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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Oct 13. 2022

넌 안 와도 돼..

호야의 나의 선생님 (12)

특수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왕이면 긍정적인 마인드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마음만은 진심이다. 헌데 현실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아예 모르는 타인에게 받는 상처도 견뎌내기 쉽지는 않지만, 이젠 뒤에서 혼자 울지 않는다. 대신 대놓고 그 부당함에 대해 따진다. 아이 친구들이 내 아이에게 못되게 구는 것도 아직 어린아이의 철 모르는 행동이니 이해할 수 있다. 아이의 부모가 우리 아이를 이해 못 한다면? 안 만나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받는  마음의 상처는 정말 쉽사리 아물지 않지만 말이다. 그중 최악은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받는 상처다. 이 상처는 정말이지 깊게 흉터처럼 남아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 '나의 선생님' 시리즈를 통해 호야에게 특별한 영향력을 끼친 선생님들은 소개하고 있지만, 우리가 만난 선생님들이 모두 좋았고 훌륭했던 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만큼, 차별이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어도 여전히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것처럼, 장애에 대한 차별도 존재한다. 의도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6학년의 꽃, 전체 수련회

호야가 다녔던 High Tech Middle, Media Arts (이하 HTMMA)에서 '6학년의 꽃'과 같은 이벤트는 6학년 전체 수련회다. 4월에 약 1주일간 떠나는 이 수련회는 전 학교생활을 통틀어 가장 긴 단체 생활을 하게 된다. 이 행사 펀드를 만들기 위해 1인당 정해진 금액을 내기도 하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돈을 못 내는 아이들을 위해 1년 내내 기금 조성 이벤트를 연다.

원래 6학년 전체 수련회는 예전에는 샌디에이고(미국일 수도 있다)의 6학년들은 모두가 가는 행사였다고 한다. 지금은 펀딩 문제 때문에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이 행사의 전통을 우리 학교를 비롯해 주변 몇몇 학교들도 지키는 학교들이 있는데, 3월쯤 되었을까. 호야와 동갑인 특수아 엄마가 전화를 해서 "6학년 캠프에 우리 아이가 오는 것을 학교에서 허락"했는지 묻는다.  

나는 "모든 6학년들이 다 가는데, 당연히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느냐"라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노골적으로 자기 아이가 안 왔으면 하는 티를 팍팍 낸다"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이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아이 친구들이 다 가는 이 수련회를 우리 아이도 갈 권리는 있다. 일단 보내고 아이가 정 못 버틸 것 같으면 도중에 내가 아이를 데려오겠다"라고 학교와 타협을 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5학년 1박 2일 캠프를 떠올렸다.


https://brunch.co.kr/@cbeta02/22

우여곡절 끝에 호야는 5학년 때 링크의 하룻밤을 친구들과 지냈다. 선생님의 인내심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었을 일이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친구들과 단 하루 지내고 온 것이었으나, 그 일을 계기로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 지금도 그날 아침, 아이를 보러 갔을 때 스스로 의기양양해하던 그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엄빠 없이도 해냈다!"는 자신감을 그때 호야는 처음 배웠다.

이번 6학년 캠프는 일주일이나 되는 긴 기간이지만, 아이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6학년 캠프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설령 도중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참여시킬 작정이었다. 그런 가능성을 은근하게 거부당한 친구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참담했고, 한편으로는 우리 아이에게 열린 마음을 가져 준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새삼 들었다.


6학년 전체 캠프를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지금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나는 학교에서 호야와 호야 친구들을 학교에서 약 50km 떨어진 샌디에고 와일드 애니멀 파크에 데려다주고 아이들 몇몇의 안전을 관리하는, 운전자 겸 아이들 보호자로 발룬티어 중이었다. 수학/과학 수업 관련 현장 학습에 학부모 발룬티어로 따라간 것이었는데, 현장학습이 거의 끝날 무렵, 수학 선생님이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호야가 너무 힘들어하면, 6학년 필드트립 안 보내셔도 됩니다


그 당시 나는 특수 교육 팀 선생님들 (호야의 케이스 매니저, 일반 교사, 아카데믹 코치, 교장 선생님 등)과 아이가 수련회에 맞닥뜨릴 문제 상황에 대비해서, 예상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리스트업 해 놓고, 각각의 케이스에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지 선생님들과 한참 논의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를테면;

호야가 화장실의 핸드 드라이어의 소리를 무척 싫어했는데(사실),
수련회 장소에 핸드 드라이어가 있어 아이가 화장실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으니(문제),
그럴 경우를 대비해 학교에서 미리 헤드폰을 준비해 화장실에 갈 때마다 헤드폰을 사용하게 하고(문제 해결),
헤드폰 없이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도록 옆에서 북돋아 주겠다(이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

는 것으로, 아이의 겪게 될 문제 상황에 대해 필요한 대책을 세우고 있던 때였는데, 애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으면 오지 말라니.. 처음부터 오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럴 거면 대책 수립 미팅은 왜 그동안 한 것인지,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졌다. 마치 우리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 양, 상냥하게 말하는 그 말속에 숨긴 의도를 나는 너무 적나라하게 알아챘다. 그 수학 선생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이지 우리 가족에게는 최악의 교사였다.


그래도 호야는 갑니다.

며칠 동안 속앓이를 했다.

처음엔 속상했고, 그다음엔 화가 났으며, 마지막엔 그 선생님의 입장이 이해는 되었다. 신경 많이 써야 하는 우리 아이 같은 학생이 교사 입장에서는 성가실 수도 있겠지..

이해는 하지만 수련회는 그냥 보내기로 결정했다.


6학년 때 메인 교사인 수학/과학 선생님과 인문학 선생님 둘 다 우리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해하려는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인문학 선생님은 세상에 대해 느끼는 문제에 대해 숨죽이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라는 프로젝트를 하셨었는데 그 선생님이 느끼는 불평등한 문제에 LGBTQ, 사회적 불평등 등은 포함이 되지만, 장애인에 대한 평등권은 포함되지 않은 것을 몸으로, 행동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위선자.

만약 그 둘만 수련회에 간다면 우리 아이는 방치될 것이 뻔했다.


믿고 보낼 수 있는 교사들이 더 많았던 행운

그러나 HTMMA에는 우리 아이를 수련회에 믿고 보낼 수 있는 선생님들이 더 많이 계셨다.


우리 아이의 케이스 매니저였던  Mr. Zac Clarke.


잭 선생님이 보내준 폴라로이드 사진. 이 사진을 나에게 직접 주셨기에 그나마 이 한 자이 살아남았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에  대한 PPT 2 동안  주신 덕에 호야는 자신의 다른 점을 친구들에게 이해받았으며본인의 특별함을 존중받으며 학교생활을   있었다.  하이텍에는 정규 수업이 끝나기 30 전에 일종의 클럽 모임인 X-Block 시간이 있는데이런 그룹 활동이 호야에게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신 선생님은  클럽을 하나 만드셨다이름하여 #Lego 클럽호야에게 안성 맞춤인  클럽에서 호야는 대부분 혼자때때로 친구 몇몇과 함께 원도 한도 없이 레고를 만들어댔다선생님은 호야가 레고를 완성할 때마다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호야에게 보내주셨다.(아쉽게도  사진들을 호야가 제대로 챙기지 못해 지금   남아있지 않다 


선생님은 나중에 호야 생일 , (아랫글에서 문제가 레고 기차 책을 선물로 사주시기도 하셨다.




https://brunch.co.kr/@cbeta02/36


Media Art 교사였던 Miss. Jen Morrison

선생님도 우리가 믿고 보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한 분이다.

선생님의 포토샵 수업에 아이가 집중을 하나도 못해 따라가지 못하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셨다. 집에서도 포토샵을 사서 깔고 연습을 시켜 보내달라는 것. 하지만 평소에 포토샵이 익숙하지 않은 울 아이가 집에서라고 포토샵을 할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나를 호야 옆에 앉혀 놓고 수업을 하셨고, 그렇게 겨우겨우 힘들게 만든 작품이 내 브런치의 프로필 사진이다. 이 프로젝트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에 올라온  Project, A*dapt를 찾아보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beta02/71

 

젠 선생님 수업 시간에 한 프로젝트 결과들
우리 아이들의 프로젝트 작품들이 학교 재단 홈페이지를 장식하였다.


교장 선생님인 Ms. Casey Salmon

우리 아이가 8학년이 되던 해 Casey 선생님은 HTH 재단 내 K-12학년, 즉 전 학년의 특수 교육을 총괄하는 디렉터로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캐시 선생님은 특수 교사로 필리스 선생님과 함께 하이텍의 특수 교육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던 분이다. 이런 분이 운 좋게도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 되는 그 해에 우리 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셨다. 아무래도 디렉터가 특수 교사 출신이면 특수 학생들이 더 제대로 케어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 점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PBL는 리더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방향과 퀄리티가 달라진다. 이런 측면에서 캐시 선생님이 교장인 것은 호야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 볼 일은 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Academic Coach였던 Ms. Charlotte Springs도 빼놓을 수 없다.


https://brunch.co.kr/@cbeta02/91


Miss Charlotte이 6학년 마치고 나에게 보낸 텍스트. 운 좋게도 매년 학기말에 나는 이런 문자를 하나씩은 꼭 받았다. 이렇게 넘치는 사랑을 호야가 받고 있다니!

우리 학교의 아카데믹 코치의 역할에 대해 윗 링크 글에서 언급한 적 있다.

샬롯 선생님은 지금은 HTMMA의 수학/과학 선생님이시지만, 우리 아이가 6학년일 때는 갓 부임한 아카데믹 코치셨다. 기존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역할이 아카데믹 코치의 일이고, 우리 아이는 선생님을 아마도 제일 많이 만난 학생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을 통해 호야는 자기의 학점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고, 힘들지만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처음엔 학점의 ABC가 무엇을 이해하는지 몰랐다. 문자를 퍼센티지로 바꾸어 설명을 해주니 100%에 집착했던 울 아들은 B만 나와도 튜터링 시간에 가서 메이크업해야 하니, 학교에 1시간 빨리 데러다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이렇게 학점을 관리하는 법을 배운 아들은 지금도 학점 관리를 스스로 한다. 엄빠를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거란다.


이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호야는 5일의 수련회를 잘 마치고 돌아왔다. 친구들과 함께 하이킹도 하고, 호숫가에서 카약도 하고, 캠프 파이어도 하고, 정말이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선생님들도 호야가 핸드 드라이어가 비치된 화장실을 선생님 도움 없이 혼자서 잘 사용할 정도로 행동적인 측면에서 발전했다고 말씀하시며, 수련회에 있는 동안에도 의젓하고 점잖게 단체 생활을 잘했다고 칭찬하셨다. 그렇게 호야는 수련회를 통해 또 한 뼘 커서 돌아왔다.

수련회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를 발견하고 신이나서 뛰어오는 우리 아들. 이 캠프를 잘 견뎌낸 것이 기특하여 레고 미니 쿠퍼셋 선물로 사주었다는!

아이들은 먼저 안다. 선생님이 특정 학생에게 대하는 태도로 아이들은 그 학생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입장을 정한다.

선생님이 한 학생을 사랑하고 존중하면 아이들도 그 아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선생님이 한 학생을 방임하고 배제하면 아이들도 그 아이를 왕따 시킨다.

'특수성'은 특히나 학교에서 방임과 배제의 이유가 되므로 선생님을 잘 만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나를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 아이가 이해받지 못한 교사들에게 받은 상처를 좋은 선생님들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나도 지금까지 버틴 것 같다. 역시,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받아야 하나보다.


2022년 10월 12일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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