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맛 비눗물의 추억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1)

by 방자까

이십 대는 영원한 건강을 과신합니다. 저 역시 이십 대의 건강을 굳게 믿은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직장 동료가 건강검진을 위해 내시경 검사를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귓등으로 흘렸습니다. 스물여섯에 난치병 환자가 될 줄도 모르고 말이죠. 궤양성 대장염이 제 평생 친구가 되면서, 내시경 검사도 저와 평생을 함께하게 됐습니다.


아직도 첫 내시경 검사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피똥의 원인을 찾으러 병원에 갔다가 난치병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던 그 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병원에서는 궤양성 대장염 혹은 크론병1)으로 의심되니, 당장 대장 내시경을 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선 대장에 있는 모든 것을 깨끗이 비워내야 한다고 합니다. 보통은 검사 3일 전부터 장을 깨끗하게 비우기 위한 식단 조절에 들어가지만, 저는 만 하루 전에 병원에 방문한 덕에 지금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는 조건으로 다음 날 내시경을 받기로 했습니다. 피똥의 원인을 알아낸 다음, 맛있는 점심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점심은 고사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 쫄쫄 굶게 됐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단백질 셰이크를 타 마셔야 할 것 같은 500mL 용량의 플라스틱 통과 가루약이 든 상자를 건네주셨습니다. 대장 청소를 위한 장 정결제였습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려면 물에 탄 장 정결제 1L를 검사 전날 저녁에 한 번, 검사 당일 오전에 한 번 먹어야 합니다. 레몬 맛이 나서 거부감이 없을 거라던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머뭇거림 없이 한 모금을 마셨습니다.


장을 청소하는 용도의 약답게 미끌미끌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왜 제게 거짓말을 하셨나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과 달리 이것은 먹을 만한 레몬의 맛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레몬 향 비누를 물에 잔뜩 헹궈 마시는 것과 같았습니다.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차라리 단숨에 벌컥벌컥 마실 수 있다면, 이렇게 괴롭진 않을 텐데. 깨끗한 장 청소를 위해서는 1시간 동안 조금씩, 천천히, 이 레몬 맛 비눗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꾹꾹 눌러가며, 꾸역꾸역 약을 다 먹었습니다. 빈속에 레몬 맛 비눗물 1L를 들이부으니, 금세 신호가 왔습니다. 밤새 대장 속 찌꺼기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검사 당일 새벽, 빈속에 다시 한번 레몬 맛 비눗물 1L를 들이부었습니다.


잠든 사이에 몸속에 내시경 카메라를 집어넣는다는 게 조금 겁났지만, 수면으로 진행한 대장 내시경은 예상외로 아무런 느낌도 없었습니다. 수면 유도제를 맞고 '잠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검사가 끝났다며 저를 깨우셨습니다. 엉덩이 부분이 뻥 뚫린 검사복을 입어야 하는 약간의 수치심 외에는 무서울 것 하나 없었습니다.


검사를 마친 후, 진료실에서 ‘너의 질병은 희귀 난치병이고, 앞으로 꾸준히 약물치료를 하며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큰 충격에 휩싸였던 기억이 납니다. 희귀 난치병에 걸렸다는 사실 때문이냐고요? 그것도 맞습니다만,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다름 아닌 레몬 맛 비눗물이었습니다. 추적 검사를 위해서 이 맛없는 장 정결제를 주기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새하얘졌습니다. 밤새 들이부은 장 정결제가 혀끝을 타고 거꾸로 올라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 (2)에서 계속



1) 궤양성 대장염과 같은 염증성 장 질환이나, 염증이 대장에 국한된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입에서 항문에 이르는 소화기관 전체에 염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출처: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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