. 신호는 진작 바뀌었다. 차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우리 아이들만 있었다면 뛰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차들이 차분히 기다려줬다. 어떤 차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 건너가고 나서 우리를 기다려준 맨 앞 운전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며 땡큐라고 외쳤다. 운전자가 두 엄지를 들어 보였다. 마치 '우리가 함께 해냈어!'라고 말해준 것 같았다.




서울에서 아이들과 버스를 탔다가 빨리 내리지 않는다고 욕설을 들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이 굳이 버스 맨 뒷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이미 출발해서 움직이는 버스에서 퉁탕거리며 뒷자리로 갔다. 말릴 새가 없었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 뒷자리로 가야겠다. 거기서부터 버스 기사는 화가 났던 것일까.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버스가 정지하면 내리려고 아이들을 준비시켰다. 버스가 멈추고 그제야 맨 뒷자리에서부터 나와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서는 우리가 답답했는지, 아이가 내려서는데 버스 기사가 아주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뭐라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버스는 출발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당황하여 보도에도 오르지 못하고 찻길에 멍하니 서있었다.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2020)를 읽으면서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던 이유는 저런 경험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른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을 ‘기다려주는 어른들’이 없다는 것. 어린이라는 세계를 지켜주는 마을이 없다는 것이 슬펐다. 아이들과 함께 다니는 부모에게 쏟아지는 원망들, 벌레 보듯 하는 눈초리들을 견뎌야 했다. 책에서 표현하는 어린이를 환대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어린이니까 괜찮다고 묵묵히 참아주는 런던의 분위기가 나를 놀라게 했다.


플랫화이트와 베이비치노

런던의 버스는 유모차나 휠체어가 타기 쉽게 낮고, 의자 없이 널찍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식당에는 아이들이 음식을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색칠거리나 미로 찾기 등이 늘 준비되어 있다. 카페에는 우유를 데워 거품을 얹어 초콜릿 가루를 살짝 뿌려주는 베이비치노가 있다. 우유거품이라 아무 맛도 안 난다고 8세, 7세 형제들은 말했다. 비록 맛은 없더라도 카페에 마주 앉아 따뜻한 음료를 같이 마시는 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영국 사람들은 참 아이를 쉽게 키우는 것 같다. 막 걸음마를 하는 아이들이 맨발로 흙바닥을, 풀밭을 걸어 다닌다. 흙이며 음식 묻은 옷도 그냥 입힌다. 아이가 셋인 집도 흔하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손가락을 빠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였다. 손톱을 물어뜯는 어른도 많이 봤다. 첫째가 손톱을 물어뜯은 적이 있었는데, 그 버릇을 고쳐주려고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났다. 여기 엄마들은 억지로 고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러 아이들이 아기 때 했을법한 행동들을 여전히 하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아이들은 사과를 껍질 채 배어 먹고 바나나 껍질을 벗겨 먹었다. 바나나 껍질에는 세균이 많다던데, 사과 껍질에 있는 농약을 먹게 되는 건 아닐까. 아이를 낳자마자 병원에서부터 살균하고 소독하는 것을 배웠던 나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은 씻지도 않은 손으로 간식을 집어먹고 떠들며 신나게 소풍을 갔다. 그 속에서 둘째는 말을 하지 않고도 친구들과 노는 법을 알고 있었다. 몸으로 표정으로 깔깔 웃으며 지냈다. 아이는 기다려주는 분위기 안에서 배려받으며 천천히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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