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May 15. 2024

엄마와 마녀시간과 회복탄력성

2개월 11일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욱여넣는다’라는 공통점이 있다.


임신을 했을 때는 ‘내 몸에 어떻게 아기가 들어와서 자라나지?’ 하고 신기해 했다. 이미 내 배속에는 보통 사람 몸에 들어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장기들만으로도 꽉 차 있었다. 그런데 탁구공만한 자궁을 가지고 아기를 품어낸다고?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어떻게야. 그냥 욱여넣는 거였다. 탁구공만했던 자궁은 점점 불어나서 수박만해졌다. 그럼 나머지 장기들은? 그저 자궁을 둘러싸고 사방팔방에서 찌부러지고 있었다. 소화불량이 따라왔고, 변비와 설사가 동시에 찾아왔다. 자려고 똑바로 누우면 숨이 안 쉬어지고, 그렇다고 해서 옆으로 누우면 태중의 아기가 신나서 발로 옆구리를 ‘버버벅’ 하고 찼다. 


출산도 비슷했다. 이 조그만 구멍으로 어떻게 수박만한 아기를 낳지? 이번에도, 어떻게는 무슨. 회음부가 늘어나도 부족하면 찢어서라도 나왔다! 덕분에 나는 회음부 열상과 붓기로 한 달 내내 제대로 앉지도 못했지만, 어떤 산모들은 항문으로 열상이 이어져서 처참한 지경이 되니 그나마 이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육아는? 원래도 나는 내 삶이 있는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악기도 연주하고, 외국어도 배우고……. 그런데 어떻게 1인분의 삶을 추가적으로 운영하지? 답은, 이 또한 욱여넣는 것이었다. 악기랑 외국어는 꿈도 못 꾸고, 낮 동안에는 회사 일 대신에 육아를 했다. 아침 식사로 시리얼과 요거트를 섞어 놓고는, 아기 빨래 돌리고 한 입, 젖병 치우고 한 입,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면서 먹었다. 




남들은 육퇴 후에 예전의 생활을 즐기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까지는 좀처럼 그러지를 못하겠다. 그저 잠이 간절했다. 


아이 키우기는 보통 일이 아니었다. 회사 일이야 사람들이 말귀를 알아듣고 서로의 체면도 있으니 아주 무리하게 업무를 요청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기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입장 따위 알 바인가?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젖었으면 울고, 피곤하면 울고, 더우면 울고, ……. 


성인이었으면 말로 했을 일도 아기는 일단 울고 보니까 ‘내가 왜 우는지부터 맞춰봐’가 된다. 게다가 성인은 웬만하면 울지 않지만 아기는 웬만하면 운다. 같이 사는 사람이 하루에 50번을 울면 정신이 혼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제때 대처가 되지 않으면 울음소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그러면 얼굴이 시뻘개지고 온몸에서 땀이 나는 아기를 안아 들고서 ‘얘가 왜 울까’와 ‘어떻게 해야 안 울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밤이 왔다. 정말 감사하게도 루나는 밤낮 구분이 확실하다. ‘지금까지는’ 확실하다고 해야 하려나? 꼭 애니메이션에서 ‘해치웠나!’라고 하면 어떻게든 살아남아 있는 빌런처럼, 이 또한 말이 씨가 될런지……. 


아무튼 루나는 저녁 7시쯤 막수(=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면 밤 12~1시 쯤에 깨어났다. 그러고 나면 아침 5~7시 쯤에 일어난다. 아기는 개월수에 3을 더한 만큼의 시간 동안 수분과 칼로리를 유지하면서 밥을 안 먹어도 된다고 하니, 이제 만 2개월인 루나는 5시간을 잘 수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본인이 버틸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을 엄마아빠 안 깨우고 푹 자주는 셈이다. 정말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저녁 7시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예전과 같은 생활을 즐기면 되는데, 요즘에는 아무리 늦게 자도 밤 9~10시에는 자러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번 해봤더니 밤 10~11시 사이에 자면 다음 날 조금 피곤하고, 11~12시 사이면 꽤 피곤, 12~1시 사이면 마치 밤을 꼴딱 샌 기분이라서 낮잠을 잤다 하면 1시간은 기본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음 날이 무서워서라도 밤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한다. 물론 저녁 8시쯤이면 이미 지쳐 있지만. 




그래도 신생아 때만큼 벅차지는 않으니, 그 사이에 스스로가 성장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생아 때는 정말로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신생아라면 만 0개월일 때를 말하니까, 만2개월인 지금은 그로부터 두 달 간의 경험이 추가로 쌓인 셈이다. 그 때는 먹고-자고 하는 일이 거의 전부였음에도 아기가 대체 왜 우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반면에 지금은 대강 감은 잡을 수 있다. ‘깨어난 지 1시간 반이 지났으니까 이제 피곤할 때가 된 데다 울음소리도 마른 울음이고 눈 주위도 벌개져 있으니, 저 울음소리는 재워달라는 말이군’ 하는 식이다. 


아직도 아기를 케어하는 일이 버겁기는 마찬가지다. 아기가 요구사항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아기가 조용히 다가와 “엄마, 배고파요......”라고 할 리 만무하다. 대신에, 낮잠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까 배가 고프기에 “배고프네. 낼름, 낼름. 그런데 잘 자다 일어나서 찌뿌둥하기도........ 흐앙 이게 다 무슨 기분이야, 뿌아앙!!!!!” 하고 운다. 


졸리면 “저 낮잠 좀 자고 올게요” 하고 말하지 않고, ‘뭐지? 지금 나 왜 피곤해지지? 헉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데. 어쩌지, 큰일났네! 엄마, 나 어떡해요? 도와줘요! 재워주셔야 할 것 같은데?’라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울음소리가 점점 커진다. 


하지만 얼러준대도 금방 잠드는 법이 없다. 마치 쿠타 게임을 하듯이, 적절한 강도의 흔들어주기와 토닥임이 필요하다. 여기에 ‘쉬-’ 하는 소리를 믹스해주고 알맞은 타이밍에 쪽쪽이를 딱 물려주어야 잠이 든다. 내려놓을 때도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침대에 등이 닿자마자 호닥닥 깨어난다. 


차라리 아예 포기하고 인간 베개가 되기로 작정하면 두 시간 동안도 아기는 푹 잠들었다. 하지만 그 상태는 감옥이라서 집안일도 그 무엇도 할 수가 없다. 누군가를 재운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안 잔다고 해서 방에 냅두고 울음소리를 무시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이 시기의 아기는 필요한 수면량(16~18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뇌를 포함한 신체의 성장과 발달에 악영향이 간다던 말이 떠올라서 선뜻 그러지도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기저귀? 갈면 되지’, ‘졸려? 재우면 되지’, ‘게웠어? 옷 갈아입히면 되지’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여러가지 스킬을 터득했다. 덕분에 예전과는 달리 아주 막막하지만은 않다. 아기가 더 이상 자지러지게 우는 일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게워내는 일이 없어진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회복탄력성이 생긴 셈이었다. 


그저 5~6kg의 아기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몸이 축나고, 내가 밥을 먹든 샤워를 하든 개의치 않고 요구사항을 외치는 바람에 항시 긴장상태로 지내며 다소 지칠 뿐이다. 




아기를 키워보기 전에는 이런 나날들이 펼쳐질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나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각각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임신의 결말은 출산이고, 출산이 끝나자마자 단 1초의 유예도 없이 육아가 스타트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두고도 말이다. 


출산 전에, 아기를 키우고 있는 집에 하루이틀 정도 머물면서 사전체험을 해보면 연착륙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용품은 어떻게 배치를 해야 효율적인지, 아기가 보내는 신호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아기 있는 집의 하루 스케줄은 어떻게 굴러가는지, 밤중수유는 어떻게 이뤄지고 모유수유는 왜 힘든지, 그런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으면 미래를 상상해보고 준비하기 좋았을 텐데 싶다. 


아예 베이비 샤워라든지 브라이덜 샤워처럼, ‘베이비 그리팅’ 같은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서 문화로 굳어지면 좋겠다. 태중의 우리 아기에게 친구를 먼저 만들어준다는 명분으로, 다른 아기 있는 집을 방문해서 하루이틀 지내보는 것이다. 그러면 ‘젖병은 설거지 어떻게 해?’, ‘모빌은 몇 개 써?’ 등의 시시콜콜한 질문까지 주고받으면서 은연중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나는 조산기 때문에 어디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고, 직접 부딪쳐 보면서 배울 뿐이었다. 사람은 누구든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더니, 그 말마따나 나는 산후우울증에서부터 시작해서 ‘힘들지만 할 만 하군!’의 수준으로 변화해갔다. 


조리원 퇴소하고 집에 와서 한 1~2주까지는 정말 힘들었다. 특히 첫 일주일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하루는 밤에 누워서 어두컴컴한 천장을 보는데, ‘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끝날까? 그렇게 간단한 것을-’과 같이 엉뚱한 방향으로 생각이 틀어지기도 했다. 무슨 상황이 다가올 지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했고, 다가오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요즘은 정말 양반이 다 되었다. 하루 스케줄을 4시간의 수유텀에 맞춰서 운영하면서, 아이가 너무 자는 것 같으면 ‘지금 밥을 안 먹으면 이따가 엄청 울텐데’ 하는 생각에 깨워서 같이 좀 놀아주다가 수유를 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어떤 일을 할 지 미리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루를 보낸다. 로봇청소기 돌리기부터 젖병 세척이나 아기 빨래처럼 사소한 일들도 적어둔 다음 하나하나 지워가고, 각 수유텀 사이에는 각기 다른 BGM을 정해서 하루 전체에 걸쳐 시간별 테마송처럼 틀어둔다. 


그렇게 하루를 바쁘게 지내고 나면, 웬만한 집안일은 깨끗이 완료되고 아기는 잠들어 있다. ‘아 맞다 그것도 해야 하는데’ 하는 찜찜함과 ‘그렇다면 오늘도 실패군……’ 하는 좌절감(고작 집안일로?)이 방지되니,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게다가 수유텀 사이사이에 아이와 어떻게 놀아줄 것인지, 무슨 집안일을 할 지 등을 적어두니, ‘지금 뭐 해야 하지?’ 하고 허둥지둥하는 일도 없어졌다. 


원래는 ‘마녀시간’이라고 해서 아기가 저녁 때가 되면 하루의 피곤도 쌓이고 해서 괜히 짜증내고 울어제끼는(무려 1~3시간이나!) 시간대가 있다는데, 희한하게 나도 마녀시간이 있어서 저녁 6~7시 이후에는 녹초가 되어 도저히 아기를 더 돌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미리 계획을 세우고 스케줄을 운영했더니 저녁 무렵의 마녀시간을 그럭저럭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한계로 밀어붙이면 그 때 비로소 성장을 한다는데, 임신-출산-육아를 겪으면서 그 말을 실감했다. 기어이 이 몸뚱이로 사람을 품어내고, 낳고, 키워내고. 내 그릇이 어거지로라도 점점 커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Zach Lucero

매거진의 이전글 임신한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