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카페에 자주 갔던 이유는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음악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서였다. 귀에는 들리지만 흘려보낼 수 있는 소리, 또 그런 음악들. 가사도 없고 선율도 기억나지 않지만, 옆자리 커플의 대화마냥 잠잠히 공간의 여백을 채워주는 조용한 음악들. 그런 연유로 이 카페에는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의자가 두 개 딸린 자그마한 탁자에 앉아 허공을 마주본 채 내가 할 말을 되뇌어봤다. 인사, 안부,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그 말. 아무리 늘려봐도 할 말은 채 세 문장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꼭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머리를 쥐어짜내도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했다.
『선배?』
『어, 야! 오랜만이다.』
특별한 만남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학교 선배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고, 무심히 건넨 밥 먹자는 인사에 고개를 끄덕이며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전에 가지고 있던 번호와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에는 서로 멋쩍게 웃어보이곤 제 갈 길을 갔다. 그게 전부다. 단지 모른 척 지나칠 수 있었던 짧은 마주침에 손이 멋대로 올라가 인사를 건넨 것, 그 뿐이었다.
그 한 번의 인사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저 그 마주침만으로는 아쉬워서 보냈던 한 번의 연락이 ‘만나서 이야기하자’라는 흐름으로 갈 줄은 상상도 못했던 거다. 물론 누군가가 내게 이 만남을 원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겠지.
왜냐하면, 나도 만나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으니까.
“주문하신 핫초코 한 잔 드릴게요.”
어느덧 도시는 물에 찬 듯 푸른빛에 가라앉아 있었다. 주말 오후, 아직 해가 지기는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지만 한겨울이라 해도 빨리 퇴근하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 길에 소복이 쌓였던 눈은 지저분한 얼룩이 되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지만 날씨에 얼어붙은 탓인지 도무지 녹아 없어지질 않았다.
『너랑 얘기하면……. 벽이랑 이야기하는 기분이 아니라 좋아.』
『어……. 그것 참 다행이네요. 벽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
『아하하. 아니, 그게 아니라. 뭐랄까,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너도 이미 알고 있는 느낌? 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왠지 잘 통하는 느낌.』
핫초코는 달달했고, 텁텁했다. 흑맥주마냥 묵직한 초콜렛의 식감이 혀 뒤쪽 목구멍을 귀찮게 잡아당겼다. 침을 삼켜봐도 까슬한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불안했다. 차라리 선배가 올 때까지 기다릴 걸, 아니면 시간을 맞춰올걸. 여전히 다음 할 말을 머릿속으로 써내려가고 있는 내게 초콜렛의 텁텁함은 꽤나 번거로운 장애물이었다.
벌써 오년도 더 된 옛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던 마음을 묵힌 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말을 전할 용기가 생겼다. 시간도 많이 지났고, 그만큼 선배도 나도 성장했으니까. 지금은 부끄럽게 여길만한 말들, 또 서투르게 느낄만한 행동들을 지금은 하지 않을테니까. 그 때보다 훨씬 멋있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됐으니까. 그래, 그래야 하는데…….
『꿈이 그거야? 할 말 다 하고 사는 거?』
『네. 제가 워낙 말을 잘 못하니까……. 웃기죠?』
『아냐. 정말 순수한 것 같아.』
『에이. 바보같은 거죠 뭐.』
『아니야, 정말. 순수해. 그래서 참 좋은 사람 같아, 너는.』
다만 오랜 시간 묻어둔다고 해서 꼭 할 말이 많아지는 건 아닌가보다. 아무리 쥐어짜내도 그 때 하지 못했던 한 마디만 떠올랐다. 조금 더 멋있는 표현, 비유,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미사여구들, 그게 아니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 당시 내 행동과 말들에 대한 핑계……. 덧붙일 말들이 많은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텁텁함을 알면서도 핫초코를 한 번 더 홀짝였다.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보니 그 새 거리의 푸른빛은 더 짙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푸른빛 속에서, 소복이 쌓인 눈 너머, 카페의 창문을 따라 익숙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끼고 목을 잔뜩 움츠렸는데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
딸랑, 문이 열리고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왜 덧붙일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그 때와 다름없는 환한 미소, 그 때와 다름없는 보조개, 그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 발걸음. 첫 만남과 다름없는 여전한 아름다움으로, 선배는 몇 년의 시간을 뚫고 내게 걸어왔다.
할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나는 미소와 함께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지냈어요?”
“나는 잘 지냈지. 너는 어때?”
“저도요. 그냥저냥.”
그 말을 했어야 했다. 선배의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열린 입에서는 하고 싶었던 그 말이 흘러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간신히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말은 잘 지냈냐는 진부한 인사가 다였다.
따뜻한 집에 돌아와 벗은 외투를 벽에 거는 것처럼 선배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마저 오 년 전 그 때와 똑같았다. 무엇을 하든 선배는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으며, 뭘 하든 선배 앞에서의 내 행동은 어색하고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리에 앉은 선배는 따뜻한 차를 주문했다. 그 사이 창 밖에는 어둠이 더 짙게 내려앉았고, 주홍빛 가로등 너머 화려한 간판들도 불을 밝혔다. 며칠 전에 쌓였던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듯, 민들레 꽃씨처럼 보송한 눈도 바람없는 거리 위로 천천히 뿌려지고 있었다.
“시간 정말 빠르다.”
“그러게요.”
그렇게 말하는 선배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에는 무슨 생각이 담겨있는지, 반쯤 감긴 눈은 창밖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배의 모습은 내게 창밖보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그래, 꿈은 이뤘어?”
“네?”
이미 한참 지난 옛날에 발을 들여놓고 있던 정신은 그제서야 카페로 돌아왔다. 바보처럼 두 눈을 크게 깜빡이는 내 모습을 보던 선배는 차를 한 번 홀짝이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할 말 다하고 사는 게 꿈이었잖아.”
“아……. 그랬죠.”
“그래, 요즘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있어?”
뭐가 재밌는지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혼자 쿡쿡 웃었다. 여전히 그 꿈을 기억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아름다운 그 미소가 내게는 더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것이 기억의 미화 때문이든, 몇 년 째 눈 안쪽에 자리잡은 콩깍지 때문이든.
“전보다는요.”
이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어설펐던 표현, 마음을 다 보여주지 못했던 말들, 혹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행동들을 자제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연스럽고, 조금 더 어른스럽고, 조금 더 분위기에 어울리는 모습을 지어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짧은 대답 후에 지어보인 미소가 그토록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아참, 줄 게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가방을 뒤지던 선배는 금세 하얀 봉투를 꺼냈다. 별다른 장식도 없이 펑퍼짐하고 두툼한 봉투. 나는 괜히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봉투의 앞뒤를 살폈다. 머릿속에서는 봉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유력한 가능성만을 배제한 채 이상한 소설들만 써내려가고 있었다. 편지인가, 선물인가……. 하지만 어서 열어보라는 듯, 선배의 얼굴에 자리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나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결혼하세요?”
“응, 다음 달이야.”
이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 그 때 그 때 생각이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하는 법도 익혔고, 한 마디 말을 내뱉더라도 먼저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 이제 나도 성장했다. 그 때와는 달리 표정 하나, 말 한 마디에 내 깊은 속을 보이지 않으면서 뻔뻔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
“축하해요, 선배.”
“고마워.”
눈은 계속 내렸다. 내리는 눈은 점점 더 굵어지고, 까맣게 얼룩졌던 거리도 점점 하얗게 물들기 시작하고. 나는 자꾸만 흘러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핫초코는 씁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밝은 미소를 지은 채, 이 카페의 가장 달달한 음료를 나는 이 세상 가장 씁쓸한 맛으로 마시고 있었다. 그 다음에 몇 시간동안 선배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왜 선배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았다. 끝을 맺지 못한 기억, 표현하지 못한 감정, 앙금처럼 가슴 깊숙한 바닥에 깔려있던 마음을 이제는 보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 가야겠다. 같이 갈까?”
“아뇨, 전 좀 더 있다 갈게요."
선배는 한 번 끄덕여보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억 속 그 때와 변함없는 미소를 마지막으로 선배는 그렇게 카페에서 걸어 나갔다. 이미 차갑게 식은 머그잔을 괜히 한 번 홀짝이고, 뒷머리를 긁적이고, 소매를 걷었다가 다시 펴보고. 딸랑, 마지막 선배의 뒷모습은 그렇게 문 너머로 사라졌다.
기억은 용량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꽤 많은 일들을 잊게 된다. 남아있는 기억을 모아 추억으로 단장하며 살아가곤 하는데, 마음에는 그 용량이라는 게 없는 듯 하다. 지나간 게 아니라 그저 바닥에 켜켜이 쌓여있었던 것 같다. 시간의 강물이, 바닷물이 아무리 빨리 흐른들 마음 깊은 바닥까지 훑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흐릿한 기억들에 감정만 선명하니, 수채화 물감을 물 없이 덕지덕지 바르는 기분. 선배와의 이야기는 그랬다. 붓이 상하고 종이가 긁히는 것처럼 가슴도 어딘가 아려온다. 그래도 쌓여있었으면 계속 덮어져 있었을 마음, 솟구쳐 올라오니 이제 흐르는 물 따라 멀리 씻겨 내려가겠지.
눈은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다. 구두를 고쳐 신고 코트를 여미고,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머그잔을 괜히 한 번 돌려보고. 더 이상 가다듬을 것도 없었고, 굳이 더 보탤 것도 없었다. 선배가 떠난 자리를 떠나는 일은 그리 발이 무거워지는 일도 아니었다. 마음 가벼워지는 한숨을 가볍게 내뱉고, 나는 간신히 했어야 할 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좋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