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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an 28. 2024

24시간 나를 주시하는 시선이 있다

움직이는 CCTV 같은 아이들



퍼지고 싶은 날이 있다. 소파와 한 몸이 되거나, 그냥 침대에 엎드려 원 없이 드라마를 몰아보고 싶은 그런 날. 그런 날이면 순간의 선택으로 하루의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몇 시간, 아니 반나절이 훅 지났네? 갸우뚱하게 되면서도 내 소중한 일상을 충내버리는 나의 태도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기도 하다.


열띠게 한 주를 살아내고 주말 달콤한 휴식으로 이따금씩 그런 시간을 채운다면야, 보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한때 매일 그런 날들을 보냈다. 한도 끝도 없는 무기력증의 늪에 빠진 것이다. 아이들을 겨우 등원시키고 나면 소파에 누워 창밖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울기도 하고, 드라마에 빠져 점심도 그저 그렇게 억지로 먹은 하루를 보냈다.


한때는 세상 둘째가라면 서럽게 파이팅을 외치며 살던 내가 문을 닫고 집콕하며 그냥 한 없이 나를 포기한 듯한 일상을 살게 될 줄이야. 더 이상의 성장은 나에게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고 그저 가라앉는 느낌을 손쓸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버텨냈다. 몸에 힘을 빼고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어떤 날은 해가 쨍해서 눈이 부시고, 어떤 날은 찬 공기가 정신을 말짱하게 했지만, 그럼에도 나의 무기력증은 고쳐지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터치하지 않았고, 나도 나라는 고삐를 잡아채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이 흘러가던 곳은 망망대해 같은 바다가 아니라 그래도 적당한 저수지였다보다. 단단한 흙기운이 느껴지자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한겨울의 찬기운과 따뜻한 햇살의 온기, 서로 상반된 보이지 않는 기운이 나를 감쌌다. 그래도 햇살이 나를 더 꼭 끌어안아주는 느낌이었다. 집콕하던 시간만큼 방전되어 있던 나에게 서둘러 광합성을 해주었다.


오랜만에 산뜻한 경험을 하니,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소소하지만 아주 대범한 미션을 제시했다. 하루에 한 바퀴만 꼭 돌아보자! 결심이 부끄럽지 않게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을 제외하곤 매일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처음엔 방전된 핸드폰에 충전기를 꽂듯 찌릿하더니, 이제는 배터리가 차오르면서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산책에서 돌아와서는 늘어지기보다는 집을 다시 정돈하고 맛있는 한 끼를 위한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하아, 지금은 아득한 3년 전 극심한 번아웃을 겪던 나의 이야기다. 너무나 생생한 그때의 내 모습과 감정들을 오랜만에 다시 곱씹었다. 그때의 나는 솔직히 자기 객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자기 관리를 몰랐던 무모했던 워킹맘이 블랙홀처럼 번아웃이 뭔지도 모른 채 빠져들었다.


그런 나를 바라봐주던 건 2살, 5살의 반짝이는 눈동자들. 엄마의 모습을 생생히 지켜보던 아이들의 시선을 인지하고서야 나는 조금씩 내 모습을 점검해 보았다. 기력 없는 내 모습이 아이들을 걱정시키기도 하고, 서운하게도 하고, 심심하게도 했던 것이다.


조금씩 활기를 띈 엄마의 미소에 아이들도 더불어 들떴다. 엄마의 모든 것에 호응해 주었다. 세상 그 누구 부럽지 않은 빅팬으로서 조그만 체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을 해준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건강한 일상으로 회복했다. 풀타임을 이어가는 워킹맘 생활이 혹여나 다른 번아웃을 불러올까 스스로 점검하며 나를 지키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주변 환경을 흡수해 버리는 스펀지 같다. 그래서 엄마가 책을 읽으면 따라 책을 읽고 싶어 하고, 엄마가 핸드폰을 하고 있으면 본인도 게임하고 싶다고 조른다. 보는 대로 아이의 말과 행동이 닮아가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거울에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점검하는 것에서 나아가, 내 뒷모습까지도 점검해보게 하는 긴장감을 준다.


거창한 인생 내려놓고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하루라도 내 아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생각과 동기를 심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건강하게 가정과 일상을 돌보는 엄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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