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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쉬멍] 오일시장에 가자

세화오일시장

by 조현

< 5일마다,

마법의 세계가 열립니다.>


다섯 밤을 기다리는 마음.

동생과 나는 소풍전날의 아이들처럼

다섯 밤을 매번 기다렸다.

반짝반짝.

오일이 지나면,

죽어있던 듯 조용했던 공간이

마법처럼 살아나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린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5일마다 오일시장에 갔다.

육지의 집 근처엔 대형마트가 가까이에 있었고,

달걀하나를 사러 가도, 당연하다는 듯 대형마트를 찾았다.

그런, 내게 오일시장은 처음이었다.

집 근처의 제례시장, 상설시장은 가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 오일마다 열리는 '오일시장'은

처음 마주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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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엔 자주 여행 왔었고, 세화 오일시장 앞을 지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시장이 열리는 날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세화오일시장은,

5,0으로 끝나는 날에만 열리는 시장이다.


평소에는
늘, 텅 빈 공간.
불 하나 켜지지 않은
굳게 닫힌 문들만이
바다 옆 넓은 터를 지키고 있다.

바다 해안도로 바로 옆.
그 넓디넓은 공간엔
공허함만 가득하다.

그런데
그랬던 그곳에
시장이 열리면,
반짝.
마법이 열리며
그곳엔 활기로 가득 찬다.



첫 오일시장에 간 날.


엄마와 아빠가 육지의 집 이사를 위해 떠난 날이었다.

제주에는 동생과 나 단둘만 남았다.

우린 제주도의 집,

이층 집에서 시장까지 산책 겸 둘이 걸어가기로 했다.

세화오일시장까지는 약 30분.

그림처럼 펼쳐진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면, 시장에 닿는다.

시장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20251013_173928.jpg 세화오일시장 가는 길. 좌회전해서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바다만 따라가면 시장이다.


처음 가보는 시장.

게다가 단둘이.


설렘과 긴장의 마음을 가지고 시장에 도착했다.

동생이 혹시 뭘 만지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많은데 부딪치지는 않을까.

조금은 조급하게 보이는 대로 감자, 양파 등을 샀다.

동생 배낭에 그것들을 넣고 나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둘이 핫바 하나씩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천천히 시장을 구경하다 돌아왔다.

그게 우리의 첫, 오일시장이었다.

설렘이었고,

즐거움이었고,

신남이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시자마자, 시장에 갔던 이야기를 으스대듯 자랑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오일시장가 봤어? 거기 별천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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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를, 양발이라고 쓴 동생의 일기. 낙서를 했다가 지운 흔적이 있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5일마다 시장에 갔다.


점심은 가끔 밖에서 먹었지만,

저녁은 늘 집에서 해 먹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장에 가서

생선도 사고, 김치도 사고, 반찬과 과일도 잔뜩 샀다.


5일마다 열리는 시장은,

늘 신선한 것들과, 맛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유명한 떡볶이도 줄 서서 사고,

튀김도 빼놓지 않았다.

장 보는 날은 늘 풍성했고,

신났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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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시장. 수산코너 뒤로, 펼쳐지는 배경은 바다다.



자주 찾다 보니

우리에게도 단골가게들이 생겼다.

맛있는 김치를 파는 가게를 알게 되었고,

신선한 사과를 파는 아저씨도 익숙해졌다.

동생이 좋아하는 반찬을 파는 아주머니와도 친해졌다.


시장 옆, 단골 단팥빵 가게도 생겼다.

속이 ‘미어지게’ 꽉 찬 단팥빵이 매력적이었다.
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미리 주문해 두고
여러 가지 단팥빵을 잔뜩 사기도 했다.

아쉽게도, 우리가 제주를 떠나던 날이 이 가게의 마지막 날이었다.

가게 이름은 ‘미어지게’.
정말 이름처럼 속이 알차고 맛있었다.

(제주에서 강릉으로 이사 가신다고 했다. 진짜 맛있었는데!)



동생도 단골가게가 생겼다.

율이 시장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뻥튀기, 옛날과자, 그리고 옥수수와 붕어빵이었다.

엄마와 내가 이것저것 장을 보는 동안

동생과 아빠는 늘 그 가게에 들렀다.

뻥튀기, 과자를 직접고르고

옥수수와 붕어빵을 손에 들고는

뷰가 좋은 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먹었다.


동생의 단골가게 사장님은

늘 동생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제주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시장에 들렀던 날,

율이는 사장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세화 오일시장 바로 옆에는

'모모장'이라는 플리마켓이 열린다.

질그랭이 거점센터 2층야외공간에서, 시장이 열리는 날에 열린다.

(단,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엔 열리지 않을 수 있으니 https://www.instagram.com/momojang_gujwaro/# 확인 후 방문해야 한다.)

오일시장이 열리는 그날엔

모모장이라는

또 다른 마법도 함께 열린다.

그 마법은 젊은 세대도 이끌어오고,

시장이라는 오래된 풍경에

새로운 감각을 더해준다.




시장을 다 본 후

우리는 붕어빵을 손에 들고

질그랭이 거점센터 2층으로 향했다.

뷰가 멋진 그곳엔 모모장이 열리고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

직접 만든 맛있는 것들,

손으로 만든 예쁜 것들

구경할 것도, 살 것도 참 많았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

모모장도 구경하고,

바다를 바라보고

군것질을 하며

시장 보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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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오후만 되어도

마법처럼 문을 닫는다.

후다닥 정리하는 사람들 사이로

하나 둘 문이 닫히고,

소란하던 시장은 다시

고요한 공허함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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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다시

매번 달력의 끝자리가 5, 혹은 0이 되길 기다렸다.

저 공허한 공간이
어서 사람들로 채워지길.
저 무채색의 공간이
어서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길.
그렇게 시장이 열리는 날을 기다렸다.

그렇게 또,
다섯 밤을 기다렸다.
마법이 다시 열리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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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그 생선의 이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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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옆에서 열리는 오일장답게,

시장의 주인공은 생선이었다.

제주도의 대표 생선인 갈치는 물론이고,

다양한 생선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린 반건조 생선가게를 자주 찾았다.

어느 날,

그곳 사장님이 맛있는 생선을 추천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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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싫어한다.
어린 시절, 동생이 중이염으로 수술을 앞두고,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병실이 부족해, 첫날은 2인실을 사용했는데, 옆 환자는 수술을 끝내고 퇴원을 앞두신 분이었다.
그분은 생선을 먹다가
가시가 목 깊숙이 박혀, 대학병원에 수술로 제거하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어린 나는, 생선가시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생선가시가 잘못 박히면, 수술해야 하는구나!"
그렇게 생선과 멀어졌고, 멀어질수록 비린맛에 더욱 민감해졌다.
그래서 지금도 아는 생선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사장님이 추천해 주신 생선은 달랐다.

비리지 않고,

가시도 많지 않았다.

맛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뿔싸.

생선의 이름을 몰랐다.


사장님이 생선을 건네어주시면서 이름을 알려주셨는데...

"이 ㄱ00 생선은요, 지금밖에 안 나와요.


짧으면, 보름. 길어야 한 달밖에 못 먹어요.

제주도민은 없어서 못 먹는 생선이에요!"


그렇게 알려주셨는데, 나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제주 사투리에 가까워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검색하면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인터넷에서도 그 생선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인터넷 카페에도 올려보고,

제주도 관련 카페에도 글을 남겼지만,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린 오롯이 5일을 기다렸다.

5일 후 시장이 열리자마자,

가장 먼저 생선가게로 달려갔다.


"사장님! 이름이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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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고즐맹이요 꼬치!"


생선의 이름은, 일명 고즐맹이. 꼬치고기였다.

반건조로 된 고즐맹이는 비린맛 없이, 고소했고, 정말 맛있었다.

딱 이 시기에만.

그리고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었다.


그 생선을 알게 된 것도,
그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의 기다림도
모두 오일시장이 부린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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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육지의 일상으로 돌아와도

제주도의 다섯 밤을 기다리던

그 마음이 문득 떠오른다.


오늘은,

오일시장이 열리지 않는 날.


오늘은 공허할 테지만

내일은

다시 마법처럼 문이 열리겠지.



< 혹시 오늘이 5일, 0일인가요?

그렇다면, 마법의 세계가 열립니다.>



(p.s 제목에 있는 사진은. 시장에서 바라본, 시장 앞 세화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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