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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 단풍

by 봄단풍

보이지 않더라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아름다움은 분명 세상 곳곳에 있을 거다.




단풍이 의미없다 느낀 밤이 있었다. 나무가 아무리 예쁘게 옷을 갈아입으면 뭐해, 빛이 없으면 스산한 숲일 뿐인데.


어딜가든 과정보다는 결과로 말해야하는 것이 사회라지만 영업이라는 것은 특히 더 그랬다. 고객의 니즈 분석, 완벽한 CS, 혹은 실속있는 KPI등 이런 저런 구실과 명목을 아무리 앞세운다 한들 결국 오늘 한 명이라도 더 유치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야하는 것이다. 완벽한 분석과 전략을 짜고 고객을 감동시키는 응대를 하더라도 고객을 늘리지 못하면 실패이고,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늘어져서 억지로 가입을 하더라도 일단 숫자가 늘면 성공이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카드를 권하는 일은 내겐 고역이었던 것이다.


그 분이 은행에 찾아오신 이유는 하나였다. 본인의 임종 뒤 자녀들이 편하게 돈을 찾도록 하고 싶다고.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않은 것 같으니, 자신이 떠난 뒤에도 남겨진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상속 절차에 있어서 통장의 종류는 무관하니 걱정마시라는 말씀을 몇 번이고 드렸지만, 그 분은 조금이라도 편한 방법이 없느냐며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메신저가 울렸다. 한 달에 40만원만 쓰면 병원 진료비 할인 옵션이 붙은 신용카드를 추천하라는 메시지. 어서 그렇게라도 신용카드 판매 좌수를 올리라는 꾸중도 양념처럼 스르륵 얹혀서는, 그 녀석은 내 모니터 한 쪽 구석에 떠올랐다.


“그......”


그게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그 지시를 한 차장님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또 그렇게 상품을 추천하는 게 윤리적으로 나쁜 일도 아니라는 걸.


하지만 마지막까지 나는 결국 카드를 추천하지 못했다. 그 분의 푸념 섞인 하소연을 들으면서 손을 한 번 잡아드리고, 지금 당장 통장을 바꿔도 자녀분들이 겪는 절차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안심을 시켜드렸을 뿐이었다. 늘어나는 대기번호의 눈치를 살피면서, 그 와중에도 눈치를 살피는 나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다 생각하면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늘 타던 버스대신 걷기로 작정하고, 단풍나무가 드문드문 늘어선 골목길로 발을 옮겼다. 이미 한 번 수선했던 구두굽은 꼭 녹아내린 것처럼 바닥에 쩍쩍 달라붙었다. 달도 없는 밤이었다. 한적한 골목에는 가로등이 두어개, 구석에 세워진 단풍도 어두운 그림자로만 보이는 깊은 밤.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연해진 것들이 있다. 결과가 적절하지 않다면 과정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나, 다른 사람보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갈등이 생겼을 때는 먼저 고개를 숙이거나 그 사람을 위하는 말을 하지 말 것, 경쟁이 필요하다면 배려와 존중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 필요하다면 원하는 결과를 쟁취한 이후에 논의할 것.


다른 사람의 일에는 보고 듣는 것 외에 더 큰 관심을 두지 말고, 관여하지도 말아야 할 것. 위험한 사람이 있다면 법대로 처리되길 기도하고, 아픈 사람이 있다면 동정 이상을 베풀지 말 것.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일에 애꿎은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보듬어주기보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서서 함께 감당하길 기원하고, 정말로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축하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 그리고 내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것. 거친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터득한 요령은 어느새 지혜라고 부르게 됐고, 그런 요령에 익숙해진 모습을 우리는 현명한 자세라고 부르게 됐다.


언젠가 단풍이 의미없다 느낀 밤이 있었다. 아무리 화사하고 아름다운들, 비춰주는 달빛 없는 밤에는 으스스한 배경일 뿐이라고. 하지만 가로등 불빛 하나에도 그 붉은 빛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보이지 않더라도 늘 그 자리에 있는 아름다움은 분명 세상 곳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어둡고 침침하더라도 아주 작은 불빛만 켤 수 있다면. 분명히 그 아름다움이 숨겨진 구석에는 행복도 있을 거다.


어두운단풍.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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