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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16. 2024

약간의 광기가 필요한 육아

2개월 14일

<섬집아기> 노래를 2절까지 부를 수가 없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으로 시작되는 섬집아기 노래는 1절은 아직도 외워서 부를 수 있다. 어렸을 때 배워서 그저 단순한 동요인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가사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아기를 집에 두고서라도 물질을 하러 가야 하는 고단한 해녀 어머니의 이야기에 근거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동요 치고는 자장가로 쓸 만큼 곡조가 차분한 노래가 <섬집아기> 외에는 찾기 힘드니, 아기에게 자장가를 들려줄 때 한 번 불러봤다.


“엄마가 섬그늘에 / 굴 따러 가면 / 아기는 혼자 남아 / 집을 보다가 / … ”


이미 여기에서 울먹울먹해지기 시작했다. 내 아기가 혼자 집에 남아 있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불쌍해!


그런데 2절은 더 심했다.


“아기는 잠을 곤히 / 자고 있지만 / 갈매기 울음소리 / 맘이 설레어 // 다 못 찬 굴바구니 / 머리에 이고 / 엄마는 모랫길을 / 달려옵니다”


엄마들 중에 이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일단 나는 1절까지만 가능하다.


 - - -


무슨 일을 하든지 아이를 재워야만 할 수 있었다.


다행히 루나는 혼자 5~10분 정도는 잘 노는 아이였다. 바운서에 앉아서 모빌을 보고 혼자 팔다리를 붕붕 휘젓곤 했다. 물론 한동안 그러고 있으면 기저귀가 젖었다며 난처한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거나, 지루해진 듯 뚱한 표정으로 활발함이 줄어들곤 했다.


그럴 때 다가가서 발을 튕겨주거나 손을 잡고 흔들어 주면, 아니지, 그저 그 앞에 앉아서 “엄마랑 놀까?” 하고 말만 걸어주어도 방긋방긋 활짝 웃는다. 그러면 ‘혼자 심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진작에 와서 같이 놀아줄 걸 그랬다는 작은 후회가 들었다.


그렇게 조금 더 놀다 보면 눈 주위가 벌개지고 ‘까아아…’ 하는 마른 울음을 우는 시점이 왔다. 재워줄 타이밍이었다. 이 시기를 놓치고 ‘덜 피곤한 게 아닐까?’ 하고 더 놀아주면, 일단은 다시 까르르 하면서 잘 놀다가 갑자기 심하게 울어 보챈다. 피로 상태를 넘어서 과피로 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도 아기들은 잠들기 전에 살짝 각성 상태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잠에 들기 전에 ‘아아아…’ 하고 울면서 팔을 휘젓는다. 여기에 속아서 ‘안 졸린가?’ 하고 내버려두면 과각성이 된다. 그러면 잠을 재우기가 더 힘들어진다. 원래도 힘든데!


어쨌든 아이가 노는 시간은 잘해야 10분 남짓이고 그마저도 내도록 혼자 두기에는 조금 안쓰러우니, 그 동안에 뭔가 제대로 된 활동을 하기는 힘들었다. 밥을 차리기는 커녕 냉장고에 있던 음식을 데우는 데만 해도 2분은 걸리니까 실제로는 5분 내로 호닥닥 먹어야 하는 셈이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아이를 재워도 한 16~18분 있다가 눈을 번쩍 하고 뜨곤 했다. 대체로 트림을 하고 싶어서였다. 몸을 활처럼 뒤로 휘기에 ‘혹시?’ 하고 안아 올려주면 80% 확률로 꺼억 하고 트림을 했다. 그래도 16분이 어딘가? 그 정도면 전자레인지에 데운 규동을 호로록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다시 재우는 데에 그 만큼이 또 걸린다는 점이 문제지만.


 - - -


알아보니 ‘수면교육’이라는 게 있었다.


아기는 태어나고 나서도 자궁 속과 같은 환경일 때 편안함을 느껴서 잠을 잘 자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궁 속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5S라는 기술이 쓰였다. 속싸개로 감싸주고, 옆으로 혹은 배를 땅에 대고 뉘여 준다 (안으면 그런 자세가 된다). 살짝씩 흔들흔들 해주고, 양수가 흐르는 듯한 ‘쉬-’ 하는 소리를 내준다. 여기에 더해서, 뭔가를 빨게 해줘도 좋으니 쪽쪽이를 물려 준다.


그런데 기껏 이 5S라는 기술을 익혔더니 이제는 그게 수면교육에는 좋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를 또 들었다. 사람이 침대에 등을 대고 잠이 들어야지, 그러지 않고 안아서 어르고 달랜 다음에 몰래 내려놓는 방식은 오히려 아기가 잠에서 깼을 때 ‘뭐야 여긴 어디지?’ 하고 당황하게 한다고 한다.


안아 재우는 방식은 잠드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지 몰라도, 얕은 잠을 거쳐서 살짝 깨어났을 때 아기 스스로 수면을 연장하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음 맞아 난 원래 침대에서 잠들었지…… 그리고 이대로 눈 감고 가만히 있으면 또 잠들 수 있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면 ‘엄마 품이 아니라 침대잖아? 게다가 여기는 흔들흔들하지도 않으니 잠드는 곳이 아닌 것 같은데’가 된다고 한다.


결국 침대에 등 대고 자도록 해야 1~2시간씩 잘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면 30분 안팎의 짧은 토끼잠을 자고 아기가 깰 때마다 “다시 재워줘!”라며 울어제끼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안아 재우더라도 잠들었을 때 내려놓는 게 아니라 잘락말락한 수준까지 가는 것만 안아서 도와준 다음에 살살 내려놓고 ‘자 이제 여기서 잠들자’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 - -


문제는 그 수면교육이라는 것이 아기가 필연적으로 울게 되는 교육이라는 점이었다.


수면교육 첫 날. 아기가 살짝 잠들었을 때 살살 내려놓아 보았다. 역시나 등이 땅에 닿자마자 “와앙!” 하면서 울었다.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강한 울음이기에, 이건 뉘인 채로 어르고 달랜다고 될 게 아니라는 판단으로 안아 올렸다. 그런데 안고서 어르자마자 3초만에 다시 잠들기에 또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또 운다!


이걸 세 번을 반복하고 4트만에 성공했다. 안았다 - 잔다 - 눕혔다 - 운다. 안 - 눕 - 움 - 안 - 눕 - 움 - 안 - 눕 - 움 - 안 - 눕 - ……. 잔다!


하지만 그 평화는 26분밖에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첫 날 시도에 이 정도 성공이라니. 세 번 울리면 될 일을, 70일 동안 하루 대여섯 시간씩 꼼짝없이 안아서 인간 라라스 베개가 되어 있었다니.


수면교육 둘째날. 전날의 성공이 초심자의 행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안 - 눕을 시전했는데, 의외로 순순히 아이가 잠들었다. 이럴수가? 물론 16분 정도 자다가 트림 때문에 깨어났다.


수면교육 셋째날. 이번에도 오전 낮잠 시간에 안 - 눕을 시전했고, 심지어 아이는 침대 누워서 눈을 반쯤 뜬 상태에서 살살 감으며 잠들었다. 처음으로 등 대고 입면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오후 낮잠 시간에는 정말 처참할 정도로 잠을 못 잤다. 4분, 6분, 16분, 이런 식이었다.


게다가 그 동안 전혀 문제가 없었던 밤잠조차 설쳤다.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20~30분마다 아이가 깼다. 그 때마다 주로 남편이 아이를 안고 어르고 재웠다. 결국 아침에는 남편이 거실 소파에서 인간 라라스 베개가 되어서 아이를 안아 재우고 있었다.


 - - -


사흘만에 수면교육이 난관에 봉착하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너무 심하게 수면교육을 시켜서 아이가 침대에 트라우마가 생겼나? 그래서 밤에 잘 자다가도 ‘악 뭐야, 여기 거기잖아?!’라면서 비명을 지르며 깨게 되었을까? 사실 수면교육을 하다가 침대를 싫어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어렴풋하게 했다. 다만 그렇게 감수한 위험이 실제로 발현되니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막막했다.


물론 머리로는 수면교육이 원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전에 주르륵 게워낸 것부터 시작해서 하루종일 속이 안 좋았던 게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아이가 오전, 오후 낮잠에서 처음 깨어났을 때도 트림 때문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양반다리로 구덩이를 만들어서 포근하게 재워줬을 때도 아이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난 직후에 깨어났었다. 오후 4시에 수유를 하고 나서도 허벅지 위에 앉아 방긋방긋 웃다가 문득 얼굴을 팍 찌푸리며 울기도 했고, 변 상태도 물기 많은 대변을 두 번이나 둔 날이었다.


하지만 그 소화불량마저도 내가 무리하게, 혹은 잘못된 방법으로 수면교육을 실시해서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무렵의 아기는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서 하루 16~18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는데, 내가 낮잠을 이상하게 재우는 바람에 속도 안 좋아진 게 아닐까?


 - - -


수면교육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아이를 번쩍번쩍 안아 올려서 달래줄 수 있는 시기도 얼마 없다고 했다. 몸집이 커지면 아이 본인부터가 품에 안기는 것보다 침대에 누워서 혼자 자는 방식을 더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게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친구들이랑 지내다 보면 안아달라고 칭얼대는 것도 없어진다고.


게다가 어렸을 때 아이가 울면 부모가 제때 반응하고 안아주던 아이가 커서도 심리적, 정신적인 문제가 적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 부모가 아이의 울음을 무시한다면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안 되고 사회적인 교감도 어려워진다는 주장이었다. 일례로 보육원의 아기들은 좀처럼 울지 않는데, 그 이유는 어차피 울어봤자 달려와 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체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흔들렸다. 내가 아이의 정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던 걸까? 여기에 더해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혹은 침대에 혼자 누워서 옹알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찢어졌다. 그래서 결국 아이를 내버려두고 방을 나서라는 퍼버법은 못하고 있지만…….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었고, 수면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나 점심 밥상 차려 먹을 동안에 아이 안고 재워줄 거냐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7년 동안 매일 하루 여섯 시간씩 아이를 안고서 소파에 멍때리고 앉아있어 줄 거냐고. 밥공기 하나 전자레인지에 데워줄 것도 아니면서 수면교육 비난은 무슨.


실제로 어떤 블로거는 한참 동안 수면교육 반대론을 펼치더니, 마지막 문단에서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하는 아내’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꼴사납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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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만큼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한 것도 없어 보였다.


퍼버 박사는 아이가 독립적으로 수면할 수 있어야 하므로, 안아 재우기 보다는 방에 아이를 두고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상태 체크만 하는 ‘퍼버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편에서는 아이가 안아달라고 할 때마다 안아줌으로써 무한정의 애정을 선사하고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애착육아’가 필요하다고 한다. 반면에 육아서 <베이비 위스퍼>에서는 그 둘 모두 너무 극단적이므로 안눕법 같은 것으로 등 대고 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등 대고 자는 연습은 언제부터 해야 할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애착관계가 형성된 3개월 이후부터 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다 (그나저나 3개월이면 애착관계가 형성되는 게 진짜 맞을까?). 어떤 사람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신생아 시기인 생후 1개월을 넘기고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한편, 아까 ‘너네 둘 다 극단적이야!’라고 했던 <베이비 위스퍼>에서는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게 신생아 시기일지언정 일찍 시작해야 하고, 늦을수록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어렵다고 한다. “독립심을 키워주기에는 태어난 지 2시간밖에 안 됐는데요?”라는 말에는, “그럼 독립심을 키워주기 적절한 시기는 언제부터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물음으로 반박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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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는 아무래도 약간의 광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많은 갑론을박에서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컨대 수면교육을 한다면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가면 된다. ‘어머머 내가 아이에게 못할 짓을……’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하등 없다. 옛날에는 엄마들이 아기를 집에 놔두고 밭일하러 아예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잠들었다가 깼다가 하던 아기들이 자라나서 정신병자가 되었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육아의 모든 면에 임하면 될 뿐이었다. ‘아가. 넌 수면교육을 받을 것이고, 오늘부터 일주일 간 낮잠은 다 잤다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 웬만하면 엄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게 좋을 거야‘라고 밀어붙여야 훈육이 가능했다.


모유수유를 할 때도 ‘모유량이 부족하거나 아이가 잘 못 빨아서 굶으면 어쩌지?’ 하고 분유를 보충하다 보면 결국 젖양만 줄 뿐이다. ‘난 모유를 먹일 것이고, 양은 당연히 충분하다’라고 단단하게 마음을 먹어야 한다.


수면교육도 말이 ‘교육’이지, 영어로는 ‘sleep training’, 그러니까  ‘훈련’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원래부터가 말랑한 개념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육원 아기들은 체념을 해서 안 운다고? 아니, 사람이 체념할 줄도 알아야지. 난 오히려 보육원에서 크는 아이들이 자기 옷도 갤 줄 알고 어른스럽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 - -


남편이 아이를 보는 동안, 외출을 해서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이었다. 출산을 2월 중순에 했는데, 그로부터 두 달 넘게 동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도 드물지 않게 보였다.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중국어나 영어로 일하는 회사에서 근무했다면, 지금쯤 한 가지 외국어에는 능통했지 않았을까? 키울 수 있었던 능력, 그러나 키우지 못하고 묵혀버린 가능성들을 떠올렸다.


왜 인생살이는 육아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는 것일까? 젖양 늘리는 시기를 놓치면 모유수유는 영 글러버린다든가, 수면교육도 제때 못하면 잘못된 습관을 들여서 돌이키기 어려워진다거나.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들은 돌이킬 수 없이 잊혀진 가능성들일까? 늦깍이 공부를 시작해서 통역사가 된다거나, 파파 할머니가 되어서 코딩을 배우고 게임을 개발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종종 들었다. 그게 평범한 노력과 의지로 될 일은 아니었을 텐데.


역시 육아 뿐만이 아니라,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광기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석촌호수를 걸으면서도 아이 생각이 종종 나서 홈캠으로 아기침대를 슬쩍슬쩍 봤다. 아이는 남편이 잘 케어해주고 있었다.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재우고. 가까이서 말단 실무자가 되어 챙기다 보니 ‘내가 잠을 잘 못 재웠나? 이상한 걸 먹였나?’ 하고 걱정했을 뿐이지, 멀리서 보면 아이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만 크고 있었다.


친정 엄마나 남편이나 산후도우미님이나, 다들 내가 걱정하면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라는 말이 돌아오곤 했는데. 그저 위로하고 응원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진짜였던 것 같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Julia Kob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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