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허무, 그리고 공포

by 방자까

시작부터 완치 가능성의 싹이 잘린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은 한두 달 약을 챙겨 먹다가 복용을 중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피똥 좀 안 쌌다고 바로 약을 끊어버린 전적이 있고요. 하지만 궤양성 대장염은 발병 1년 안에 대부분 병이 재발하기에, 무엇보다 꾸준한 복약이 치료의 핵심입니다. 병이 재발할 때마다 대장의 손상 정도가 심해져 원래의 장 건강으로 되돌아가기 어려워진다는 의사들의 의견도 있죠.


모든 병이 그렇듯이 궤양성 대장염 역시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끊임없이 싸우고, 부딪혀야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자명한 이치를 무시하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한낱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두 달 단위로 받는 약을 세 번이나 타왔는데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전히 혈변이 나왔고, 어쩐지 그 양은 점점 많아지는 것만 같았죠.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급박변도 여전했습니다. 하루에 네 개씩 여섯 달이면 무려 칠백삼십이 개. 칠백 개가 넘는 알약이 매일같이 대장으로의 긴 여정을 떠났으나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약을 먹는 것도, 매일 약을 넣는 것도 다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함께 할 병, 약을 챙겨 먹고, 챙겨 넣어 봤자 무슨 소용이냐. 에라, 모르겠다. 권태에 빠진 저는 약을 받으러 가지 않았습니다. 복약을 중단한 겁니다.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치료를 중단하다니, 정말로 어리석지요? 하지만 권태, 오직 그 하찮은 감정 하나 때문에 어리석은 인간의 길을 좇은 것은 아닙니다. 권태로 포장한 제 본심은 허무였습니다. 이 길을 걸어가면 100%의 확률로 불구덩이에 떨어지고, 저 길로 걸어가면 1%의 확률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대다수, 아니, 거의 모두가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길을 선택할 겁니다. 누구도 그 끝에 불구덩이가 있는 게 확실한 길을 고르진 않을 테죠. 그러나 제가 걸어가는 이 길의 끝에는 단 1%의 가능성도 확인되지 않은 ‘완치 불가능’이라는 불구덩이가 있습니다.


호전되지 않는 증상과 마주할 때마다 지금 불구덩이로 걸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끝없이 물을 뿜는 소방 호스를 쥐고 있어도 절대 꺼트릴 수 없는 불구덩이. 호스를 꽉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빠졌습니다. 완치 없는 인생, 호전 없는 증세. 평소처럼 일상을 지냈지만, 남모를 우울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권태도, 허무도, 공포를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도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를 말입니다. 복약을 제때 하지 않으면, 염증은 점점 더 대장 안쪽을 장악해나갈 겁니다. 그러면 대장 전체는 염증으로 가득 찰 테고, 대장암 또는 합병증에 걸릴 가능성이 커지겠죠. 대장암은 무시무시한 질병입니다. 궤양성 대장염을 오래 앓으면 앓을수록 대장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자료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서운 상상은 점점 그 몸집을 키워나갔습니다. 권태와 허무를 밀어낸 자리에 공포가 터를 잡았습니다.


다시 약을 받아왔습니다. 병을 고치려는 노력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고쳐지지 않는 병을 고치려고 하니, 권태와 허무가 찾아올 수밖에요. 대신 이 병을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려 합니다. 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인생에 완치는 없지만, 증상이 완화되는 관해기(寬解期)는 있습니다. 그러니 관해기를 길게 유지하는 것을 치료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완치 불가능’의 길을 걷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그 길을 하염없이 늘릴 수는 있습니다.


혹시 또 모르죠. 언젠가는 의학의 발전으로 ‘완치 불가능’이라는 불구덩이가 치익 소리를 내며 꺼질 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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