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닮아간다
분주한 마음을 다스리는 건 집안 정리만 한 게 없다. 대청소로 하기엔 몸도 마음도 버거우니 일주일에 한 곳을 정해놓고 1시간 정도 짧고 굵은 청소를 해나가고 있다. 청소는 나를 위한 거라는 어느 작가의 말에 눕고 싶은 마음을 다스려본다. 남편과 바짝 청소하고 나면 기부할 물건, 버릴 물건들이 쫙 정리가 된다. 내 몸에 붙은 살을 이렇게 분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집안 살림이 다이어트되는 것도 꽤 개운한 후련함이 있다.
지난주에는 부엌 찬장을 정리했다. 언제 이렇게 일회용 포크 수저가 쌓였는지, 그동안 비닐을 이렇게 많이 모았다니, 남편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리를 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버릴 건 버리고, 기부할 건 큰 에코백에 담고... 정리가 마무리되면 찾기도 쉽게 깔끔한 집으로 변신한다.
이번주는 아이들 옷정리를 했다. 계속 옷을 사서 채워 넣기만 하니 옷장이 어느 하나 숨 쉴 구멍 없이 가득 차있었다. 그런 상태의 악순환은 결국 찾기 쉬운 옷만 입는다는 것. 옷장의 옷을 다 꺼내서 얼룩이 있는 옷, 작아진 옷들을 과감하게 뺐다. 그리고 올해 입을 옷, 가을겨울 옷, 봄여름옷 등등 기준을 정해 옷을 분류했다. 두 아이의 옷이 다르니 형아가 동생에게 물려줄 옷들이 있다면 한쪽에 보관하기로 했다. 장장 이불 가방 2개라는 방대한 양을 비우게 됐다. 그중 겨울 패딩도 서너 벌 있으니 정말 예상치 못한 부피감에 놀랐다.
그 정도가 옷장에서 빠지니 깔끔하다 못해 휑한 정리가 되었다. 아 이 맛에 청소하는 거지. 남편은 마저 헌 옷수거함에 버리고 오겠다고 나간 사이. 나는 집안에 더 정리할 곳들을 살펴봤다. 반대편 옷장도 안 쓰는 잡동사니가 꽤 쌓였을 테니 정리가 필요하고, 거실장의 서랍도 온갖 제자리를 잃은 물건들이 모여있으니 손을 대긴 해야겠지. 그건 다음 주말로 남겨두자고.
엄마아빠의 정리부심을 아이들도 눈치를 챘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집 어디가 바뀌었을까?" 엄마의 퀴즈에 아리송한 표정으로 이방 저 방 기웃거리는 아이들. 마침내 찬장을 열며 "우와 여기 엄청 깨끗해요!" 신기하고 즐거워한다. 같이 기뻐해줘서 고마워!
그러더니 아이들도 변해갔다. 본인의 책상을 서랍처럼 모든 장난감과 책을 올려놓고 쓰던 첫째 아이가 달라졌다. 자기 전, 갑자기 “엄마 저도 청소를 할게요" 라고 말하며 정리모드가 되었다.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분류하면서 책상을 비워나갔다. 심지어 마구잡이로 꽂혀있던 필통꽂이도 서너 개를 구분해 색연필, 볼펜, 연필 등으로 다시 담았다. 아이는 동기부여가 제대로 된 듯이 앞으로 매일 자기 전엔 책상을 깨끗이 정리하겠다고 했다. 그토록 치우라고 외치던 수많은 잔소리가 튕겨 나오더니 이제 행동으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엄마, 이제 이 베개도 정리해야겠죠?
아쉬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매일 베고 자던 헤어진 베개를 정리하겠단다. 이미 예전부터 낡고 낡아 솜이 삐져나올 정도로 오래된 베개였다. 내가 대학생 때 쓰던 베개였으니 15년은 된 베개. 나름 베개 중에 시원한 소재라서 4계절 내내 끼고 잤다. 이따금씩 정리하고 싶었지만, 완강하게 거부하던 아이였다. 빨아야 할 거 같았는데 솜이 터져서 세탁기에 넣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이제야 그 낡음이 눈에 보였을까?
학교 가는 길에 아이는 베개를 직접 헌 옷수거함에 넣겠다고 했다. 꼭 껴앉으면서 걸어가던 아이에게 이 베개가 왜 좋았어?라고 물었다. "그냥 다 좋아요" 무한 애정이 눈빛과 손짓에서 뚝뚝 묻어났다. 그리고는 "엄마 저 이거랑 똑같은 걸로 사줄 수 있어요?" 하고 새로운 베개 친구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어디서 파는지도 모르는 저 베개를 똑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찾아봐야겠지.
아이는 그렇게 "잘 가, 베개야"라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 많은 물건들이 하나하나 이렇게 추억거리들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리의 과정이 찡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되새김을 통해 더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감사가 남는 듯하다. 아끼고 오래 소비할 수 있는 마음이다. 아이에게 이 과정에서 그런 메시지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