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길 4. 오조리 - 오조포구, 제주올레 2길
혹시,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찾고 있나요?
이곳은. 사진 찍기 좋은 곳.
이곳에선. 누구나 포토그래퍼가 됩니다.
제주의 동쪽, 성산일출봉 근처.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와, 숲이 만나,
너무 아름다워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조용히 걷기 좋은 길이 있다.
크게 돌아한 바퀴 걸을 수 있는 코스로,
오조포구와 제주 올레 2코스를 품고 있는 길이다.
마을 안내도에 따르면 이곳은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이라 불린다.
지도 속, 주황색으로 그려진 길은 제주 올레길 2코스다. 그리고 그 옆에 파란색 선으로 조심스레 그어진 길이,
우리가 자주 걷는 아름다운 길이다.
출발은 오조해녀의 집 앞, 너른 주차장에서 시작하면 좋다.
차를 세우고 나면,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하는 풍경이 있다.
길 건너편, 작고 조용한 버스 정류장. 그곳엔 ‘오조해녀의 집’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바로, 그 정류장이 이 길의 시작이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작은 언덕처럼 둥글게 솟은 식산봉이 보인다. 식산봉 쪽으로 걸으면 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저 멀리, 뒤로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나무 펜스를 따라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오조리 마을 안내도를 만나게 된다.
그 안내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신발을 소독하는 곳이 나온다.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소독하는 곳이 나온다면, 제대로 도착한 거다.
그곳엔 친절한 어르신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이곳은 원래 양어장으로 조성된 곳이라고 했다. 안쪽에선 담수인 용천수와 바닷물이 만나고, 바깥으론 넘실대는 바다가 드나들며 물고기와 다양한 자원들이 자라난다고. 그 덕에, 많은 새들이 이곳을 찾아온다고도 하셨다.
신발 소독 역시, 그 자연을 조금이라도 지키기 위한 작은 예의다.
부드러운 스펀지 위에 여행자의 발도장을 꾹 눌러 찍으면,
마치 오늘의 첫 장을 펼치듯 이 길이 조용히 시작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도 이 길은 비교적 걷기 좋다.
제주도에서 우산을 쓴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비는 내리지만, 바람이 그 우산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이곳은 나무와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우산을 허락하는, 드문 길이다. 물론, 제주 바람이 진심을 다할 땐 그 어떤 우산도 소용이 없지만.
호수인 듯, 바다인 듯.
그 신비로운 물가를 따라, 나무 울타리가 길게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저 멀리 맞은편에 우뚝 선 봉우리가 보인다.
사진 속 봉우리. 성산일출봉이다.
걷는 속도를 조금 더 늦춰보자. 그러면 첫 번째 다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 건너면 안 된다.
다리를 건너지 않고 더 걸어갔다.
출렁이는 물결을 왼편에 두고, 조용한 숲을 오른편에 두고,
조금만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나무들은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다. 나무의 이름을 맞추며 걸어가는 것도 재미있다.
길을 걷다 보면 나무와 땅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너무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넘실대는 물결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닿아 만든 길과 다리까지. 이곳에선 누구나 자연의 포토그래퍼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풍경에 마음을 담는다.
이 길은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코스다.
그 이름처럼, 지질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닌 곳이다.
길을 걷다 보면 자꾸만 눈에 들어오는 성산일출봉은 바다에서 일어난 화산 활동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바로 앞 이곳 오조리 곳곳에서도 화산 폭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물속에 드러난 둥글둥글한 돌들은 ‘튜물러스’라 불린다. 용암 언덕이라 할 수 있는 이 튜물러스는 제주도의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 중 하나로, 화산 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렇듯 자연의 신비로운 이야기들은 사람의 발걸음과 만나 이 길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 보면, 목조다리가 하나 나타난다.
조금 더 걸어 다리를 지나치면, 멀리 돌아가야 하니 꼭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이 다리 위에서는 모두가 사진 찍느라 바쁘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찰나처럼 번쩍이며 뛰는 물고기들, 순간 날아오르는 새들, 잔잔하게 반짝이는 윤슬과 물결까지.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는 아쉬움이 오히려 그 순간을 더 특별하게 만든다.
다리를 건너면, 갑자기 마을이 시작된다. 집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이어진다.
당황하지 말고, 마을 곳곳에 새겨진 올레길 표시를 따라가면 된다.
대문이 없는 집들이 많은 제주도의 특성상, 길을 잘못 들면 남의 집 마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니 주의하자!
마을길과 올레길 표시를 따라 걷다 보면 오조리 마을회관을 만나게 된다.
마을회관을 지나면 ‘차량 진입 금지’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 표지를 따라가면 된다.
사실 이곳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마을길에 차량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차량 진입 금지’ 표지판을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고 한다.
이 표지판들이 마치 길잡이처럼, 안내판처럼 조용히 마을길을 지켜주고 있었다.
포장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시 한번 신발을 소독하는 곳을 만나게 된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오조리 마을을 지나 처음 걷던 길 맞은편에 다다르게 된다.
조금만 더 걸으면, 예쁜 돌로 지어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꽤 유명한 장소로, 여러 드라마에 여러 번 등장한 스타 촬영지다.
드라마 “웰컴 투 삼달리”, “공항 가는 길” 같은 작품에서 사랑받은 바로 그곳이다.
여기 벤치에 앉아, 우리는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조용히 이곳을 바라보니, 왜 이 장소가 TV에 자주 나오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어느새 사진사가 된 듯 카메라 셔터를 멈추지 못했다.
“율아, 여기 서봐!”
“아니, 여기에도 서봐.”
“여기 앉아봐!”
그렇게 웃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사진은 계속해서 쌓여갔다.
그리고 쭉 걷다 보면 자연스레 처음 만났던,
지나쳤던, 그 다리가 다시 나타난다.
만약 이 돌 건물만 얼른 보고 싶다면,
길이 시작되고 첫 번째 다리에서 건너면 이 유명한 장소에 바로 닿을 수 있다.
이쪽에서 바라보는 성산일출봉은 또 다른 사진을 부르는 풍경이다.
이렇게 천천히 한 바퀴를 돌고 나면,
핸드폰엔 셀 수 없이 많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이 길을 걷는 동안, 핸드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온종일 사진을 찍으며 걸었다.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아름다운 풍경이 찰나임을 알기에,
더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오늘 이 길 위에서 찍은 사진들처럼,
마음속에 오늘의 아름다움이
영원히 남아 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