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겨울은 목공의 계절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흘려들었던 말이라 누가 전해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말. 어떤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인가? 사람들이 보통 그렇게들 생각하나? 의문이 들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웬걸, 대체로 선선한 가을이나 추위가 물러간 봄을 목공 하기 좋은 계절로 꼽고 있었다. 덥고 습한 여름이 꼴등이었고 그다음이 겨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추우니까.
작업장은 생활 시설이 아니라 난방 시설을 철저히 구비하기가 쉽지 않다. 층고가 높고 공간이 넓어 웬만한 열원으로는 공간을 덥힐 수 없다. 그러니 한파라도 오는 날이면 아침 작업장에 들어설 때 냉동 창고에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뿐인가, 철로 만들어진 목공기계는 얼음장처럼 차갑다. 손을 대보면 순식간에 열을 뺏어가는데 그 위에서 작업하노라면 손이 떨어질 듯 시리다. 장갑도 낄 수 없다. 장갑을 끼면 회전하는 톱날에 장갑과 손가락이 함께 빨려 들어갈 수 있으니까.
춥고 손 시려 작업하기 힘든 계절 겨울. 하지만 내가 꼽는 목공의 계절은 바로 그 겨울이다.
왜 겨울이 가장 좋으냐 물으신다면, 꼭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다고 답하겠다. 뼛속까지 ISTJ(이성적)인 나는 감성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겨울 목공의 매력은 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감성 겨울 목공을 위해선 준비물 세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커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작업하다 나와 잠시 쉬면서 흰 머그잔에 따뜻한 커피를 받아 손으로 감싸 언 손을 녹이며 호호 불어 한 입술씩 마시는 커피'다. 겨울이 되면 일을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설계를 할 때도, 가구에 오일 마감을 할 때도, 취미반 회원들과 담소를 나눌 때도 (대화가 아닌 담소를 나누는 것이다. 감성이니까.) 따뜻한 커피가 필요하다. 언 손을 녹이는 온기와 커피 향, 모락모락 나는 김과 함께면 겨울 목공이 몇 배는 행복해진다.
다음은 눈. 눈이 와야 한다. 목공을 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했던 날도 눈이 왔다. 작업에 열중하면 내내 고개를 숙이게 되는데, 눈앞의 것만 보다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면 펑펑 함박눈이다. 그땐 작업을 멈추어야 한다. 잠시 쉴 겸 문을 열고 나가면 (이때 커피를 들고나가면 완벽하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조용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심호흡을 한다. 잠시 멍하니 서있다 들어와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 창밖을 다시 보면 세상이 흰 눈에 쌓여 있고 사방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세상 나 혼자 작업장에 남아 나무를 만지는 느낌. 고요하고 평온한 느낌. 고독한 듯 마음이 편안해질 때. 그때가 겨울 목공의 쉼표다.
마지막은 화목난로. 화목난로가 겨울 목공의 완성이자 마침표다. 처음 화목난로를 때웠던 날을 기억한다. 열풍기, 가스난로로 버티던 내게 느껴진 화목난로의 발열량은 사우나 열탕의 뜨거움 같았다. 그 후 다른 난방기구는 모두 창고로 들어갔고 화목난로 하나만 남았다.
겨울 루틴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롱패딩을 걸쳐 입고 공방으로 향한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모아놓은 자투리 나무들과 불쏘시개를 넣어 토치로 불을 붙인다. 그럼 어느 순간 불이 확 퍼지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열기는 냉골 같았던 작업실을 금세 훈훈하게 데운다. 화목난로와 함께 작업실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화목난로를 켜면 유전자에 각인된 불을 향한 본능적 이끌림이 내게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일을 하다가도 자꾸만 따뜻한 화목난로 옆에 가 서있게 되고 그 안에 이글거리는 불을 멍하니 본다. 요즘 유행하는 '불멍'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으면 커피를 타 마실 수 있고 알루미늄 포일에 고구마를 싸서 넣으면 금세 노랗게 익어 맛있는 간식을 얻을 수 있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해가 지고 일이 끝나면 샤워 후 흔들의자를 가져다 화목난로 곁에 둔다. 불을 다시 지피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작업실의 하루가 끝난다. 화목난로로 겨울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다.
공방삼우. 커피와 눈과 화목난로만 있으면 겨울은 목공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