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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세계가 시작됐다.

오늘도 화이팅!

아들을 출산하고 1주일은 병원에 입원했고, 1주일은 산후조리원, 2주일은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같이 지냈다.


때, 엄마로 살고 있는 지인들이 나에게 항상 같은 이야기를 도돌이표처럼 했다.   

출산 전에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해, 낳고 나면 정말 힘들어"

병원과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는 "나오면 힘드니까 최대한 많이 쉬고 나와"

2주일 산후도우미 이모님과 같이 있을 때는 "도우미 이모 계실 때 많이 자야 해 “     


  출산 두 달 전,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갑작스러운 조산기 진단을 받았었다. 입원을 1주일을 하고, 36주까지는 집에서도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그때는 누워서 있는 게 굉장히 지루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누워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던지, 핸드폰을 하는 게 전부였다. 입원을 했을 때는 코로나 19로 면회가 되지 않아 지인들에게 안부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엄마로 살고 있는 지인들은 다들 조산기라서 조심해야 하지만 아가가 태어나면 누워있을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잘 쉬라고 말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누워 있는 게 지루해졌다. 나는 이렇게 누워있을 바에는 아가를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지인들의 말이 정답이었다. 정말 좋은 때였다. 그때 잘 잤어야 했는데.      


  출산 후, 지인들은 병원과 산후조리원에 가면 수유 콜을 잘 조정해서 마사지도 잘 받고 잘 쉬어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 19로 모자동실이 없는 게 아쉬웠던 나는 수유 콜에 가면 평균 한 시간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수유실에서 수유를 하고 아가가 자는 걸 보던지 아니면 아가를 안고 말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새벽 수유 콜도 갔었다. 가면 아무도 없는 수유실에 나와 우리 아가만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벽 수유 콜은 하루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조리원을 나온 이후에는 지금은 아가 바로 옆에서 새벽 수유 콜을 시도 때도 없이 받고 있다. 그때 더 쉬었어야 했다.

      

  조리원을 나와 3주 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시까지 산후도우미 이모랑 아가를 보고, 7시 이후에는 퇴근하는 신랑과 같이 육아를 했다. 신랑이 토요일까지 출근을 하기에 토요일은 친정엄마가 와서 육아를 도와주셨다. 그래서인지 힘들긴 했지만, 지인들이 말 한정도로 힘들진 않았다. 그때 아가는 밤에  4시간을 쭉 자고 새벽 5시부터 쯤 일어나서 투정을 부렸다. 이후 9시에 산후도우미 이모가 오면 12시까지 잠을 잤다가 일어나서 이모님과 이야기도 하고 했다. 그때 이모는 다른 산모님들은 9시부터 5시까지 잔다면서 나에게 더 자는 게 좋을 거라고 하셨다.      


  4주 차가 되자, 산후도우미 이모가 계시는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는 말은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 산후도우미 이모는 우리 아가가 순하다고 했는데, 저녁 6시가 지나면 아가는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처럼 돌변했다. 분명 분유를 줘도, 안아줘도, 계속 울었다. 잠을 자는 것 같아 아기 침대에 놓으면 울고, 소파에서 아가를 안고 자는 일이 빈번해졌다. 피로는 누적되고, 산후도우미 이모가 오시면 이모님 말대로 오후 3시까지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도우미 이모의 도움, 7시 이후에는 신랑의 도움이 있어 그나마 낮은 난이도였던 것이었다.

       

  5주 차가 되었다. 이제 조리원도 아니고, 산후도우미 이모도 없는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자다가 갑자기 울고, 분유를 먹고 트림이 안된다고 울고, 모빌 잘 보다가 울고, 품에서 잘 자길래 침대에 내려놓으면 울고, 우는 상황이 늘어나면서 왜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품에서 아가를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식사를 거르는 일은 당연해져 갔다. 언젠가 친한 직장동료가 출산 한 달이 지났을 때 복직하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건, 점심시간도 없고, 정말 저번 주에 비하면 난이도가 급 상향되었다.


서서히 힘들어하는 나의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나에게 위로로 추정되는 말을 했다.

“그래도 지금이 나아, 뒤집기 시작하면 정말 더 힘들어”

“아가일 때가 나아. 유치원 가도 걱정이라니까”

“유치원 때가 나아. 초등학교 들어가면 걱정이라니까”     


그랬다. 그때부터 육아의 난이도가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육아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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