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철학-사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1-1

by 기픈옹달

* 동대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 강의안 초안입니다.


여기에서 ‘중국’이라 함은 현대의 주권국가(중화인민공화국)를 가리키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그 영역이 늘거나 줄고 민족이 뒤얽히며 여러 문화가 뒤섞이고 교역하면서 현대에 이른, 그 변화와 흐름 속에서 한자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스스로 중국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해온 세계를 가리킨다.
<중국 제국을 움직인 네 가지 힘>, 미조구치 유조 외, 5-6쪽.


중국이 문제다. 벌써 21세기의 1/5이 지났는데, 어쨌든 21세기의 역사는 중국을 빼놓고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중국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앞으로 중국이 세계에 끼칠 영향력은? 경제, 정치, 군사 각 방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는 지금, 중국은 현재적인 문제인 동시에 미래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문제라 함은 단순히 중국이 골칫거리라는 말이 아니다. 도리어 우리가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말이다. 국경을 마주한 이웃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나라, 10억이 넘는 세계 최대 인구의 국가, G2 - 경제력으로는 세계 1.5등이라는 말까지 듣는 경제 대국. 그러나 중국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부족하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혐중嫌中, 중국에 대한 막무가내의 혐오는 중국에 대한 무지, 혹은 무시가 자아낸 결과이다. 백번 양보하여 혐오 자체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접어두자. 그래,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지. 싫으면 안 보는 게 최선일 텐데 그럴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중국은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이웃인 동시에, 세계 여러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말 그대로 대국大國이다. 이런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상대할 것인가 바로 이게 문제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안다는 말처럼 상투적인 말이 있을까. 그러나 중국에서 역사가 지닌 특정한 역할을 생각하면 과거를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단순히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란 하나의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어, 과거의 사건은 언제든 현재와 뒤섞여 공존할 가능성에 열려 있다. 중첩된 시공간이라 해야 할까? 중국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다. 1949년 10월 1일 톈안먼 광장에서 국가 수립과 동시에 중국은 탄생하지 않았다. 중국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용된 말이다.


중국中國, 말 그대로 풀이하면 중앙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가 중앙인가 자체가 하나의 역사적 문제이다. 물리적인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이 있다면 안과 밖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중국이고 어디까지가 중국이 아닐까? 이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다. 미조구치 유조의 말처럼 중국은 시대마다 늘거나 줄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 이웃에 있는 중국도 이 역사적 맥락 위에 있다.


늘거나 줄었다고 하여 이것이 영토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맹자는 일찍이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하였는데 평화기와 혼란기가 번갈아 나타났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중국 역사의 태반은, 난세亂世 갈가리 찢긴 상태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개념은 훼손되지 않고 남아 또 다른 왕조의 거름이 되었다. 이것은 중국이라는 말 자체가 스스로 생명력을 지닌 주제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국을 제대로 알려면 현재만 봐서는 안 된다. 역사적 맥락 위에서 중국을 이해해야 한다.


중국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철학자들은 자신이 누적된 지층 위에 있다는 사실을 늘 잊지 않았다. 즉, 맥락 없는 철학은 없다. 이는 중국 철학의 특징, 편집과 해석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 철학자에게는 소수의 몇몇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과제였다. 경전의 문장, 구절, 단어, 글자마다 붙은 주석이 이 해석과 이해의 결과물이다. 중국 철학이 경전의 권위를 받들고 숭상하기만 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주석은 경전의 의미를 확정했으며, 때로는 비틀었고, 경전 자체를 재구성하기도 했다. 중국 철학사는 끊임없는 구성과 재구성의 역사였다. 해석과 재해석, 경전과 주석의 서로 맞물리는 관계를 빼놓고는 중국 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언젠가 나에게 ‘철학사’를 배워 무엇하느냐 질문하는 사람이 있었다. 철학이란 ‘철학하기’, 즉 자신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생각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인데 과거 철학의 맥락을 훑어 무엇하느냐 하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해석과 재해석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또한 오늘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맥락을 좇아볼 가치가 충분하다 하겠다. 더구나 우리는 경전에 진 빚이 적지 않다. 우리 언어와 개념 속에 파고든 중국 철학의 파편들이 얼마나 많은가. 반성적 사고를 위해서라도 중국 철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 ‘중국 철학’이라는 말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철학’이라는 말에 어떤 특권의식이 묻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철학이란 보편 학문이라기보다는 진리를 독점한 특수한 지위를 지닌 학문을 가리키는 말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그래서 중국 철학보다는 ‘중국 사상’ 같이 조금은 넓고 무난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펑유란은 <중국철학사>를 쓰면서 중국에서 철학이라 할만한 것을 찾아낸다 말하기도 했다. 즉, 서구인들을 향해 우리에게도 철학이 있소 하는 식으로 항변하고자 <중국철학사>를 서술했다는 말이다. 그는 그렇게 철학이라는 시민권을 얻어내고자 분투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사정이 좀 달라진 듯하다. 중국은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미 중국은 전통 속에서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펑유란이 중국의 역사 속에서 ‘철학이라 할만한 것’을 골라내었다면, 21세기의 중국은 이게 바로 철학이다는 식으로 무언가를 우리에게 들이밀지 않을까. 물론 영 생소한 것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 속에서, 전통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놓겠지. 앞으로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철학사에 대한 공부는 유익하다 하겠다.


본 강의는 본디 ‘겉핥기 중국철학사’라는 이름으로 기획되었다. 2019년 말, 복잡하고 어지러운 중국철학사를 가볍게 훑어보자는 의미에서 세 꼭지로 중국철학사를 간단히 정리한 이력이 있다. 이번에는 이를 조금 더 세분하여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6주에 걸쳐 이천 년이 넘는 중국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중국철학의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보는 것이 본 강의 목표이다.


모든 철학사가 그렇겠지만 여섯 개의 꼭지가 각각 비슷한 속도로 전개되는 건 아니다. 어느 꼭지에서는 수백 년을 다루다가 어느 꼭지에서는 수십 년을 다루기도 할 것이다. 시간보다는 중요한 변화의 분기점이라 생각되는 지점을 꼽아 구분하였기 때문이다.


‘1강, 기린은 사라지나 봉황은 날아오르고’에서는 주周의 몰락 이후 혼란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가장 주목해볼 인물은 공자로서, 그가 이 혼란기를 어떻게 진단했고 어떠한 대안을 모색했는가 살펴볼 예정이다.


‘2강, 제자백가 난세를 논하다’에서는 이른바 춘추전국시대의 본격적인 혼란기 속에 등장한 여러 사상가들과 그들을 계승하는 학파들에 대해 알아본다. 장자, 순자, 한비자 등이 그 주인공이다.


‘3강, 진시황과 한무제, 황제의 탄생’에서는 진秦과 한漢이라는 두 고대 제국의 성립과 황제 제도의 탄생이 끼친 영향에 주목한다. 특히 유가가 국가철학으로 자리 잡는 과정과 그 이후의 변화상을 다룬다.


‘4강, 불법을 찾아 서역으로’에서는 서쪽에서 전래된 불교의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교가 중국에 자리잡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중국의 철학사에 끼친 영향력을 살펴본다. 삼국시기, 즉 위진남북조에서 당唐까지의 변화상을 보는 것이 목표이다.


‘5강, 유가의 새로운 부흥’에서는 송대 유학자들의 분투를 다룬다. 이른바 성리학, 혹은 주자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살펴본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시간의 주인공은 주희朱熹가 독차지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6강, 혁명의 유산과 거인의 부활’에서는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을 맞아 중국이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살펴보고, 내부적인 다양한 논의도 함께 검토해본다. 신해혁명, 혹은 건국혁명, 나아가 문화혁명까지 혁명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중국의 현대사를 빠르게 훑으면서 오늘날 중국의 위상과 중국철학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볼 예정이다.


그 많은 텍스트와 사람, 여러 나라들과 복잡한 시대의 변화를 몇 주에 걸쳐 어떻게 소화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깊이 있는 독해가 늘 능사는 아닌 법. 간략하게라도 훑고 대략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것에 만족하도록 하자. 깊이 있는 공부는 각각의 몫인 바. 그러니 주저할 것 없이 일단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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