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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un 01. 2024

아이를 키우면서 양념처럼 필요하다고 느낀 두 가지

적당한 무관심과 결핍이 주는 순기능



오늘은 글을 쓰는 데 아이 둘이 쪼르르 옆에서 유심히 엄마의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뭔가 좋은 말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을 느낀다. 아이들은 엄마의 타자 속도에 맞춰 한 자 한 자 따라 읽기 바쁘다. 엄마가 글을 쓰는 모습을 좋아해 주고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해 주는 작은 존재들, 그리고 자신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수줍은 고백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1

아이와 매일 함께 하지만, 모든 시간 온전히 아이를 관찰하기는 어렵다. 낮시간 대부분은 학교나 기관에 맡기고 나도 회사에서 보내기 때문에 이 아이가 어떤 자극을 받아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일일이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따금씩 아이가 확 성장했구나 느껴질 때면, 새삼 선생님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집에서 어떤 운동을 할까 고민하다가 아이와 줄넘기를 해보기로 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줄넘기가 엄청 큰 미션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쿠팡에서 줄넘기를 주문해 낯설어하는 아이 손에 쥐어주고 한 번 뛰어넘어보라고, 다시 해보라고 아웅다웅했더랬지. 일 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사이 나는 아이가 어떻게 줄넘기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저녁 식사 후 꽉 찬 느낌을 잠재울 요량으로 아이는 파란색 줄넘기를 챙겨서, 나는 주황색 줄넘기를 챙겨서 집 앞으로 나갔다. "우리 몇 개씩 할까?" 나의 질문에 아이는 이제 100개는 거뜬하다며 호기롭게 목표를 잡았다. 그럼 나는 200개를 하겠다고 맞장구쳤다.


갑자기 아이가 "엄마, 저는 이제 100개도 쉬지 않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작년까지만 해도 (내 기억이 선명할 때) 두 개를 이어하는 게 어려워서 속상함에 눈물짓던 아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성장했지? 아이는 얼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줄넘기를 펼치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1,2,3,4,5.... 30! 아이는 침착하게 하나씩 넘기더니 30개를 단숨에 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어쩌면 그동안 줄넘기라는 미션에 집착하지 않으니 저절로 아이가 재미를 찾아 실력을 늘려 왔겠구나 싶었다. 무던한 무관심이 육아의 양념이 되어준 것이다.





#2

아이들은 수시로 "심심해!", "놀아줘!"를 외친다. 가만히 조용히 쉬는 것도 즐거운 일인 것을 아이는 아직 모르나 보다. 그렇다고 매번 새로운 장난감이나 유튜브로 관심을 돌리기엔 자극에 자극이라는 단어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엄마는 이제부터 책을 보려고, 여기에 재밌는 내용이 많아!"라고 식탁에 쌓아놓은 책탑을 가리켰다. 아이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엄마의 키득거리는 독서 연기가 궁금했는지 자기 방에서 책을 꺼내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이가 심심한 지 A4용지를 쓱쓱 접더니 작은 책자의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엄마한테 제안을 했다. "엄마 우리 동화책 만들어봐요~!" 어머 딸들에게서만 볼 수 있던 꼼냥거리는 색칠 놀이를 드디어 아이랑 해볼 수 있는 건가? 순간 심쿵했다. 그러더니 아이는 설거지 뒷정리를 하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먼저 자신의 동화책을 거침없이 그려갔다. 신발 하나를 그리고 날씨를 표현하고 그에 맞는 설명 문구를 쓱쓱 채웠다. 그리고 형형색색의 색연필 꾸러미를 들고 오더니 꼼꼼하게 색칠까지! 그런데 아이는 완성한 그림책을 바로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가 완성하면 보여줄 거예요!" 아이는 엄마의 그림책이 먼저 그려야지만 보여주겠다고 솔깃한 제안을 했다. 흠... 갑자기? 내가 그림책을 빠르게 그릴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지만, 문득 지난번 주차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뭔가 독특한 우리만의 그림책이 완성될 거라 기대감이 들어 미소가 지어졌다.


"책 제목은... 주차장 대모험?!"


엄마의 말에 두 아이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나는 독자의 반응에 부응하기 위해 조금 더 리얼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며칠 전 주차장에서 양쪽에 차가 꽉 차있었는데 초보 드라이버인 내가 지나가기엔 협소해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두 아이가 창문에 기대어 봐준다고 해도 선뜻 진입이 어려웠다. 그때 옆 차의 아저씨가 창문을 내려 도움을 주셨고 우리는 무사히 주차를 완수할 있었다. 나는 그를 주차장 히어로로 빗대어 표현했고 그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미션을 달성했다는 스토리라인으로 그림을 그렸다.


"엄마 진짜 재밌는데요? 제 그림책은 빨간 장화예요"


아이는 이제 방어태세를 내려놓고 엄마에게 그림책을 건넸다. 쪼그만 손으로 정성껏 색칠한 빨간 장화가 아련하게 다가왔다. 아이의 동화책을 읽으니 무심한 아들냄에게 이런 섬세한 감성이 묻어있다니 놀라웠다. 결핍이라는 양념으로 발견한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무관심과 결핍이라는 두 키워드가 육아에서는 허용할 수 없는 개념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아이가 스스로의 컬러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여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눈이 부시게 너의 삶을 보여줘, 앞으로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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