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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라] 떠나자! 제주로

준비는 끝났다. 제주도 두 달 살기 시작!

by 조현


이젠 제주로 진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숙소도 정했고, 짐도 다 보냈고,

리모델링은 전문가에게 맡겼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동생과 비행은 언제나 늘 긴장된다.

동생이 비행기라는 작은 공간에서 어떤 돌발상황을 만들지 모르니.

동생은 사실 비행기를 매우 좋아한다.

예전엔 12시간씩 타고 유럽에 갔다 온 적도 있다.

해외도 꽤나 갔다 왔다.

대부분의 경우 동생은

음악을 들으며 바깥풍경을 보며 비행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러나 가끔, 긴장되거나 힘이 들 때 화장실에 자주 간다. 행여 비행기에서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또, 가끔 큰소리를 내거나 할 수 있어서 장시간의 비행은 힘들다.

그래서 요즘은 장거리 비행은 피하게 된다.


특히 우리가 출발해야 하는 지역은 군사공항과 함께 하는 곳이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이착륙 시 무조건, 창문덮개를 덮으라고 안내한다.

원래 비행기는 안전상의 이유로, 이착륙 시 비행기 창문의 창문덮개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생에겐 그것이 룰이었고, 당연한 습관이었다. 바깥을 보는 것도 좋아하기도 하고.

처음 착륙 시 창문덮개를 덮으라고 했던 날, 동생은 창문을 열겠다고 떼를 썼다.

동생은 비행기 창문을 내려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본인에겐 창문덮개가 열린 비행기가 '정상'인걸.

다행히 착륙 후 떼를 써,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난 후, 본인이 빈 비행기의 창문을 다 열고 내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때 승무원분들께서

"괜찮습니다. 어차피 저희가 점검차 다 열었어야 하는데, 저희 일을 대신해 주시니 감사해요."라고 웃으며 말씀해 주셔서 참 감사하고 죄송했었다. 그때 칭찬글을 쓰고 싶었는데, 경황이 없다 보니 어영부영 그냥 넘어갔다. (지금이라도... 정말 감사했어요~ 복 받으실 거예요!)

그래서 비행을 할 때마다 예전엔 창가에 앉았지만, 이제 가운데 앉혀놓는다. 창문덮개를 내려야 할 때가 되면, 내가 몸으로 막아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기도 하고, 옷으로 살짝 가리기도 하며

무사히(?) 비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 부분은 나도 의문이다.

안전상의 이유인 '이착륙 시 날개나 엔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등의 이유로 창문덮개를 열어야 하는 것과 보안상의 이유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예전에는 훈련시간만 아니라면, 창문덮개는 상관없었고, 사진 찍지만 않으면 괜찮았는데,

왜 언제부터인가 일괄적으로 창문덮개를 닫아야만 하는가.

이건 동생뿐만 아니라, 고소공포증, 폐소공포증, 공황장애등이 있으신 분들도 참 힘들다고 하시더라.


그런데 동생도 처음 한 번뿐. 그 이후로는 창문에 신경 안 쓴다.

그 이후에도 꽤 여러 번 갔지만, 동생은 창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무튼 이러한 긴장된 비행을 하고도

우린 제주도에 간다.


비행기에서 동생이 혹시 말썽을 부리지는 않을까 하고 과도하게 긴장하는 건 나뿐인 것 같다.

부모님과 동생은

"여행은 언제나 신나고 설레는 것"이다.


나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바로 싱글벙글해진다.

언제나 늘.

야자수를 보며 너무 좋아하고 웃으며 행복해한다.

제주도에 도착하면 온몸에서 즐거움이 흐른다.


이번에도 그랬다.


긴장한 나.

그리고 싱글벙글 동생.

그리고 부모님.

우린 무사히 제주도에 왔다.


이번에 제주공항에 도착한 후

느낌은 색달랐다.

평소 길어야 일주일이었던 제주도 여행이, 두 달간으로 늘어났을 뿐인데


마음이 달라졌다.






우리 동네는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이다.

(이름이 참 예쁘다. 하도리)


사실 제주도는 읍, 면, 리인 시골이다.

맨날 여행만 와봐서, 시골임을 피부로 느끼진 못했었는데

두 달간 살다 보니 확연히 시골임을 깨달았다.

도시처럼

은행이나 병원을 비롯해 편의시설이 바로 근처에 있지 않고

배달도 잘 되지 않는다.

가끔 택배도 느리게 온다.

제주도에는 백화점도 없다!


우리 동네는 '세화리'라는 동네 옆에 붙어있다.

사실 생활권은 세화리이다.

세화리는 조금 큰 동네인데, 여긴 5일마다 세화오일시장이 열린다. 0일, 5일마다 열리는데 꽤 큰 장이니 이날 장을 봐야 한다.

또, 세화리에는 나름 큰 농협 마트가 있고, 올리브영, 다이소, 스타벅스등 있을 건 다 있다.


우리는 매번 0, 5일마다 오일장에서 장을 보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세화리에서 사 왔다.

우리 '이층집'에서 세화리 중심가까지는 걸어가면 30분~1시간, 차로는 10분이면 간다.

또 차로 30분만 가면, 대형 로컬푸드하나로 마트도 있어서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세화오일장 걸어가는 길. 바다 옆 낭만 있는 산책길이다.



첫날,

숙소를 처음 본

나와 내 동생은 2층과 1층을 뛰어다니며 신이 났었다.


우린 처음으로 단독주택에 살아본다. 그것도 2층이라니!

이내, 2층 단독주택에 산다는 건 매우 힘든 것임을 깨달았지만.


옷장은 2층에 있었다.

고로, 택배박스 3박스나 배달된 옷과, 들고 온 캐리어등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2층과 1층을 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2층에 살다 보면 운동이 절로 되겠다. 살 빠지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되려, 두 달 살이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가족 넷 모두 살이 쪘다.

왜 행복한 돼지가 된 건지 그 이유는 아직도 의문이다.



1층 방 두 개는 동생과 내가 각 각 쓰기로 했다.

화장실이 딸린 방, 내방.

미리 동생이 놀 수 있도록 컴퓨터를 설치해 둔 방, 동생방.

2층 방은 훨씬 컸고 뷰가 좋았다.

부모님 두 분께서 2층을 쓰셨다.

출발하기 전엔 2층을 내가 쓰기로 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2층이 너무 넓고 커서 오히려 무서웠다.

그래서 넓은 방 부모님 쓰시라고 양보해 드렸다. 사실은 불효ㅋㅋ

방을 정하고

필요한 물건을 다이소와 하나로마트에서 사 왔다.



이렇게,

짐을 정리하고 집을 꾸미고.

이젠 진짜로 이 낯선 곳이 나의 집이 된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가 이사를 위해 육지의 집에 다녀오려면

동생과 단둘이 있어야 했다.

동생은 생각보다 불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큰 무리 없이 단둘이 놀고, 먹고, 잘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단 며칠 만에

우린 이곳을 완벽히 받아들였다.


이곳은 '우리 동네'이고,

여긴 '나의 집'이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리울

'나의 제주도, 나의 집'이 될 것이란 걸.

동생의 첫 번째 일기







앞으로,
연재될 제주도 생활은 시간 순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제가 걸었던 곳을 중심으로,
재밌었던 것.
느낀 점들.
그리고 여행과 삶 중간에 서있었던 제주생활을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소개해 드릴게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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