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성 장 질환 환자 중에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궤양성 대장염에 걸린 후, 평범한 생활이 어려워 학업이나 직장을 그만두시는 분들도 있죠. 그런 사례를 보면, 증상이 혈변과 점액변뿐인 저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인 듯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방자했던 걸까요. 어느 날부턴가 제게도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를 괴롭히는 이 증상의 이름은 바로 ‘급박변’. 배변 신호가 급하게 찾아와 변을 참지 못하는 증상입니다. 쉽게 말해 ‘급똥’이라고 할 수 있죠. 살면서 한 번쯤은 갑자기 찾아온 급똥 신호 때문에 궁지에 몰린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급박변은 이러한 급똥 증상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며,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저는 궤양성 대장염을 앓기 전에 굉장히 건강한 배변 활동을 했습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바람직한 모양의 똥을 쌌죠. 무엇보다 절박한 신호가 오더라도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2시간에 달하는 대학 강의 시간이나,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회의 시간에도 강렬한 배출의 욕구를 꾹 참고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배변 신호가 곧 제 일정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저는 대장의 결정에 따라야만 하죠.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와 산책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평소라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거리지만, 운동 삼아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죠.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한참을 걷고 있는데, 아랫배에 꾸르륵 불길한 신호가 울렸습니다. 큰 놈이 불쑥 찾아온 겁니다. 당황스러워하기도 전에 몸은 벌써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신호가 온 지 10초도 지나지 않았는데, 당장 화장실 변기에 앉지 않으면 큰 놈이 큰일이 될 상황에 놓였습니다.
어떻게든 나가야겠다고 아우성치는 몸속 찌꺼기들은 금방이라도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습니다. 이미 이성은 마비되었고, 집은 너무 멀었습니다. 본능에 이끌린 두 다리는 눈앞에 보이는 건물로 제 몸을 옮겼습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신경은 온통 항문을 향했습니다. 나는 지금 싸고 싶지 않은데,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제 대장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원망하고 서 있기엔 한시가 급했습니다. 허벅지에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준 채, 힘겹게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운 좋게도 공용 화장실이 열려 있었습니다. 저는 다급히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습니다. 놈들은 어두컴컴한 대장에서 황급히 빠져나와 세상과 조우했습니다. 어라, 휴지가 없군요. 괜찮습니다. 미리 알았다고 해도 휴지를 살 조금의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어머니께 휴지를 부탁드리고는 나머지 놈들을 마저 내보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이제 싸고 싶을 때 쌀 수 없습니다. 맘 편히 산책하고, 외출하는 일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일을 다 끝내고 화장실에 가겠다고 결정해도 무자비한 배변 신호의 폭격이 이어진다면 더는 제 결정을 고수할 수 없습니다. 이 문단을 쓰다가도 급히 화장실에 달려갔다오는 바람에 꼭 써야 할 중요한 문장 하나를 잊어버렸습니다.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일하는 프리랜서이기에 망정이지, 직장을 다니며 이 병을 앓으시는 분들의 고통과 불편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궤양성 대장염 환자에게는 매일같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오직 ‘배변 신호’의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라고 믿어왔던 저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털썩 주저앉을 때마다 철학적 고민에 휩싸이곤 합니다. 비정상적인 신진대사 활동으로 자유로운 행동을 저지당하는 나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오늘도 화장실에서 깊은 사유에 빠집니다. 진정 생각하는 사람(thinking person)의 자세로 말이죠. 자유의지와 인간성에 관한 논제가 고작 제 똥 문제로 답을 내기엔 너무나도 심오한 영역이기에, 오늘도 그저 물 내림 레버를 누르고, 똥과 함께 이 고민을 쏴아 흘려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