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차리기 전 나의 생각 하나.
'나중에 공방 차리면 행복할 것 같아. 만약 부산에서 주문이 들어오잖아? 그럼 일단 부산 숙소를 잡아. 그리고 배송을 가. 배송 마치고 근처를 2박 3일 정도 여행하고 돌아오는 거지. 전국 곳곳에서 주문이 들어올 테니 일도 하면서 여기저기 여행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어때?'
어떻긴 뭘 어때. 정말 망상이구나.
자영업의 좋은 점이 무엇일까? 내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 고로 평일에 쉴 수 있다는 것. 많은 사람과 꽉 막힌 도로를 끔찍이 싫어하는 나는 그 점을 활용하고 싶었다. 가구 공방은 배송도 해야 하니 배송일을 평일로 잡자. 그럼 교통체증 없이 돌아다니며 여행할 수 있다. 사람도 별로 없다!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백숙 먹고 닭죽 먹고.
물론 매번 놀러 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여행할 수 있다면 돈벌이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자영업자는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아니 알았는데 외면했는지도.
월세는 사장을 기다리지 않는다. 첫 공방을 열었을 때 나는 임차인이었다. 공방 자리가 나름 역 근처라 목이 좋아 임대료가 높은 편. 백만 원 후반 대였다. 숨만 쉬어도 하루에 6~7만 원이 나간다. 임대료만 나가면 다행이지 전기료, 수도료, 건강보험료, 대출이자 등등 고정비용과 각종 공구, 소모품, 나무값까지. 비용은 수없이 많았다.
신나게 노는 동안 계좌에선 부리나케 돈이 나가는데 배송 간 김에 하루 놀고 온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첫 번째 공방에 있는 동안 배송지에서 1박 하고 온 경험은 한 번도 만들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살고 싶던 삶의 태도를 포기하고 싶진 않았기에 자고 오진 못하더라도 근처 가볼 만한 곳이나 맛집은 들렀다 오는 식으로 갈음하곤 했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여행을 못 가게 되었더라면 정말 슬펐을 것 같지만, 다행히 주문은 각지에서 들어왔다. 절반 정도는 수도권 나머지는 비수도권이었다. 직접 배송 간 곳 중 먼 곳을 꼽아보면 대전, 청주, 진주, 부산 정도. 수도권은 서울 곳곳, 인천 수원 성남 분당 등 주로 경기 남부를 다녔다.
들어온 주문을 모두 직접 배송할 순 없다. 그럼 배송 다니느라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을 테니. 택배로 보낼만한 것들은 택배로 보낸다. 조그만 소품이나 도마, 작은 사이즈의 협탁 정도는 택배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부피와 무게가 커지기 시작하면 현실적 어려움이 생긴다. 크기가 커 택배 박스로 포장하기도 어렵고, 무게가 있어 화물 택배로 보내야 하는데 배송 중 파손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럴 바에는 조금 고생하더라도 내 손으로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직접 배송하면 여러 좋은 점이 있다. 내 가구를 고객이 좋아하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몇 일간의 노력이 보상받기 위해선 고객의 만족이라는 도장이 필요하다. 그를 확인하기 위해선 직접 가는 수밖에. 크게 표현하지 않는 분들은 어쩔 수 없지만 "와 정말 예뻐요!"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시는 분을 만나면 뿌듯하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진다. 그 보람으로 의지 충전 후 다음 작업도 이어나간다.
또, 고객 입장에서 보면 택배로 달랑 보내는 것보다 사장이 직접 찾아와 설치까지 해주는 게 공방 이미지에 도움이 될 것이었고, 가구에 문제가 있다거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면 현장에서 같이 확인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니 그도 좋을 것 같았다.
여태까지 가 보았던 배송지 중 가장 멀었던 곳은 부산이었다. 무려 441km. 현관에 놓는 작은 벤치라 택배로 충분히 보낼 수 있었는데 나는 441km를 직접 운전해 배송했다. 당일치기였으니 하루에 882km. 왜 나는 그 거리를 운전해 배송해야 했는가.
여유 부리다 배송 기일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조금 게을러져 있었나 보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작업을 미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제작 일정이 빠듯했다. 배송 예정일 전날에야 마감이 다 끝날 것 같았다. 택배로 보내면 당연히 늦을 상황. 결정을 해야 했다. 용달로 보낼까? 파주에서 부산이면 아마 몇십만 원은 들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이건 불가. 고객께 전화로 양해를 구하고 배송기일을 늦출까? 이게 가장 비용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늦추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여유 부리다 늦은 걸 그런 이유로 고객과의 약속을 깨고 싶진 않았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직접 배송하기밖에 없었다.
'에라 어차피 내 잘못인 거 반성하는 의미로 내려갔다 오고 간 김에 바다 보고 국밥 먹고 오자.'
파주에서 부산은 대각선 끝과 끝이다. 내려간다면 하루 정도 자고 오는 게 보통이었겠지만, 즉 내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슬프게도 다른 주문 건이 있어 그럴 여유는 없었다. 결국 오전 11시에 출발해 저녁 6시쯤 배송지에 도착했다. 근처가 광안리 해수욕장이라 바다 구경하며 산책하고 돼지국밥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다시 올라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경부 고속도로. 하루 종일 운전석에서 구겨져 있던 바지와 셔츠가 달라붙어 나를 옥죄어 왔고 정신은 아득했다. 공방에 도착하니 밤 12시. 씻자마자 바로 누워 잠들었고 그렇게 내리 12시간을 잤다. 다음날 눈을 뜬 후에도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 끙끙 거리며 다음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게을러질 때마다 이렇게 되뇐다.
'광안리를 떠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