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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May 19. 2024

아이가 글밥 있는 책 보다 만화책만 읽는다면?

좋은 공부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선생님, OO이 하교하려고요. 정문으로 내려보내 주세요~"

"네 어머님, 그런데 하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지 않아 돌봄 교실을 이용하기 시작한 아이. 맞벌이인 탓에 늦게까지 돌봄 교실에 머무는 날이 많다. 하교할 때는 매번 교실로 전화를 걸어 아이를 만난다. 간단히 용건만 나누던 보통의 날과 달리, 갑자기 선생님이 나를 붙잡았다. 내용은 이거다. 서너 시간을 돌봄 교실에 있다 보면 정해진 수업이 없어서 주로 비치된 도서를 읽거나 놀거리를 찾아 노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 아이가 후 시리즈나, 마법천자문 시리즈, 살아남기 시리즈 등을 만화로 된 책을 두세 시간 미동도 하지 않고 내내 읽었다는 거다. 선생님은 목이 아플까 봐 잠시 스트레칭이라도 하라 했지만 아이는 괜찮다면서 내내 책에 빠져있었다고. 아마 말리는 이 없어서 고삐 풀린 것처럼 마구잡이로 읽어낸 것 같다.


선생님의 우려에 나는 심난해졌다. 요즘 부쩍 집에서도 주로 그런 책만 붙잡고 있어서 이러다가 아이가 줄글로만 된 책을 거부하는 건 아닐까? 학업에도 지장을 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쌓여갔다. 재밌게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 나는 고학년인 조카를 관찰하게 되었다. 혼자서 침대에 기대 200쪽은 되는 두꺼운 책을 키득거리며 읽는 조카를 보고 나는 휘둥그레져 언니에게 물었다. 어떻게 저런 책을 읽게 되었냐고?


"이번주 독서스터디 책이야! 친구들끼리 일주일에 한 권씩 정해서 독서토론하거든~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선생님 해주고!"


아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활동으로 책을 이용하면 되겠구나? 그런 힌트를 얻었지만 막상 내가 주도해서 모임을 이끌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생각이 좋은 기회를 만난 건 얼마지 않아서였다. 수영을 시작하려고 결성된 4명의 엄마들 중 한 분이 겨울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 책을 읽히는 습관을 잡아주고 싶다며 같이 북스터디를 제안해 왔다. 자연스레 나는 맞장구쳤고 조카가 실제하고 있는 모임을 벤치마킹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적용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결성된 책모임. 매주 한 권의 명작동화를 정해 읽는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9시에 도서관에서 만나서 독후활동을 진행한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문해력을 높이는 취지에서 부모님이 돌아가면서 선생님을 맡는다. 시중에 나와있는 독후노트를 활용하거나 가이드를 참고해 글짓기나 그림으로 아이들과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시간은 한 시간 남짓. 때론 장난치느라 바쁘지만 각자에게 미션을 주면 제법 집중해서 자기만의 작품을 완성해 내는 아이들. 돌아가면서 발표를 할 때면 각자만의 매력이 드러나는 게 참 예쁘다.


지금은 모임의 인원을 늘려 더 활성화되고 있다. 아이들이 많아지니 돌아가는 순번도 텀이 길어서 부모님도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으로서 부담이 줄어서 좋다. 그렇게 우리는 새 학년을 맞이해서도 계속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아버님들의 참여도 활발해서 모임의 활기를 더해준다. 그리고 매주 활동이 쌓이면서 아이디어가 더해져 이제는 전시, 공연 같은 문화활동을 곁들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우리 아이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1. 200페이지가 넘는 명작동화를 긴 호흡을 갖고 읽어낼 줄 알게 되었다.

목표 지향적인 성향에도 맞는 것일까? 매일의 일과가 있어서 틈틈이 책을 읽는 것이 버거울 법도 한데 아이는 책을 매일 책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쉬는 시간, 돌봄시간을 이용해 읽어냈다.  


2.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파악과 암기력을 갖게 되었다.

독후활동에서 아이는 스토리에 대한 퀴즈를 맞혀야 하는데 그때마다 사소한 단어까지도 기억해 내는 모습을 보인다. 대충 읽는 것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흥미로운 스토리는 그 기간 동안 서너 번은 읽어낸다. 글이 재밌다는 생생한 경험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보낸다.


3. 엄마와의 공감대가 깊어진다.

예전에 도서관에 가면 아이는 내가 빌리는 책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가 빌리는 도서에 제법 관심을 갖고 살펴본다. 이 책은 왜 빌리게 되었는지, 왜 이런 제목을 쓴 것인지... 심지어 들쳐보면서 살짝이라도 읽어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책 읽는 엄마와 책 읽는 아이라니... 언젠가는 좋아하는 책 한 두권 챙겨서 나의 아지트 같은 카페에 가서 데이트를 할 수도 있겠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아이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했는데 결국은 책을 가까이하는 것만이 가장 정석의 길인 듯. 살아가는 내내 이런 좋은 습관은 평생 가져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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