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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CHO Aug 30. 2024

ICN-TPE OZ713 BR타고 다시 갈래! 타이베이

경유지 1 / 타이베이

한국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우리가 출발할 7월 9일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7월 중순에 에어버스 공장 투어를 할 계획으로 7월 초부터 계속 투어 스케줄을 체크했는데, 이게 웬걸.. 내가 미국에서 보았던 투어 스케줄이 그 사이에 죄다 변경되어 있었다. Flexible Rate으로 호텔을 예약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일단 에어버스 투어 예약부터 한 후, 나머지 일정들을 채워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내에서 이동은 상당 부분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여행이란.. 실수와 문제 해결의 반복인 듯

그러는 사이, 중요한 실수를 했다.

타이베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하노이로 입국해 3일 정도 있을 생각이었는데, 미국인은 베트남 입국 시, 사전에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출발 전 날 알았다. 부랴부랴 입국 비자 신청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갔지만, 비자 발급에 요구되는 시간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신청 후 발급받는데 3일 걸리는 비자는 신청 비용이 일인당 $25이었지만, 하루 걸리는 비자는 1인당 $200이 넘게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호야와 나는 2인이니 토털 $350 넘는 비용을 더 내야 했다.


인천 공항 아시아나 카운터에서 발권을 받을 때에도 비자가 문제였다. 아시아나 지상 직원은 최종 목적지가 하노이이기 때문에 원칙상 인천-타이베이, 타이베이-하노이 티켓을 둘 다 발권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처럼 비자가 없는 경우에는 하노이 티켓이 발권 자체가 되지 않는단다. 발권은 되더라도 입국에서 문제가 될 줄 알았는데 발권 자체가 안된다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첫 구간부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풀어야 했다. 더군다나 의사소통이 편한 한국에서 최대한 해결을 하고 타이베이행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일단 지상직원에게 하노이가 최종 목적지가 아님을 설명했다. 방콕 이후에 계속 비행이 있음을 보여주는 걸로 증명이 되었다.

호야가 사랑하는 베트남 음식이 마음에 걸렸지만, 하노이는 포기했다. $350 이상의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안 순간, 바로 결정했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인 내가 여행할 때만큼은 판단이 빠르다. 주저하는 순간순간이 모두 나중에는 금전적인 손해와 후회로 남는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일단 결정을 하고 나자 내 머릿속은 빠르게 움직였다.


... 내가 짠 RTW 구간에서 하노이-방콕 구간은 비어 있다. 이 구간은 내 돈으로 알아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하노이 공항에서 바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게 금전적인 면에서도 더 낫다. 이번 RTW가 스타 얼라이언스로 진행되니, 이 구간도 같은 동맹체로 끊는 것이 짐 붙이기엔 수월할 것이다.. 그럼 가능한 선택은 타이 항공밖에 없다.. 가만있자.. 그럼 내가 하노이가 도착한 이후에 방콕 가는 다음 비행기는 몇 시에 있지? 밤 8시 45분이네.. 하노이 도착은 낮 11시고.. 그럼 거의 10시간을 하노이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뜻인데.. 아, 그럼 무비자로 하노이에 몇 시간이나 체류 가능한 건가??


이 질문은 나보다 전문가인 아시아나 직원의 도움을 받는게 나았다. 그녀는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보더니 24시간까지 체류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다행이다.


직원은 일단 나에게 인천-타이베이 티켓만 발권해 줄 테니, 보세 구역으로 들어가게 되면 최대한 빨리 하노이-방콕행 티켓을 사라고 조언했다. 아드님과 둘이 세계 여행 가셔서 좋겠다는 부러움섞인 인사를 건넸지만, 그런 설레임을 느낄 여유도 없이 보세 구역의 아시아나 라운지에서 그녀의 조언대로 부랴부랴 타이항공 방콕행 티켓 2장을 샀다. 두 장 가격이 $350을 넘지 않았다. 티켓을 사고 한 숨 돌리고 나니 그제야 배가 고팠다.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운 후, 비상식량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호야랑 나는 컵라면을 하나씩 배낭에 쑤셔 넣었다.


인천에서 타이베이로 가는 비행기는 13시 50분, 그리고 남편과 작은 아이가 타고 갈 엘에이행 비행기는 우리 출발 후 30분 후에 출발이었다. 타이베이행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남편이랑 작은 아이와 헤어졌다. 무사히 미미국에서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이제 진짜 우리 둘이서만 다녀야 한다!

출정 기념사진


ICN-TPE OZ713편, A-330

인천발 타이베이행 OZ713 A-330 편은 2시간 10분 동안 운항하는 단거리 노선이다. 운항 거리가 짧아서인지 비행기도 작았고, 비즈니스석도 우등 고속버스 같은 좌석이었다. 이 구간과 비슷한 단거리  (운항시간은 약 2시간 남짓, 이동 구간 간 시차 1시간)인 타이베이-하노이 구간을 다음날 바로 에바항공을 타고 갔는데 아시아나보다 나았다. 기재나 서비스 구성 면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이 부분은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여행을 시작해 마냥 신이 난 호야(왼/위), 우등고속 좌석의 비지니스석(오른/위), 음식 사진은 비지니스석에 제공된 기내식 한식(왼)과 양식(오른)


나는 2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이 시간 동안 아이와 여행할 때 지킬 몇 가지 원칙들을 막 써 내려갔다. 그래야 여행 하다가 아이와 트러블이 생겨도 크게 번지는 일 없이 잘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 원칙들은 이 글에 이미 소개했다.

https://brunch.co.kr/@cbeta02/148

이 원칙들을 생각의 흐름에 따라 써 내려가며 한국에서의 여행을 간단히 메모하며 정리하는 동안, 비행기는 이미 타이베이에 와 있었다. 나랑 호야는 타이베이 입국장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국장으로 올라가 에바 항공 카운터로 갔다. 그곳에서 상황 설명 후 새로 내가 산 하노이-방콕 티켓을 보여주며, 이 구간을 타이베이-하노이 구간 뒤에 붙여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에바항공 직원을 친절하게 여권을 받아 상황을 체크하고는 새 티켓을 붙였으니, 내일 아침에 와서 티켓 두 장을 받아가라고 안내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첫 번째 문제 해결!

우리가 타고 갈 OZ713(왼쪽), 타이베이 도착, 그리고 속을 끓여 엄청 초췌한 나 (오른쪽)

타이베이에서 내일 비행 출발 시간은 9시. 여기서 머물 시간은 20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호텔도 공항 인근에 있는 노보텔 공항 호텔 Novotel Taipei Taoyuan International Airport로 잡았다. 호텔까지 이동은 30분마다 한 대씩 오는 호텔 차량을 이용하면 되었기에 공항 밖 픽업 포인트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와.. 정말이지 땀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호야도 첫 10분은 어찌어찌 참아냈으나 점점 짜증을 냈다. 이 여행은 더위와의 싸움이 될 것임을 예상은 했으나, 실전은 차원이 달랐다. 원래는 호텔에 가서 체크인 후 중산 쪽으로 나가려고 했었으나, 무리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었다. 호텔 컨시어지에서도 이 시간에 관광할만한 곳은 야시장 정도밖에 없으며 그마저도 꽤 많이 움직여야 해서 추천하지 않는단다. 내일도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야 하니 타이베이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좀 더 길게 일정을 잡을 걸..

Novotel Taipei Taoyuan International Hotel Lobby
정작 호야가 마음을 뺏긴 건 이 호텔 로비 한쪽에 전시된 블록으로 만든 중화항공 모형

우리가 타이베이에서 겪은 경험이라고는 그날 저녁 호텔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 공항 지하 식당가에서 밥을 먹은 것이 전부다. 호텔 컨시어지에서는 셔틀이 30분마다 있으나, 기다리기 힘들면 호텔 바로 옆에 공항 메트로가 있으니 그걸 이용하란다. 이때 따로 교통카드가 없어도 비자나 마스터 카드를 와이어리스 사인이 있는 개찰구에 찍으면 자동적으로 요금이 결제되며, 호텔과 공항 구간은 무료라고 설명해 주었다. 이번 여행 중 많은 도시들이 교통카드 대신 신용카드로 직접 결제를 하며, 나 같은 외국인들도 해외에서 발행한 카드로 교통 요금을 지불할 수 있어 편리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서비스가 하루빨리 도입되었으면 한다.

어차피 이번 여행의 테마가 Tranportation이니 짧게라도 공항 철도를 이용해보자 싶어 역으로 갔다. 개찰구에서 Wireless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으나 애플페이로 이 카드들을 연동시켜 개찰구에서 결제를 하니 제대로 작동했다. 이 문제 때문에 한참 실랑이를 했는데, 메트로 직원인지 제복을 한 여자분이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잘 도와줘 너무 고마웠다.

우여곡절끝에 간신히 탄 공항 철도
 호야의 최고의 음식(왼쪽), 내가 고른 저녁 메뉴는 우육면(오른쪽)

이 날 호야가 공항 지하에서 선택한 메뉴는 Spicy Noodle의 Qingdun Lei라는 국수로, 양지가 들어간 진한 고기 육수에 국수를 적셔 먹는 요리였다. 호야가 설렁탕 같은 고기 육수로 만든 음식을 좋아해서 골라봤는데, 입맛 까다로운 호야가 이번 여행의 최고의 요리로 이 국수를 꼽았다. 국수가 굉장히 쫄깃해서 씹는 맛이 있었고, 고기 육수와 조화가 너무 좋더라는.. 게다가 음식 가격은 정말이지 환상 그 자체더라는..



타이베이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1. 자연을 사랑하는 친환경적인 곳,

2. 직선을 아주 유려하게 사용하되, 적절하게 곡선을 사용할 줄 아는, 마치 한 편의 수묵화 같은 멋을 추구하는 곳이며,

3. 저렴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많고,

4. 친절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아무리 미국에 산다 해도 그렇게 인천을 자주 들락날락거렸으면서 타이완을 한 번도 못 와보다니.. 나도 참 너무했구나 싶었다. 내가 아시아를 너무 그동안 안 다녔구나.. 하는 자각을 갖게 한 도시 타이베이. 언젠가는 가족들과 꼭 다시 갈 것이다.


제발 이 아름다운 곳에 '전쟁'이라는 잔혹한 참상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어도비 스톡 유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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