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nhyuk Aug 25. 2021

배송의 역사 2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여정은 경상남도 진주였다. 오픈 예정인 카페에 테이블과 의자를 배송해야 했다. 크고 작은 테이블이 9개, 의자가 10개였으니 공방을 연 후로 가장 많은 양의 주문이었다. 이 정도면 카페 내부의 모든 테이블과 의자를 만드는 것일 텐데, 이런 중요한 일을 내게 맡기다니 뭔가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더랬다. 신나게 작업을 시작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혼자 만들기엔 벅찬 양이었던 것이다. 다른 주문 건도 소화해야 하는 상황. 몇 날 며칠을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배송 전날엔 체력이 방전 상태가 되었다. 마감 및 포장 등 배송 준비를 마치고 나니 창가엔 해가 뜨고 있었다. 밤을 꼴딱 새운 것이다. 파주에서 진주까지는 400km의 대장정. 이 상태로 운전했다간 졸 것이 분명했고 그럼 내 행선지는 진주가 아닌 천국이 될 것이었다.


 근처에 계신 어머니께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다. 감사하게도 진주까지 운전을 해주시기로 하셨고 올라올 때는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일단 운전 문제는 해결.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싣고 갈 트럭이 섭외 되질 않았다. 가구가 많아 5톤 탑차가 필요했는데 그날따라 차량이 없었다. A업체, B업체, C업체 모두 트럭이 없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시간이 9시였는데 딱 출근 시간이었다. 부지런하고 빠른 한국 사람들은 아마 교통체증에 걸리지 않게 일찍 섭외를 해놨겠지 싶었다. 즉, 이미 트럭들은 짐을 싣고 이동 중이었을 테니 내가 섭외할 수 있는 차는 당연히 없었을 것. 섭외하는 데만 3,40분이 걸렸고 그 차가 공방까지 오는 데 또 30분이 걸렸다. 짐 싣는데 또 시간이 소요되니 이미 지각은 확정. 고객님께 양해 전화를 드리니 '늦게까지 카페에 있을 거라고 아무 때나 오셔도 된다. 천천히 오시라'라고 해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잘 계산해서 스케줄을 잡자'라는 교훈과 '차 섭외는 미리 하자'라는 두 교훈을 얻었다.


 트럭에 가구를 모두 싣고 드디어 출발. 조수석에 앉아 잠을 좀 자 둬야 돌아올 때 운전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침부터 난리를 친 탓인지 오히려 정신이 쌩쌩했다.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와 수다를 떨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진주에 거의 가까웠을 때쯤.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기사님이 잘 오고 계시나? 생각이 들어 전화를 걸었다. 

"몇 시쯤 도착하세요?"

"이제 한두 시간 남은 것 같네요."

"...... 네?!"

아니 우리는 거의 도착해서 30분 정도 남았는데 무슨 세 시간? 처음엔 애꿎은 기사님을 탓했다. 

'어디서 점심식사라도 하고 오셨나?' '운전을 엄청 천천히 하시는 분인가?'


"우리는 화물차니까 자가용보다는 훨씬 늦죠."


아! 맞다. 화물차는 속도를 많이 낼 수가 없지. 우리야 고속도로를 쌩쌩 달렸지만. 아. 그렇구나.

전혀 생각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터져버렸다. 기사님은 열심히 달려오셨을 뿐이고 그게 5톤 트럭의 최고 속도였던 것이다. 와우. 다시 고객님께 상황 설명을 드려야 할 시간. 처참한 마음으로 늦어짐을 또 말씀드렸다. 여전히 천천히 오시라고 말씀해주시는 친절한 주문자님. 정말 생각도 못한 전개였다. 큰 트럭으로 장거리 배송을 한 게 처음이라 알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시간이 떠버린 우리는 덕분에 진주 육전과 물냉면을 맛볼 수 있었고 진주 성도 잠깐 구경했다. 기사님 도착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했고 이해심 많은 주문자 분도 만나 뵐 수 있었다. 모든 일이 드디어 끝났고 갑자기 기운이 확 빠졌다. 초보 공방장이라 몰랐던 변수를 한방에 몰아 얻어맞은 날이었다. 기름을 넣고 파주까지 운전을 시작했지만 미뤄뒀던 졸음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들의 상태를 눈치챈 어머니는 졸음 쉼터에서 운전대를 다시 잡으셨고 나는 "다음 휴게소까지만 운전해주세요 그다음엔 제가 운전할게요."를 마지막 유언으로 잠들고 말았다. 

 

 나의 미숙함으로 주문자와 어머니께 폐를 끼쳤던,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어느 날의 기억이었다.

 


이전 06화 배송의 역사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