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기억이 선명해지고부터 나는 늘, 세상이 좋아지는 일을 하고 싶었다. 특히 '사람'과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가장 좋고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선한 방향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라도 해볼 셈이었다.
그중 처음으로 꿈꾸던 일이 방송국 PD였다. 주말 티브이 앞에 앉아 즐겨보던 프로그램은 '느낌표!'. 이 프로그램에서 담아내는 세상의 비포 앤 에프터는 늘 마음이 뭉클해지는 감동이 있었다. 세상이 나아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큼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도 없겠지? 입시가 가까운 고등학생 시절 나는 MBC 방송국 교양프로그램 PD가 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치열하게 국내, 세계를 누비며 사람들에게 눈물짓게 할 만한 감동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지!
꿈은 빠르게 좌절되었다. 내 ENFP 성향상 'ㅇㅇ고시'라는 단어는 부대끼다 못해 극도로 힘든 관문이었다. 다들 언론고시쯤은 몇 년 고생해야 방송국 문턱을 넘는다는데, 나는 쉽게 그 코스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래서 뭐가 됐냐고?
우연히 발견한 어느 회사의 특강 포스터에 매료되어 나는 그 회사 광고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갑자기 광고?라는 새로운 직무를 소화하는 미션이 있었지만 학부시절 흥미롭게 듣던 마케팅 수업과 으쌰으쌰 참여했던 공모전의 경험이 그나마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KPI를 성취할 때마다 희열, 그리고 나 역시 소비자로서 생활에 밀접한 브랜드들을 가까이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원 없이 야근하면서 해볼 수 있는 경험을 쌓아왔다. 일하기 즐거운 환경에서 좋은 팀과 함께 하는 것은 행운이었던 거지. 해가 거듭할수록 직장인으로 영글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마음 한편에 드는 갈증이 있었다. 그 목마름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어느 순간 내 직업적 한 문장을 완성했다.
사람의 삶에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
광고로도 충분히 풀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방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오래전 내가 적어놓은 꿈(문화예술 기획)에서 힌트를 얻어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로 옮겨가게 되었다.
광고기획의 습관대로 관객 입장에서 그들이 필요하고 보고 싶은 콘텐츠를 고민하는 일. 나름의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근들을 고민해 무대로 풀어내는 일을 했다. 감사하게 공연 후기들을 통해 그런 일들을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는 확인을 할 수 있었다.
고 3 수능 이후 막막하던 친구는 공연을 통해 '아직 끝이 아니구나 느꼈다, 다시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라고 평해주었다. 가족 공연을 참여한 어떤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번을 계기로 대화를 더 자주 해야겠다'라고 감사의 말을 남겨주었다. 내가 올리는 무대가 화려하지 않고, 소소하지만, 관객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결과라 생각되어 참 기뻤다.
코로나 이후 다른 형태의 업을 도전해 볼 기회도 있었다. 멘토링이나 강의, 글쓰기, 퍼실리테이터 등. 그러다 작년부터는 사회공헌 분야에서 사각지대 대상자를 발굴해 꼭 필요한 지원 방법을 고심하는 사업기획이라는 일을 하고 있다. 갑자기 분야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기획'이 중심이 되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만다는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밌다.
커리어 패스를 훑어보니, 그 사이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어쩔 땐 시간적 공간적으로 일의 경계가 무너지기도 했다. 일이 좋아서 밤이든 낮이든 아이가 잠드는 시간을 기다려 수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왔다. 언제나 육아하면서도 머리는 기획 워킹 모드로 세팅되어 회로를 돌렸다. 노트북을 켜면 바로 작성할 수 있게 내용을 미리 구상해 보는 것이다. 뼛속까지 기획자이자 워커홀릭처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의미 있는 콘텐츠(경험)를 만드는 사람
내가 충분한 능력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내가 추구하는 업의 정의를 선언함으로써 매일 조금씩 그렇게 살아내려고 노력한다. 어찌 됐건 나는 돌고 돌아 세상이 좋아지는 일에 조금은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2년이 훌쩍 넘은 커리어 패스를 돌아보면 갸우뚱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나라는 사람이 가진 "진심"이 구심점이 되어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왔다.
2024년을 앞두고 한동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내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아이 성장보다 내 성장이 중요한데.." 나도 정확히 몰랐던 내 진짜 속마음을 듣고, 더 간절해졌다. 그런 성장에 대한 의지를 어떻게 일상에 녹여낼 수 있을까?? 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겠다고.
연말에 아이와 회고를 하면서 엄마의 계획을 이야기해 줬더니 선뜻 본인도 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간절함에서 엄마가 문단을 외울 때, 아이는 한 문장 암기를 하고,
창작의 시간을 확보하면서 엄마가 글을 쓸 동안 아이는 동화책 그리기를 하는 등으로 몇 가지 루틴을 잡았다.
생각해 보니 엄마의 모습을 보고 아이도 조금은 동기부여를 받고 있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주말 산책을 하다 오랜만에 쨍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았다. 따사로운 기운이 찬기운을 압도했다. 적절한 쉼표 같은 일상이 삶을 더 단단하게, 더 건강하게 지속하도록 돕는다고 느껴졌다. 햇살이 너울거리는 탄천에 비추며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었다. 하나의 덩어리 진 태양빛이 조각조각난 반짝임으로 수놓아진 것이다. 순간 나의 2024년 워딩을 윤슬이라고 짓고 싶어졌다. 완전한 눈부심은 부담스러운 목표지만, 내 안의 잘게 쪼개진 반짝임들이 분명 주변을 비추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올해도 하고 싶은 일들을 원~없이 해보면서 그런 빛의 파장이 너울거리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