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어린 로레인 Jun 09. 2024

아이가 안경을 쓰게 된 날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지만, 그건 내 욕심인가?




영유아 건강검진을 꾸준히 할 때만 해도 아이 눈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0.9, 1.0까지 시력이 나오는 걸 보고 내심 내 좋은 눈을 물려받은 건가? 흐뭇하기까지 했다. 눈이 나빠질만한 습관이라고 한다면, 유튜브 시청을 과도하게 많이 하거나, 어두운 곳에서 책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시청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루 1시간 수준을 넘기지 않으려고 했고 조금이라도 어두울 땐 책을 못 읽게 타일렀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아이의 하루가 더 많아지면서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는 자신이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느슨하게 간장을 놓고 있던 어느 날, 초등학교에서 실시하는 간단한 건강 검진을 한다는 알림을 받았다. 키와 몸무게, 양쪽 시력을 체크하는 정도의 아주 가벼운 검진이었다. 남들보다 체격이 큰 편이라 수치적으로 걱정이 될만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들고 온 한 장의 결과지는 내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0.3, 0.65 이중 0.3이라고 표시된 왼쪽 시력은 노랗게 하이라이트 되어있었다. 핑크 형광펜으로 표시한 경우는 가까운 시일 내에 안과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는 안내가 덧붙여져 있었다.


남편은 결과지를 보자마자 눈은 자신을 닮았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처럼 왼쪽 시력이 떨어지는 걸 수 있다고. 그래도 제대로 검사를 받아야 하니 안과에 가기로 했다. 잘 보인다는 아이는 엄마의 걱정에 테스트해 보라며 멀리 보이는 달력의 숫자들을 하나씩 읽어갔다. 정밀 검사를 받기로 한 날, 나는 내심 아이의 눈이 일시적인 시력이었으면 하고 바라었다. 그러나 검사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이에게는 안경과 드림렌즈를 착용하는 두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시력에 호전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하루종일 안경을 쓰고 있는 것보다는 드림렌즈를 선택하는 편이 조금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격차이도 만만치 않지만 드림렌즈를 관리하는 과정에 신경을 써줘야 했다. 그래도 수면 중 착용하면 되니 아이의 학교 생활에 불편함까진 주지 않는 것 같았다.


드림렌즈를 테스트해 보는 날,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눈에 무언가를 껴봤다. 엄마인 나도 렌즈를 끼지 않을 정도로 시력이 좋아해보지 않은 경험을 아이가 먼저 해냈다. 어색한 그 이물감을 견뎌내기 위해 아이는 계속 눈물이 흘렸다. 제대로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려야 추가 테스트를 할 수 있는데, 한참을 힘들어했다. 그래도 간호사 선생님은 연신 처음 끼는 아이치고 잘 견뎌주고 있다며 독려했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니 눈이 안 좋음으로 해내야 할 견뎌야 할 단계가 추가되는구나 싶었다.


일주일간 적응해 보라고 드림렌즈 세트가 담긴 쇼핑백을 들고 왔다. 아이는 안과 문을 나서자마자, 내 손을 꽉 쥐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거 안 하고 싶어요. 그냥 안경 쓸래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내리 듣고, 경험을 해온 아이는 조심스럽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너무 힘들었고 아팠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무거운 맘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테스트해 볼 드림렌즈는 다시 잘 돌려드리기로.


안경을 맞추러 들린 안경점에서 아이는 다시 비슷하지만 새로운 검사들을 여럿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기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니 기특하면서 안쓰러웠다. 그렇게 최종 테스트를 거쳐 아이에게 맞는 렌즈 도수를 찾았다. 아이가 어지러워하지 않게 시력이 더 떨어진 한쪽에만 도수를 넣어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이제 안경테를 고르는 시간, 아이는 사촌형을 떠올리며 파란빛이 도는 안경테를 골랐다. 환한 인상을 줄 수 있게 밝은 테를 고르길 바랐지만, 첫 안경만큼은 아이의 마음에 흡족한 걸로 고르게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렌즈를 삽입한 안경을 건네받았다. 아이가 안경을 쓰자, 표정이 달라졌다. 뭔가 흐릿하게 보이던 것들이 더 선명해지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시간 내내 안내해 주셨던 안경사 선생님의 얼굴도 이제야 잘 보이는지 수줍음에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동안 세상이 뿌연 채로 보였겠구나...'


불편하게 보냈을 지난 시간에 대해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라도 더 선명한 세상, 더 깨끗하게 볼 수 있는 안경을 착용한 아이를 보니 다행이었다. FM기질의 아이는 매뉴얼대로 안경집을 잘 챙기면서 쓰고 벗을 때 보관에도 신경 썼다.


기념사진을 하나 찍고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너 아빠 주니어 맞는구나! 안경 쓴 생활 잘 적응해서 더 나빠지지 않고 재미있게 하고 싶은 거 잘했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