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부모님께서는 희귀 난치병에 걸린 딸내미 덕분에 어느 날 갑자기 희귀 난치병 환자 부모가 되셨죠. 궤양성 대장염은 사실 특별한 간호가 필요한 질병은 아닙니다. 약만 잘 챙겨 먹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약 먹는 것 외에는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관해가 목표라면, 관해를 앞당길 무슨 시도라도 해봐야죠. 저희 부모님께서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법을 수소문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궤양성 대장염의 원인을 추측하는 수많은 의견 가운데 대다수는 식습관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불규칙적이고, 자극적이며, 서구화된 식습관이 대장에 염증을 일으킨다고 추측합니다. 실제로 궤양성 대장염은 전 연령층에서 고르게 발병하는 질환이지만, 상대적으로 불규칙적이고, 자극적이며, 서구화된 식습관을 가진 2030 세대의 발병률이 조금 더 높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서구권에서 주로 발병하는 질병이기도 하고요.1) 아닌 게 아니라 궤양성 대장염도 어찌 됐든 소화기관 중 하나인 대장에서 발병했으니, 부모님께서는 음식, 요놈이 아무래도 의심스러우셨나 봅니다.
원인이 있다면, 그것을 바꿔야 결과도 달라지는 법이죠. 부모님께서는 ‘식습관 원인설'에 따라 식습관 개선을 권하셨습니다. 우선 배달음식 삼대장인 치킨, 피자, 떡볶이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탄산음료를 포함한 가공 음료와 기름기가 많은 고기, 튀김류도 금지. 사실 이런 음식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건강에 좋지 않죠.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거기에 단백질이 많은 음식도 금지. 참, 유제품, 견과류도 금지입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어째 금지 식품이 한없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분명 처음에는 ‘서양식만 멀리하자.’ 였습니다. 그런데 잠깐, 유제품도 대장에 안 좋다네요. 앗, 단백질도 궤양성 대장염 증세를 악화시킨다고 하고요. 견과류도 먹으면 안 되고, 채소도 절대 날것으로는 먹지 말라는군요. 그럼 대체 뭘 먹어야 하죠? 식습관 개선도 좋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명 '카더라 통신’이 말하는 음식들을 죄다 먹지 않으면, 제가 대장염이 아니라 영양실조로 죽을 판국이라는 겁니다.
실제로 대한장연구학회에서 발간한 책을 읽어 보면 어떤 음식이 증상을 악화 또는 완화한다고 나와 있습니다.3) 그러나 단호히 이렇게 덧붙이기도 합니다. 일부 환자에게는 그렇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겁니다. 식단을 관리한 덕분에 증상이 개선된 환자도 있지만, 이것을 반드시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는 것이죠. 전문가들은 무턱대고 음식을 가려 먹기보다 어떤 음식이 증상을 악화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몸을 잘 알아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내 몸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섭취한 음식과 섭취량을 적고, 배변 상태를 기록했습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적절하게 섭취했는지, 변의 모양과 증상은 어떠했는지 꼼꼼하게 적고, 물 섭취량, 체중 변화 등 사소한 것까지 전부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직 증상을 악화하는 특별한 음식을 알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내 몸 일기를 쓴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식단의 영양소 불균형이 심했고, 섭취하는 음식의 열량이 제각각이었습니다. 물도 잘 마시지 않았는데, 하루에 8잔 이상 물을 마신 후에는 증상이 조금 완화되기도 했습니다.
몸은 우리에게 다양한 신호를 보냅니다. 저도 변기가 빨갛게 물드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기에 이 병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 내 몸 일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조용히 우리 몸을 잠식해나가는 질병의 움직임을 재빨리 눈치채는 데는 내 몸 일기만 한 게 없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내 몸을 잘 알면 더 큰 질병의 위험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백 번의 싸움에서 백 번 다 승리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를 잘 아는 것은 질병이라는 막강한 적을 상대하는 훌륭한 무기입니다.
1) 권대익, “‘선진국 병’ 염증성 장 질환, 20~30대 환자가 39%", 한국일보, 2021.10.03.
2) 대한장연구학회, 『튼튼한 장 건강한 밥상』, 중앙일보헬스미디어(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